‘규제 완화’ 빅테크 주도 美·대만 증시 쑥쑥…韓 플랫폼법, ‘코리아 디스카운트’ 뇌관되나 [투자360]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 빅테크에 대한 규제 완화 여부가 해당 국가 증시의 향방을 갈랐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쟁당국이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적극 장려하거, IT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폐기하는 등 빅테크 관련 규제 완화 기조가 외국인 투심을 자극해 증시 호황을 이끄는 중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텐센트·바이두 등에 규제의 칼날을 겨눈 결과 중국 상하이 종합주가지수, 홍콩 항셍 지수 등이 최근 수년간 하락을 거듭한 것도 대표적인 사례란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가 독과점을 막겠다며 주요 테크기업 대상으로 추진하는 플랫폼법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대만 등 빅테크 기업들이 이끄는 주요국 주가 지수는 최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시가총액 1~5위인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닷컴 등을 보유한 나스닥 지수는 23일(현지시간) 개장 초반 1만6134.22까지 오르며 2021년 11월 21일의 장중 고점 기록(1만6212.23)을 돌파하며 2년 3개월 만에 장중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다만, 마감가 기준으로는 전장보다 44.80포인트(0.28%) 하락한 1만5996.82로 장을 마감했다.
대만 증권거래소(TWSE)의 가권지수는 지난 15일 1만8644.5로 마감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후 21일엔 1만8676.3에 장을 마쳤다.
가권지수의 질주는 시총 30%를 차지하는 아시아 시가총액 1위 반도체 기업 TSMC를 비롯해 대형 기술주에 대한 실적 기대 덕분이다. TSMC의 시가총액은 지난 2018년 1911억달러(약 255조원)에서 지난 21일 6500억달러(약 866조원)로 3배 이상 껑충 뛰었다.
대만 시총 2위 팹리스 반도체 기업인 ‘미디어텍’도 같은 기간 118억달러(약 16조원)에서 495억달러(66조원)로 급증했고, 3~5위인 폭스콘·청와텔레콤·퀀타컴퓨터 등 주가가 이 기간 크게 치솟았다.
대만 증시 강세는 외국인 투심을 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신 등에 따르면 대만 증시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약 40% 전후로, 지난 몇 년간 유지되던 30% 초반에서 급등했다.
미 나스닥 지수는 연초 대비 23일(현지시간) 장 종료 시점까지 8.34% 상승했고, 대만 가권지수는 22일 장 종료 시점까지 5.26% 올랐다. 연초 코스피 지수는 0.47% 상승하는 데 그쳤다.
미국 증시와 대만 증시의 공통점은 주주친화적인 배당정책 말고도 유망한 테크 기술주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에서 IT 테크 플랫폼 기업을 정부에서 별도 법으로 규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이 디지털시장법(DMA)을 만들어 애플,구글 등 대형 플랫폼을 사전에 ‘게이트키퍼’로 지정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지난 2022년 말 애플과 아마존 등을 규제하는 ‘반독점 패키지법’을 폐기했다. 자국 기업을 규제하기보다 보호하고 혁신을 지원키로 방침을 바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 1년간 미 연방거래위원회(FTC)가 MS의 블리자드 인수금지 소송에서 졌고, 메타도 ‘위딘 언리미티드’ 인수 금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는 등 호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애플과 알파벳, 아마존 주가는 EU 규제 소식이 전해진 당일 1~4% 하락했다가 다시 반등한 바 있다.
대만의 경우에도 IT 테크 기업에 대한 별도 규제법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 2000년 대만 경쟁당국은 TSMC가 현지 경쟁사인 파운드리 업체 TASMC와 WSMC를 흡수 합병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로써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53%에서 60%로 오르며 글로벌 진출에 힘을 보태는 효과가 나타났다.
