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 프리미어12에서 대표팀 복귀? 9개 구단은 불편해지고, 대표팀은 웃는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2024년 KBO리그의 이슈를 류현진(37‧한화)이 다 빨아들이고 있다.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가는 듯했던 2023-2024 KBO리그 선수 이적 시장이 끝물에서 거대한 이름을 만났기에 당연한 일이다.
한화는 단번에 KBO리그의 지각변동을 이끌 후보로 떠올랐다. 당장 류현진의 개막전 선발 등판 여부가 화제가 되는 가운데 한화를 제외한 나머지 9개 구단이 류현진의 존재를 껄끄러워하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반대로 류현진을 선발할 수 있게 된 국가대표팀은 호재다. 올 시즌 뒤 열릴 프리미어12의 대표팀 에이스로 류현진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류현진이라는 스타의 ‘맨파워’다.
한화는 지난 22일 류현진과 8년 총액 170억 원의 대형 계약에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월 중순 이후 KBO리그 10개 구단 내부에서 파다하게 돌았던 ‘류현진 복귀’가 현실화된 것이다. 류현진은 2023년 시즌을 끝으로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 계약이 만료됐다. 메이저리그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우선적으로 메이저리그 잔류를 타진했으나 결국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한화의 손을 전격적으로 잡았다.
170억 원 계약에는 구체적인 조건을 밝히지 않은 옵트아웃(잔여계약을 포기하고 FA 자격을 획득)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년 계약을 모두 채우면 만 44세(2031년)까지 한화 소속으로 출전한다. 한화는 ‘만약 류현진이 계약기간을 모두 채우게 되면 한화이글스 송진우가 기록한 최고령 경기 출장 기록인 43세 7개월 7일을 넘어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기록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올해 만 37세인 류현진이 실제 8년 계약을 모두 채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이론적으로 KBO리그의 역사를 다시 쓸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류현진다운 대기록이다.
당초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잔류가 유력시됐다. 비록 나이가 있고 부상 경력이 걸림돌이었으나 팔꿈치 수술을 재활을 마친 뒤 지난해 돌아와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팔꿈치 수술 재활을 마치고 지난해 8월 복귀해 11경기에서 3승3패 평균자책점 3.46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건강하면 여전히 수준급 피칭을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때문에 류현진에 관심을 보일 팀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었고, 실제 류현진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지난해 11월 단장 회의 당시 “류현진은 내년에 메이저리그에서 뛸 것”이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오퍼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류현진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에 따르면 선발 보강이 필요했던 샌디에이고가 류현진에 다년 계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타 단년 계약에 옵션 등을 붙인 조건을 제안한 팀도 있었다는 설명이다. 메이저리그에 남는다면 언제든지 남을 수 있는 여건은 됐던 셈이다. 그러나 류현진은 고심 끝에 이를 거부하고 한화의 손을 잡았다. 류현진의 설명에 따르면, 우선순위를 한화로 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류현진은 23일 출국에 앞서 취재진을 만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더라. 다년 계약 이야기도 있었지만 내가 다년 계약 오퍼를 수락하면 마흔 가까이 던져야 했기 때문에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년 계약은 강력하게 거부했었다. 최대 1년으로 계약 기간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류현진은 항상 “선수 경력의 마지막은 한화에서 할 것”이라고 공언했었고, 만약 다년 계약을 수락하면 몸이 좋지 않거나 경기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한화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는 피하고 싶었다는 게 류현진의 설명이다.
여기서 한화의 날카로운 전략과 적극적인 러브콜이 류현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화는 ‘박찬혁 대표이사를 필두로 손혁 단장, 손차훈 전력강화 코디네이터, 최홍성 전략팀장 등 프런트의 전사적인 협업이 빛을 발하면서 이번 계약이 성사될 수 있었다. 특히 손혁 단장은 지난해부터 선수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며 국내 복귀를 설득해왔다. 1월 중순부터는 박찬혁 대표이사가 본격 협상 모드로 전환할 시점이라 판단을 내리고 류현진 복귀 프로젝트를 가동해 구체적인 협상을 주도했다’면서 ‘이처럼 한화 이글스는 류현진의 미국 현지 계약 상황을 지켜보며 물 밑에서 기민하게 움직였다. 복귀 여부는 전적으로 류현진의 결정에 달려 있었지만, 상황만 가능하다면 언제라도 류현진을 영입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왔다’고 그간의 노력을 설명했다.
