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을 때 돌아와 한화 우승 이끌겠다’던 괴물의 약속은 지켜질까
돈 쓰기 주저하는 MLB 구단들 반응에 1년 앞당겨
(시사저널=김형준 SPOTV MLB 해설위원)
코리안 몬스터가 괴물로 돌아왔다. 류현진(36)은 한화 이글스와 8년 170억원의 계약을 맺고 KBO리그로 복귀했다. 2013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지 11년 만이다. FA 진출과 달리 포스팅으로 진출한 선수는 원소속팀으로만 돌아올 수 있다. 보장 금액 170억원은 두산 양의지의 152억원(4+2년)과 SSG 김광현의 151억원(4년)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 대우다.
토론토와 4년 계약이 종료된 류현진은 1년을 더 뛴 다음, 새 구장 건설에 맞춰 2025년에 돌아오려 했다. 따라서 류현진이 희망하는 조건은 1년 계약에 1000만 달러 이상 연봉이었다. 스토브리그 초반 마에다 겐타(35)가 디트로이트와 맺은 2년 2400만 달러 계약은 청신호로 여겨졌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시장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돌아갔다. 오타니 쇼헤이와 야마모토 요시노부(이상 LA 다저스), 이정후(샌프란시스코)만이 대박을 터뜨렸을 뿐, 나머지 선수들의 계약은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아시아 최초 메이저리그 방어율왕 등 뚜렷한 족적 남겨
메이저리그 야구는 지역 TV중계권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미국 프로 스포츠 중 가장 높다. 야구가 광고에 특화된 종목인 데다 1년에 162경기를 하기 때문에 케이블TV 회사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중계권을 따고 있다. 구단들은 수입의 대략 4분의 1 정도를 지역 중계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케이블TV 회사들은 OTT 시대 도래에 따른 가입자 수 급감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2022년 유료 가입자는 2014년 최고점 대비 30% 감소했고, 광고 수입도 폭락했다. 메이저리그는 14개 팀의 중계권을 가진 발리스포츠가 파산을 신청했고, 네 팀의 중계권을 보유한 AT&T 스포츠넷은 반납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중계권료가 지급되지 않은 샌디에이고와 애리조나의 중계권을 발리스포츠로부터 박탈한 다음 자체 제작하기도 했다.
중계권료 수입이 불투명해지다 보니 구단들은 돈 쓰기를 주저했고, 류현진도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의 다른 고객들처럼 역풍을 맞게 됐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류현진의 성과는 인정했지만 많은 나이와 다양한 부상 경력, 지난해의 구속 저하를 우려했다. 결국 류현진의 기준에 맞는 제안은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류현진 측은 샌디에이고를 포함한 두 팀으로부터 제안을 받았고 조건도 나쁘진 않았지만, 결국 한화를 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류현진은 한국인 선수로는 전대미문의 족적을 남겼다. 한국 선수가 100만 달러 포스팅을 받은 적이 없던 상황에서 다저스로 하여금 2573만 달러를 쓰게 한 류현진은 데뷔 시즌 192이닝 14승8패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하고 신인왕 4위에 올랐다. KBO리그에서 마구였던 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해, 필라델피아의 좌완 에이스 콜 해멀스 다음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듬해 류현진은 체인지업이 흔들렸다. 하지만 새로운 구종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커쇼에게 체인지업을 가르쳐주고 배운 슬라이더였다. 14승7패 3.38을 기록한 류현진은 부상으로 152이닝에 그쳤지만 피칭 내용은 데뷔 시즌보다 좋았다. 하지만 큰 벽이 앞을 막아섰다. 류현진은 KBO리그에서 19세 시즌과 20세 시즌 모두 200이닝을 던졌다. 이는 지난 100년간 메이저리그에서도 1930년대 밥 펠러(클리블랜드)와 1980년대 드와이트 구든(뉴욕 메츠) 두 명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미 다저스 입단 신체검사에서 손상이 발견된 류현진의 어깨는 3년 차 시즌에 탈이 났고, 결국 관절 와순 수술을 받았다.
경기 중에도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는 류현진은 어깨 수술 이후 빠른 공을 마음껏 던질 수 없게 되자 새로운 구종을 장착했다. 슬라이더보다 짧게 꺾이기 때문에 우타자의 몸쪽으로 던질 수 있는 컷패스트볼이었다. 류현진은 251승 투수인 CC 사바시아가 던지는 영상을 보고 이 공을 배웠다.
커터는 류현진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2019년, FA가 되는 걸 1년 미루고 다저스에 남은 류현진은 아시아 투수로는 1995년 노모 히데오(LA 다저스) 이후 처음으로 올스타전 선발투수가 됐다(아시아 역대 3호는 2021년 오타니). 제이컵 디그롬(뉴욕 메츠)에 이어 사이영 2위에 올랐고, 평균자책점(ERA)에서 양 리그 통합챔피언이 됐다. ERA 챔피언은 일본 투수들도 하지 못한 아시아 최초였다.
류현진은 4년 80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토론토의 에이스가 됐다. 블루제이스 구단은 류현진에게 등번호 99번을 허락했다. 99번은 역대 최고의 아이스하키 선수로 꼽히는 웨인 그레츠키의 등번호이자 NHL의 전 구단 영구 결번으로, 캐나다에서는 매우 특별한 번호였다.
류현진은 단축 시즌이었던 2020년에 대활약을 하고 토론토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사이영 투표에서는 3위를 차지해 2년 연속 3위 이내 입상에 성공했다. 아시아 투수가 3위 내에 두 차례 든 건 류현진(2019년 2위, 2020년 3위)과 다르빗슈 유(2013년 2위, 2020년 2위) 두 명뿐이다.
2022년 6월에 두 번째 토미존 수술을 받은 류현진은 지난해 8월 돌아왔고, 11경기 등판으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끝냈다. 통산 78승은 124승인 박찬호와 46승 차이지만, 승리기여도(WAR)에서는 박찬호와 같은 역대 한국인 공동 1위다. 박찬호가 강속구와 탈삼진으로 짜릿함을 선물했다면, 류현진은 완벽한 제구와 현란한 볼배합, 스피드 조절로 보다 섬세한 피칭을 했다.
문동주·김서현·황준서 등 팀 후배 성장에도 도움
류현진의 또 다른 꿈은 힘이 남아있을 때 한국으로 돌아와 한화의 우승을 이끄는 것이다. 2006년 류현진이 입단했을 때 한화에는 전설적인 투수들인 송진우(KBO 통산 210승 103세이브), 구대성(67승 214세이브), 정민철(161승 10세이브)이 있었다. 그해 미국에서 돌아온 구대성은 루키 류현진에게 체인지업을 전수했다.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로부터 한화의 에이스 계보를 물려받은 류현진은 다음 세대인 문동주(20), 김서현(19,) 황준서(18)에게 전달해야 한다. 류현진의 성장에 선배들의 도움이 있었다면, 이제는 후배들의 성장을 도와야 하는 셈이다.
공주시 출신인 박찬호는 메이저리그를 떠나 일본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2년을 뛴 다음 2012년 고향 팀인 한화에 입단했다. 만 39세 시즌이었던 박찬호는 진출 직전의 류현진에게 많은 조언을 했지만, 23경기에서 5승10패 5.06에 그침으로써 전력에는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반면 류현진은 박찬호보다 두 살 어린 나이에 돌아왔다. 떠날 때 올린 KBO리그 98승에 메이저리그 78승을 보태고 돌아온 류현진. 괴물의 완숙 피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기 없이 힘든 시기를 보낸 한화를 위해, 류현진은 선수 생활의 황혼이 아닌 새로운 봄을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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