대만 공평교역위원회(TFTC)는 당시 “합병을 통해 TSMC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글로벌 파운드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40%대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앤디 첸 대만 TFTC 부위원장은 지난해 한 세미나에서 “대만은 기업의 사장 경쟁력을 높이는데 초점을 두고 있어 유럽식의 플랫폼 규제를 따라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최첨단 테크 기술주들이 주요국들의 증시 호황을 이끄는 상황에서 ‘빅테크 철퇴’를 가한 중국 증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20년 말부부터 ▷반독점·국가보안 위반 혐의 조사 ▷청소년 게임 금지 ▷개인정보 무단사용 처벌 등의 항목으로 IT 테크 기업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규제를 가하고 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텐센트·메이퇀·바이두·징둥 등 5대 인터넷 플랫폼의 시가총액 합산 규모는 지난 2021년 2월 중순 2조2713억달러(약 3027조원)에서 지난 21일 6625억달러(약 883조원)로 쪼그라들었다. 시총이 불과 3년 만에 71%나 증발한 셈이다. 같은 기간 홍콩 항셍지수는 3만644.7(2021년 2월 19일)에서 최근 반토막 가까이 하락했다.
반대로 일본은 규제로 침체된 중국 증시에서 유입된 투자금과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제고하는 규제개혁이 맞물려 최첨단 반도체 기술주들이 증시 호황을 이끌었다.
세계거래소연맹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도쿄(東京)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 시총은 6조3400억 달러(약 8448조원)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3% 늘며 세계 4위 자본시장으로 뛰어 올랐다.
지난 22일 일본 닛케이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19% 오른 3만9098.68로 장을 마쳤다. 22일 장중엔 3만9156.97까지 치솟기도 했다. 닛케이지수는 ‘거품(버블) 경제’ 시기인 1989년 12월 29일 장중 3만8957.44 도달 후 3만8915.87로 마감한 바 있는데, 장중 가격 및 종가 기준으로 당시 고점 기록을 새로 쓴 것이다.
일본 증시는 외국인 투자자 러시로 연일 랠리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이달 15일까지 일본 주식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하루 평균 7250억원을 순매수했다. 일본 주식 거래량의 70%는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1년간 반도체 기술주인 스크린홀딩스(257%), 어드반테스트(159%), 도쿄일렉트론(131%) 등이 도요타(83%) 등 자동차기업들과 성장해 외국인 매수세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최근 일본 증시 호황을 이끄는 것은 국내가 아닌 해외 대형 기관들”이라며 “일본이 추진하는 투자자 친화적인 거버넌스 변화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IT 업계를 중심으로 한국에선 공정위가 추진하는 플랫폼법이 한국 증시 투자 감소와 하락을 일으킬 ‘잠재적인 리스크’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모양새다.
공정위는 최근 주요 플랫폼 기업에 대한 사전 지정 제도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섰지만, 매출이나 영향력 등을 바탕으로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4월 총선 이후 입법하겠다는 입장이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규제 물망에 오르는 네이버, 카카오 등 여러 IT 플랫폼 관련 상장 기업들은 물론 상장을 준비하는 국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플랫폼 기업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한국 상장기업에 활발하게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도 플랫폼법에 대해 “나를 포함해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전 세계 투자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적은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대만이나 미국처럼 여러 빅테크 대장주들이 증시 상승을 견인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JP모건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4∼2023년) 한국 증시의 연평균 수익률은 3.6%로 대만(12.3%)의 4분의 1 수준이다. 미국(12.0%)과 중국(4.5%·CSI300 기준)에도 밀렸다.
외국인 투자 비중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시가총액 대비 한국 증시의 외국인 보유금액 비중은 2003년 41.2%에서 지난해 말 28.8%로 줄었다. IT 업계 일각에선 IT 테크기업 수가 많지만 외국인 투자자 비율이 8%대 불과한 코스닥 투자는 더 급감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벤처투자협회·코리아스타트포럼 등 단체들은 “규제는 끝내고 테크 기업을 육성해야 할 시점”이라는 취지의 성명서를 잇따라 낸 바 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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