류현진의 복귀는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는 대형 호재다. KBO는 23일 "야구 대표팀 감독으로 류중일 감독을 선임했다"라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류 감독은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고, 대표팀 리빌딩의 연속성을 이어 갈 지도자로 낙점됐다. 올해 프리미어12까지 일단 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한국 야구는 최근 세 번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참담한 예선 탈락, 그리고 계속되는 국제 무대에서의 성적 저하로 고전하고 있다. 이에 최근 젊은 선수들을 대표팀 전면에 세우며 2024년 11월에 열릴 프리미어12, 나아가서는 2026년 WBC와 아시안게임까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사실 가장 강력한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 프로 선수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즉, 프리미어12가 대표팀 리빌딩의 중요한 체크포인트이자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류현진은 프리미어12 대표팀에는 인연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프리미어12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에서 개최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WBC를 제외한 국제 무대에 40인 로스터 선수의 합류를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있다. 이 때문에 프리미어12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나설 수 없는 대회로 굳어졌다. 실제 2015년이나 2019년 대회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몇몇 선수들이 물망에 올랐고, 대회 출전을 희망하는 선수들도 있었으나 모두 불발됐다.
만약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을 했다면 프리미어12 출전도 자연스럽게 무산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한화로 돌아왔고, 이제는 메이저리그의 눈치를 볼 일이 사라졌다. 류현진의 경기력을 확인해야 하지만, 지난해 실력만 보여줘도 대표팀 에이스의 자격은 충분하다.
류현진도 대표팀 출전에 긍정적이다. 류현진은 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자리에서 취재진을 만나 "올해 프리미어 12가 열리는데 대표팀에 뽑히면 나갈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선수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를 뽑아주실지 모르겠지만 한 번 더 대표팀에 가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경기해보고 싶다"라고 긍정적인 대답을 내놨다. 뽑아주면 나가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류현진은 프로 데뷔 시즌이었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첫 성인 대표팀 태극 마크를 달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대표팀의 에이스로 중요한 경기를 책임지며 대표팀의 '전승 금메달'이라는 신화를 함께 썼다. 이 대회 금메달로 류현진은 병역 혜택을 얻었고 이에 메이저리그 진출의 발걸음도 가벼워질 수 있었다.
류현진은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차례로 참가했다. 다만 이후에는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다. 2013년, 2017년, 그리고 2023년 WBC에 출전할 수 있었으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류현진은 2015년 어깨 수술을 받았고, 2016년 가까스로 복귀했으나 2017년 시즌 준비가 더 급한 상황이었다. 시즌 전 열리는 WBC 출전은 어려웠고 다저스도 바라지 않았다. 2023년 WBC는 팔꿈치 수술 재활 중에 열려 모든 출전의 길이 차단됐다. 대표팀은 류현진이 없는 이 세 번의 대회에서 모두 기대 이하의 성적에 고개를 숙였다.
류현진으로서도 2024년 프리미어12가 태극마크를 달고 뛸 수 있는 마지막 대회일 수도 있다. 2026년 WBC 때는 만 39세다. 못 나갈 이유도 없지만 그때까지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2026년 아시안게임은 연령 제한이 있고 류현진을 와일드카드로 뽑기도 명분이 없다. 일각에서는 류현진이 2024년 프리미어12에 뛴 뒤 좋은 성적을 거두고 명예롭게 대표팀에서 물러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대표팀은 반기는 것에 비해, KBO리그 팀들은 긴장의 나날이다. KBO리그 9개 구단들은 류현진이 돌아온 한화의 전력을 잔뜩 경계하고 있다. 이숭용 SSG 감독은 “문동주가 4선발이다”라면서 “류현진은 외국인 에이스급이다. 한화는 외국인 투수 세 명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른 팀들의 토종 1선발과 외국인 투수를 붙이는 매치업이 가능하다. 확실한 토종 에이스가 있는 이점을 한화가 누릴 수 있게 됐다”고 경계했다. 추신수는 “한화가 강해질 것 같다. 올해도 그렇지만 내년이 더 강해질 것 같다”고 나름의 전망을 내놨다.
