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 이승만, 러시아-공산 전체주의 본질 꿰뚫은 위대한 정치가
설 연휴 온 식구가 ‘건국전쟁’을 봤다. 극장이 만원이어서 뿔뿔이 떨어져 앉아야 했다. 덕분에 각자 눈치보지 않고 영화에 빠져들 수 있었다. 기자인 나는 습관처럼 메모를 했고 젊은 내 딸은 눈물 훔치는 옆 사람을 구경했다고 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자 관객들이 일어나 나오면서 박수를 쳤다. 이쯤 되면 기립박수다.
다큐멘터리와 일반 영화의 차이는 팩트냐 아니냐다. 기사는 사실을 쓰고 소설은 아니다(칼럼은 의견을 쓴다^^). 이승만 칼럼을 쓸 때마다 달리는 댓글이 주로 ‘이승만은 6·25전쟁이 터지자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간 나쁜 대통령’이라는 것이었다. 수많은 피난민을 한강에 빠져 죽게 만들고는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켜주십시오” 국민 속이는 방송까지 했다는 건데 김덕영 감독은 그게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그래서 고맙다. 이제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을 한껏 존경해도 되는 것이다.
●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켰지만 과오도
어렵게 세운 대한민국을 지켜낸 뒤, 사사오입 개헌에 이어 4·19에 이르는 과정까지 이승만을 존경하기는 그러나 쉽지 않다. 한 인간을 단편적으로 평가해선 안 될 일이지만, 또 지금껏 이승만을 지나치게 박절하게 대한 점은 반성하고 시정해야하지만, 그럼에도 무조건 우상화하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주한 미국인들 사이의 공통된 화제는 80세의 이승만이, 특히 경제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요상하고 멍청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었다…미국으로부터 너무나 많은 무상원조를 받아내어…헤아릴 수 없는 부정부패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났다.’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가 불편하고 악의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 이승만이 통찰한 러시아의 침략본능
그럼에도 지금 이승만을 다시 보는 이유는 그가 러시아, 그리고 공산전체주의의 본질을 누구보다 앞서 꿰뚫어본 위대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이 ‘철의 장막’을 말한 것이 1946년이었다. 이승만은 1904년 29세 나이에 감옥에서 쓴 ‘독립정신’에서 러시아 전제정치의 본질을 알렸다. 꼭 120년 전이다. 러일전쟁이 터진 1904년 2월부터 넉 달 간 쓴 이 책에서 그는 ‘옛날부터 아라사 사람들의 정치적 목표는 오로지 남의 땅 빼앗는 것’이고 ‘전제정치로 강국이 된 나라’라고 갈파했다.
영국 스웨덴 심지어 일본도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근대국민국가의 시대였다. 러시아는 제 국민을 노예로 아는 전제군주국임을 자부하면서 고종에게 따라하라고 권했다는 걸 젊은 이승만이 알고 있다는 게 되레 놀랍다. ‘전제(專制)나 압제(壓制)나 위에서 하시기에 달려 있는데 어찌 백성이 감히 상관하겠는가…아라사는 전제정치로써 천하의 강국이 되어 만국이 다 두려워하는 바이니 우리를 단단히 의지하면 일본이 감히 어찌할 수 없을 테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장차 큰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하였다’(현재 아라사-소련-러시아를 따라가는 나라가 북조선 김씨 왕조 아닌가! ).
이승만은 전제정치의 원류로 대(大) 피득(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5)도 소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역사적 멘토로 삼는 인물이다. 그가 남긴 14조목의 비밀유서엔 약소국가를 뺏어오는 비법이 담겨 있다. 강한 나라와 먼저 힘을 합해 작은 나라를 나누어 없애고 그 후에는 틈을 타서 그 나라를 마저 쳐 없애며, 자유하는 나라에는 혼인이나 결연을 통해 먼저 내정을 간섭하여 권리를 주장하라는 거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2차 세계대전 뒤 어떻게 동유럽을 유린했는지, 한반도 북쪽에 얼마나 서둘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웠는지 돌아보라. 푸틴이 일으킨 2차 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전쟁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도 마찬가지다. 뼛속 깊이 박힌 아라사의 영토 야심, 전제정치 DNA는 소련공산당이 무너졌음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거다.
