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년 모스크바에서] 스타벅스 대신 스타스 북적…러 건재 과시 이면의 '명암'
러, 각종 압박에도 경제성장 자부…계란값 폭등에 대선 앞둔 푸틴, 공개사과도
정신건강 호소하는 시민들…"가족·친구 전장 내몰릴라" 불안, 고립감도 고조
틈새 타 시장 잠식하는 中…한국기업들 고충, 만두·라면·화장품 등은 인기 '반사이익'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 북부 한 쇼핑몰의 '스타스 커피'는 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사람들은 'MAAG', '저스트 클로스' 매장에서 옷을 사고 '도브리 콜라'를 마신다. 주차장에는 '체리', '지리' 자동차들이 서 있다.
24일(현지시간)로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을 수행한다며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지 2년이 됐지만 모스크바는 태연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없지 않다. 2년 전 러시아를 규탄하는 서방의 각종 제재로 글로벌 기업들이 줄줄이 철수하면서 대체 브랜드들이 매장을 채운 것이다.
스타스 커피는 스타벅스, MAAG는 자라, 저스트 클로스는 유니클로를 대체한다며 등장한 브랜드다. 현지 주스 업체 도브리는 코카콜라가 빠진 틈에 콜라 시장에 진출했다. 체리 등 중국 자동차 기업의 러시아 시장 점유율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 부유층들은 이러한 짝퉁 상품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비싼 가격에도 중동 등에서 병행수입으로 들여온 고급 자동차와 명품 등을 계속 소비하고 있다.
모스크바 중심지의 고급 백화점 '춤'에는 유럽의 유명 고급 브랜드 코트와 신발, 모자, 가방 등을 착용한 마네킹들이 전시돼 있다. 샤넬 주얼리 매장에는 케이팝 걸그룹 블랙핑크의 제니 사진도 걸려 있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에도 자국 경제가 건재하다고 강조한다. 각종 압박에도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6%로 예상되고, 실업률은 지난해 10월 2.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자랑한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밀 등 핵심 원자재를 자급자족하는 한편 제재를 피해 수출도 이어가며 경제를 지탱했다. 특히 중국, 인도에 에너지 수출 규모를 대폭 늘렸다. 무기, 탄약 등 군사 물자 생산이 증가한 것도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3월 15∼17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격전지 아우디이우카 점령 등 우크라이나 전과를 대대적으로 내세우며 지지 기반을 다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5선에 성공하면 임기를 2030년까지 연장하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러시아인들은 언젠가 가족이나 친구가 우크라이나 전장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고 있다. 점점 오르는 물가와 고립되고 있는 생활에 불만도 느낀다.
모스크바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20대 여성 발레리야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물건을 사다 보면 두 배로 오른 가격에 놀랄 때가 있다"며 생활 방식과 소비 습관을 바꿔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40% 이상 치솟은 계란값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이례적으로 공개 사과하기도 했다.
발레리야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인데도 이제 해외여행을 사치스러운 행동으로 생각하게 됐으며 외국산 비행기·엘리베이터 부품이나 의약품이 부족해졌다는 생각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정신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며 "러시아를 떠나거나 연락이 끊긴 친구들도 많아지면서 불안과 불신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다른 20대 여성 알리나는 대학을 졸업하는 시기에 특별군사작전이 시작됐다면서 "외국 취업이나 유학을 계획했던 친구들은 송금 문제나 취업 금지 조치 등으로 거부당했다"며 "청년들이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제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 10분 거리에 우크라이나 드론이 등장해 공포감에 방공호를 검색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특히 가족들은 오빠가 우크라이나 전장에 끌려가지 않을까 걱정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젊은 남성 중에는 징집을 피하려고 당국 몰래 이사를 하거나 아예 해외로 도피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러시아 수출 통제 품목이 확대되면서 시장에서 철수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기업들도 있고, 러시아에서 사업을 유지하더라도 금융 제재 때문에 수출대금, 운영자금 송금에 애를 먹고 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한국기업 수는 2021년 12월 약 160개에서 지난해 12월 약 140개로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러시아에서 사업하는 많은 한국 기업은 파견 직원을 줄이거나 현지 직원 중심으로 운영 체제를 변경하고, 인근 국가에서 러시아 사업을 관할하는 방식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차가 약 14만원(1만루블)으로 알려진 가격에 공장을 매각하고 철수한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중국 자동차들이 채우고 있다.
이렇게 한국 기업의 빈자리를 중국 기업이 차지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도 좋지 않다는 지적도 현지에서 고개를 든다. 추후 한러 관계가 개선됐을 때 한국 제품이 중국 제품에 빼앗긴 점유율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식품, 화장품 등 비재제 분야에서는 서방 기업이 철수하면서 한국 기업이 오히려 반사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러시아에서는 한국 만두, 라면, 아이스크림, 화장품 등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16일 러시아 북부 시베리아 감옥에서 47세 나이로 급사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생전에 한국 컵라면 '도시락'이 교도소 매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라며 '도시락'을 여유롭게 먹고 싶다고 교도소 식사 시간제한 폐지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기도 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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