실제 한화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리빌딩에 나섰지만 이 과정이 굉장히 더뎠다. 팀의 주축이 될 만한 기둥들이 부족했고, 젊은 선수들은 제각기 시행착오를 거쳤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조금씩 그 기둥들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2023년 시즌을 앞두고는 채은성과 6년 90억 원에 계약했고, 마운드에서 투수들을 이끌 수 있는 이태양을 친정팀에 컴백시켰다. 2024년 시즌을 앞두고는 타선 보강을 위해 안치홍과 4+2년 계약을 하며 화력을 더했다. 외국인 타자 라인업은 지난해보다 나빠지기 어렵고, 외국인 투수 두 명(펠릭스 페냐, 리카르도 산체스)은 지난해 활약했던 선수들로 어느 정도 검증된 상수들이다. 여기에 문동주를 필두로 한 젊은 선수들도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신‧구 조화의 기대감이 읽힌다.
여기에 류현진이 추가됐다는 것은 이 노력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류현진은 건강하다면 10승 이상이 가능한 확실한 투수다. 류현진이 추가로 쌓을 승수만 계산해도 한화는 지난해 이상의 성적이 충분히 가능한 전력으로 보인다. 여기에 승리를 쌓아가며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고 똘똘 뭉친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도 가능하다고 본다. KBO리그 9개 구단 사령탑들이 한화가 지난해보다 더 쌓을 승수를 경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한화의 전력은 기대룰 모으면서도 약한 전력이었다면, 올해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한화가 KBO리그 구단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셈이다. 류현진 또한 “12년 만에 이렇게 돌아왔는데 꼭 한화 이글스가 포스트시즌에 갈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다지며 사실상의 선전 포고에 나섰다.
류현진은 그간 한국에서 착실하게 몸을 만들어왔다. 다른 선수들처럼 1차 전지훈련을 해외에서 착실하게 치르지는 못했지만, 현재 상태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이다. 류현진은 23일 “일단 토미존 수술을 하고 나면 2~3년차 때가 가장 팔을 편안하게 해주는 시기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여태껏 순조롭고 편안하게 진행한 것 같다”면서 “일단 현재 투구수로 보면 괜찮은 상황인 것 같다. 이 시기에 거의 65개 정도 던진 것은 어떻게 보면 생각보다 많이 던진 것일 수도 있다. 아직 100%를 다해서 던진 것은 아니다. 오늘 가서 느껴봐야 할 것 같다”면서 개막전 선발의 가능성도 열었다.
한화는 오는 3월 23일 잠실구장에서 지난해 챔피언 LG와 시즌 개막전을 가진다. 류현진의 몸 상태만 괜찮다면 개막전 선발이 유력하다. 선수의 실력도 그렇고, 상징성에서도 그렇다. 당장 류현진과 첫 판부터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 LG도 류현진 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화보다 위에 있지만, 적어도 지난해처럼 많은 승수를 쌓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도 있다.
염경엽 LG 감독은 “우리가 예상한 전체 승수에서 1.5승, 2승이 빠진다. 올해 최다승(88승) 달성하기 쉽지 않겠다”고 류현진 복귀가 팀 전체 승수 계산을 바꿔놓을 정도의 파급력이 있다고 인정했다. 염 감독은 류현진의 존재로 한화가 4강에 들어갈 수 있다면서 “(류)현진이 하나만 들어온 게 아니라, 팀의 구성이 확 좋아졌다. 이제 4선발이 강점이 됐다. 확실하게 10승 할 수 있는 투수가 리카르도 산체스, 펠릭스 페냐, 문동주에 류현진까지 있다. 1대1로 붙었을 때 우리가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류현진이라는 스타가 한화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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