● “공산주의 따르는 정치는 반드시 실패”
1917년 소련공산당 정부가 들어서자 이승만의 반러감정은 반공사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를 ‘원래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성을 거역해가며 국민을 지배하려는 사상체계’로 간주했고 공산주의 이념을 따르는 정치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장담했다(홍용표 2007년 논문 ‘현실주의 시각에서 본 이승만의 반공노선’). 임정 국무총리 이동휘가 소련과 연대할 것을 주장할 때도 이승만은 “소련과의 협력은 조국을 공산주의 국가의 노예로 만들자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논리로 반대했다.
이승만은 ‘민주주의 대(對) 전체주의’ 장에서 ‘소련, 일본, 나치스, 파시스트 세력들은 자기들 정부와 같은 새 정부를 설립하기 위해 미국 정부를 전복시키겠다는 의도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썼다. 그리고 ‘한국의 운명은 세계의 자유민들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다’며 미국의 맹성을 촉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했던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을 연상시킨다. 이승만은 그만큼 세상을 앞서간 인물이었다.
● 푸틴까지 이어지는 표트르대제-스탈린 유산
답답하게도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소련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았다. 연합국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문제는 러시아”라며 가슴을 쳤지만 루스벨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탈린이 합리적인 인간이라고 믿고 모든 것을 주면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박지향 2023년 저서 ‘윈스턴 처칠, 운명과 함께 걷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300통 이상의 메시지를 분석한 ‘MY Dear Mr. Stalin‘이라는 책도 있을 정도다. 징그럽지 않은가. 또 미국 대통령이 될까 겁나는 트럼프가 과거 북한 김정은에게 보냈던 러브레터처럼.
소련 공산주의가 망하고도 공산전체주의 속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알렉세이 나발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이 17일 교도소에서 복역 중 급사했다. 47세. 푸틴 독재에 용맹하게, 또 유머러스하게 항거해온 나발니는 러시아 자유의 상징이었다. 푸틴에게 반란을 일으켰던 용병기업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작년 8월 돌연 비행기 사고를 당한데 이어 나발니까지 목숨을 뺏긴 거다. 1940년 지구 반대편 멕시코까지 자객을 보내 정적 레온 트로츠키를 살해했던 스탈린처럼, 푸틴이 멘토로 모시는 대피득처럼, 푸틴도 전제정-공산전체주의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형국이다. 어쩌면 푸틴 이후 또 다른 지배자까지도.
●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다행히도 우리는 ‘한국적 민주주의’ 망령에서 벗어났다. 우리끼리는 “이게 나라냐” 또 “이건 나라냐” 불만을 터뜨려도, 야당이 ‘검찰독재’라고 목청을 높여도, 대한민국은 세계인구의 7.8%만 경험하는 ‘완전한 민주주의’ 속에 사는 나라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기관 EIU가 15일 발표한 ‘2023년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에 나온다. 167개국을 완전한 민주주의(8점 이상),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6점 이상), 혼합 체제(4점 이상), 권위주의 체제(4점 이하)로 분류했는데 한국은 22등이지만 아시아에선 5개국 밖에 없는 완전민주다(뉴질랜드, 대만, 호주, 일본, 다음이 우리^^).
남의 나라 한탄할 때가 아니다. 북한은 권위주의 체제라는 말도 아깝고 안타깝다. 165등. 꼴찌에서 세 번째다. 우리에게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전체주의 독재국가 북조선처럼 됐을 공산이 무섭게 크다(‘눈 떠보니 북한’이라고 상상해보셔요. 얼마나 끔찍한지). 그것만으로도 위대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추앙할 이유는 충분하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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