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추한 아름다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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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영어로 'Fine Art'다.
이를 근대 일본에서 '美術'로 번역하면서 우리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미술은 아름답다'는 선입견이 뚜렷해졌다.
루브르 미술관이 매우 저렴하게 구매해 전시하면서 프랑스 화가들이 눈여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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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미술'은 영어로 'Fine Art'다. 이를 근대 일본에서 '美術'로 번역하면서 우리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오해가 생겼다. '미술은 아름답다'는 선입견이 뚜렷해졌다. 물론 서양에서도 그런 관점이 지배적이어서, 움베르토 에코는 '미의 역사'와 함께 '추의 역사'를 쓰기도 했다.
여기 아름답지 않은 그림이 있다. 하물며 자연과 인간성을 모독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풍긴다.
렘브란트(1609~1669)가 그린 '도살된 소'(1655)라는 작품이다.
17세기 강대국으로 성장한 네덜란드에서는 정물화가 크게 유행했다. 이 작품도 렘브란트가 그린 정물화 중 하나인데, 이처럼 도살된 소를 단독으로 그린 그림은 다른 화가에게선 찾기 어렵다.
네덜란드 정물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인생에 대한 회의'다. 정물화에 그린 꽃이나 과일, 시계 등은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경구를 표상한다.
꽃은 시들고, 과일을 썩으며,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렘브란트가 그린 소의 물질성도 이런 격언을 드러낸다.
미(美)라기보다는 추(醜)를 드러낸 그림이어서 당대나 이후에 달가운 평가를 받지 못했다. 루브르 미술관이 매우 저렴하게 구매해 전시하면서 프랑스 화가들이 눈여겨봤다.
가장 눈에 띄는 모방작을 남긴 건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파리에 정착해 활동한 샤임 수틴(1893~1943)이다. 렘브란트 그림에 감흥 받아 '가죽을 벗긴 소'(1925)를 그렸다.
수틴은 표현주의 화가로 분류되는데, 렘브란트보다 거칠게 그렸지만, 그의 정신을 오롯이 따라 '표현'하며 여러 점 그렸다.
또 이어진다. 영국 현대 최고 화가로 평가받는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이다.
'기관(器官) 없는 신체를 그린 화가'로 불리며, 종교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인 '삼면화' 형식을 취해 기괴한 형상을 그린 화가다.
처음 영감을 얻은 대상이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였다고 할 정도로 베이컨은 인간을 '물질성'으로 인식하며 '존재의 불안'을 펼쳤다.
그는 '고기와 남자 형상'(1954)이라는 작품에서 공포에 사로 잡힌 듯한 남자 뒤로 렘브란트가 그린 도살된 소를 부활시켰다.
베이컨은 "고통받는 인간은 모두 고기다."라고 외치며 인간 존재의 힘겨운 육체성을 꾸준히 강조했다.
이민하 시인(1967~)의 시, '애인은 고기를 사고' 가 생각났다. 일부를 인용한다.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배꼽을 어루만지고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붉은 신호등을 어깨에 매달고 달려간다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산부인과에 다녀오고 애인은 고기를 사고 나는 손목의 피를 풀어 욕조에 잠긴다...>
여자의 고통이 끊이지 않는 동안 남자는 스무 해째 계속 고기를 산다. 잔인한 연애의 무심함과 비극적인 종말을 읊은 시다.
인간은 육체를 벗어날 수 없기에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육체성에 대한 직시는 인간에 대한 모욕일까? 타락일까? 아니면 당위일까? 존중일까?
미(美)는 추(醜)가 있기에 존재한다. 선(善)도 악(惡)이 있기에 평가된다. 육체는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할지라도 육체 속에 고귀한 정신이 내재한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일 수 없다는 진실을 예술이 가르쳐준다. 작품이 아름답지 않아서 감상하기 다소 불편할지언정 작품 속엔 항상 '삶'이 스며 있다.
예술은 '자유와 해방'이라는 삶의 목표를 가르쳐준다. 예술은 단지 '향유'가 아니라 '배움'이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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