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중국] 여기가 진짜 북한대사관 맞지?
전통 건축 양식부터 정치적 메시지까지…나라별 대사관 보는 재미 쏠쏠
북한대사관, 게시판에 걸린 사진과 동영상 주기적 교체로 메시지 보내
베이징 시내 중심가엔 외교 거리가 있다. 싼리툰(三里屯)을 중심으로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자동차로 5~10분 정도 거리에 중국에 공관을 설치한 나라들의 대사관이 몰려 있다. 중국은 관리를 쉽게 하려고 이렇게 각국 대사관들은 베이징의 서너 군데 지역에 모아놓았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북한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북한 사람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만날 수 없어서 더욱 그렇다. 북한은 현재 44개 해외 공관을 운영 중인데, 최근 1~2년 사이 10개 가까운 나라에서 공관을 철수시켰다고 한다. 운영 비용이 없어서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해외 공관 중에 우리나라 사람이 그나마 접근이 가능한 곳이 베이징 북한대사관일 것이다. 유럽 지역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북한 공관들은 아무래도 그 지역에 거주하거나 방문하는 우리 국민이 적기 때문이다.
북한대사관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20여 미터쯤 가면 게시판이 나온다. 북한이 자국 소식을 전하는 곳인데, 거의 전부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과 동영상이다. 보통 3~4개월에 한 번씩 교체되곤 하는데, 게시물이 바뀔 때마다 북한의 의도나 메시지를 해석하는 것도 베이징 한국 특파원들의 몫이다.
중국에 있는 공관이다 보니 대부분은 북한과 중국의 우호 협력에 관한 사진이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 북러 정상회담 사진이 걸려서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중국의 앞마당에서 러시아와의 친밀을 내세운 걸 두고 북한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한다든지,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든지 하는 해석이 분분했었다.
가장 최근에 바뀐 사진은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가 나란히 있는 사진이었다. 2월 16일은 김정일의 생일이자 북한 최대 축제인 광명성절이기 때문에 이에 맞춰서 사진을 교체한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점은 사진들이 거의 전부 김정일 위원장이 생필품 공장이나 농산물 산지 등 생활 현장 지도를 하는 사진들이라는 것이다.
지난달 23~24일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지방 인민들에게 기초식품과 식료품, 소비품을 비롯한 초보적인 생활필수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배급망 붕괴를 시인하고 당 간부들을 질책한 적이 있다. 그 직후에 게시판에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 시절 생필품 현장을 둘러보는 사진을 걸어 놓은 건 어떤 의미일까?
북한대사관 맞은편엔 대형 북한식당도 있다. ‘류경 해당화’라는 식당이 그곳이다. 예전엔 북한식당에 한국 사람들도 자유롭게 드나들었는데, 지난해 초부터 베이징의 북한식당은 한국 손님들을 받지 않고 있다. 식당에 들어갔다가도 한국 사람임을 밝히는 순간 종업원들은 바로 딱딱한 태도로 돌변해 돌아가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도 기자가 손님들과 함께 ‘류경 해당화’를 방문했는데, 종업원에게 “서울에서 왔다”고 말하는 순간 “봉사할 일 없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곤 고개를 돌려버렸다.
북한대사관 말고도 베이징 외교 거리엔 200개 가까운 나라의 대사관이 오밀조밀 모여있어서 이곳을 지나면서 각국의 대사관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라크 대사관의 경우 이슬람 양식으로 건축돼 멀리서 봐도 아랍국가의 대사관인 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몽골대사관은 경내에 몽골 민속 가옥인 ‘게르’ 모양의 문화관을 지어놓아 이곳을 지날 때면 항상 쳐다보게 된다.
그런가 하면 대사관을 통해 각 나라의 정치적 메시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베이징의 서방국가 대사관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를 응원하는 게시물을 대사관 벽에 설치했었다.
또, 대사관 담장에 각국의 대표 관광지나 유명 인사들의 사진을 걸어놔 베이징 시내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국을 홍보하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축구의 나라 아르헨티나는 대사관 정문 위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 영상을 24시간 틀어놓고 있었다.
이중 대한민국대사관은 베이징의 각국 대사관 중 손꼽힐 정도로 넓은 부지에 최신식으로 지어졌다. 한중 관계가 무척이나 좋을 때 넓은 부지에 최신식 건물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사관이 새집으로 이사한 2017년 여름은 싸드(THAAD) 사태가 터지며 한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때이다. 사이 좋을 때 넓은 집터를 줘서 새집으로 이사했는데, 입주하자마자 땅 주인과 사이가 틀어진 격이다.
그 뒤로는 익히 알려진 대로다. 정상 간 교류는 끊긴 지 몇 년째고, 민간 교류나 문화 교류 역시 사실상 맥이 끊겼다. 교류가 없으면 작은 상황이 큰 오해로 번지기 쉽다. 중국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고, 북한 문제의 직접 당사국이며, 가장 인접한 이웃 국가이기도 하다. 현명한 외교 정책으로 두 나라 관계 개선의 날이 하루빨리 와야 하는 이유다.
윤석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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