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이 암살 공범?…막장 추리극 된 아이티 대통령 살해사건
부인 마르틴, 공범으로 기소…"암살 직후 '내가 대통령될 것' 말해"
현 총리는 암살 연루 의혹 제기한 검사장 해임
정치적 혼란 속에 수도 90%가 갱단 손에 넘어가
세계엔 다양한 지도자가 있습니다. 같은 정치를 두고도 누군간 독재, 누군간 강력한 카리스마로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쎈캐(스트롱맨)’들을 통해 그 나라를 알아보고 한국을 돌아봅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2021년 7월 7일 새벽 1시, 아이티 페티옹빌에 있는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의 자택에 괴한들이 난입했다. 조브넬은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서둘러! 위험에 빠졌어! 빨리 내 생명을 구해줘”라고 외쳤지만 괴한이 더 빨랐다. 조브넬은 얼굴과 몸통, 다리 등 12곳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이뤄진 범인들은 조브넬이 경호 목적으로 채용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애초 조브넬을 납치하려고 했지만 나중에 아예 살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브넬의 이웃은 “끊임없이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전쟁터에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무서워서 침대 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고 스페인어 매체 엘파이스에 말했다.
영부인 마르틴 모이즈도 팔과 복부에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됐다. 그는 미국 마이애미로 급히 후송돼 목숨을 건졌다. 마르틴은 CNN 인터뷰에서 “당시 경비원이 30~50명 있었기 떄문에 그들(괴한)이 우리 방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며 “그들이 대통령에게 총을 쏜 순간 ‘우리 둘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조브넬의 암살로 아이티가 일개 갱단이 대통령을 살해할 수 있는 무법천지란 사실에 아이티 국민과 세계는 경악했다.
차기 대통령 노린 영부인이 남편 살해?
이번 주 조브넬 암살 사건을 맡은 발서 베서 볼테르 수사판사는 이 사건의 용의자 50명을 기소했다. 법정에 서게 된 용의자 중엔 조브넬의 부인, 마르틴도 포함돼 있었다.
볼테르 판사는 당시 대통령실장이던 리오넬 발브룬의 증언을 증거로 삼았다. 발브룬은 조브넬 암살 직후 대통령실을 당시 총리던 클로드 조제프에게 맡기라는 압박을 마르틴으로부터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암살 사건 이틀 후 마르틴이 자신에게 전화로 “조브넬은 우리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며 “대통령은 티 클로드에게 내각회의를 구성하라고 했다. 그는 3개월 안에 선거를 치러서 내가 대통령이 되도록 할 것이다. 이젠 우린 권력을 쥐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티 클로드의 신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제프로 추정된다. 조제프는 이번에 마르틴과 함께 기소됐다. 암살에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전직 법무부 관료 조제프 펠릭스 바디오도 마르틴이 권력 독점을 위해 남편 제거에 가담했다고 진술했다.
볼테르 판사는 마르틴 증언에 일관성이 없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일례로 마르틴은 자신이 침대 밑으로 몸을 숨겼다고 증언했는데 침대와 바닥 간격이 35~45㎝에 불과한 점을 볼 때 이를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총리도 암살 직후 용의자와 두 차례 통화
마르틴 측은 아리엘 앙리 현 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이 자신의 암살 사건 연루를 감추기 위해 마르틴을 기소했다고 항변한다. 마르틴의 변소사인 폴 터너는 “아이티 정부는 이번 공격에 자금을 댄 실제 범인으부터 관심을 돌리려 하고 있으며 범인 중 일부는 아직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제프도 “그들은 2021년 7월 7일 나와 마르틴 모이즈들 죽이는 데 실패했다”며 “앙리는 아이티 사법제도를 아이티 사법제도를 무기화하고 나 같은 정적들을 기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앙리는 조브넬이 암살되기 이틀 전 총리에 지명됐다. 암살이 일어날 당시엔 취임 직전이었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직을 대행할지 조제프과 권력 다툼을 벌이다 미국 등의 지지로 권력을 거머쥐었다.
앙리 역시 암살 연루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베드포드 클로드 검사장은 조브넬 암살 직후 앙리와 바디오가 두 차례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얼마 후 앙리는 클로드를 해임했다. 클로드는 “증거가 압도적이다. 내 생각엔 앙리가 주요 용의자 중 하나”라고 CNN에 말했다. 한 수사관도 “앙리가 모든 일의 중심에 있다”며 “총리가 되고 그가 한 일은 우릴 방해하고 골탕먹이는 것뿐”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조브넬 암살에 마약조직이 개입됐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조브넬이 마약·무기 밀수 조직에 칼을 대면서 이에 연루된 정치인들과 폭력조직이 그를 제거했다는 주장이다. 조브넬의 한 참모는 “조브넬에겐 하고 싶은 정책이 있었지만 ‘그들이 나를 죽일 것이다’며 실행하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정치적 불안 속에 갱단 손에 넘어간 민생
조브넬 암살 이후 아이티 사회 혼란은 더욱 격화됐다. 현재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90%가 갱단 통제 하에 있다. 유엔은 지난해에만 아이티인 8400명이 갱단에게 살해·납치되거나 그들 때문에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정치적 불안정 속에 경찰력이 감소한 게 이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아이티 갱단 중 최대 조직인 G9의 두목 지미 셰리지에는 아예 자신이 총리라고 자처하고 있다. 아이티 정부는 치안 악화를 이유로 2016년 이후 선거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민생이다. 갱단이 기승을 부리면서 직장과 시장, 학교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는 형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아이티 경제는 더욱 수렁으로 빠졌다. 유엔은 케냐 주도로 다국적 경찰병력을 아이티에 파견하고자 했으나 케냐 법원이 제동을 건 상황이다. 브루노 메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아이티 대표는 “아이티 어린이와 그 가족들은 매일 가족을 잃거나 총포에 집이 파괴되는 공포를 겪고 있다”며 국제사회 지원을 호소했다.
박종화 (bel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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