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대신 눈으로 '카톡 8글자' 쓰기…30분 걸렸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기자 2024. 2. 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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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근육 말라가는 '근이영양증'…치료법 아직 없고, 스무 살 전에 죽을 거라 예고
자가 호흡 어려워져 '인공호흡기' 24시간 달아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로 게임하고 영상 만드는 크리에이터, 편견 깨고 싶어 시작
"언제 죽을지 몰라도 괴롭다고 울고 있을 수 없어, 그 시간도 아까워, 의미 있는 일 해야지요"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세상이 처음 불편해졌지요. 직접 체험해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며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가 보이도록 힘쓰려합니다.

근육이 굳어 움직일 수 없는 장익선씨의 가장 좋은 친구는 컴퓨터다. 누워서도 바라볼 수 있게 단단히 고정했다. 그의 병명은 '진행성 근이영양증'. 이젠 자가 호흡도 어려워 인공호흡기를 쓴다. 눈으로 안구 마우스를 움직여 유튜브 영상까지 만든다./사진=남형도 기자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뿐이었다. 누워서 바라보는 컴퓨터 화면이 유일한 우주였다.

내 두 팔과 두 다리. 그게 모두 굳었다고 상상해봤다. 곁에서 누워 있던 장익선씨(38)에겐 그게 일상이었다.

눈동자를 굴렸다. 이를 따라 안구마우스 커서가 움직였다. 제멋대로, 사정없이 화면을 날아다녔다.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원하는 곳으로 마우스 커서가 안 가네요. 힘든데요."(기자)

"처음엔 힘들어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게 AI, 최첨단이어서 편한 줄 알지만요."(익선씨)

익선씨의 우주를 잠시 빌려, 안경을 벗고 눈을 깜빡여 글씨를 써봤다. 1분도 안 돼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내는 건지 알게 됐다. 여덟 글자를 쓰기조차 힘겨웠다. 안경 벗은 게 쑥스러워 블러 처리했다./사진=익선씨 활동지원사 이모님

고개는 가만히 두라는 익선씨 조언에 따라 동공만 움직이려 애썼다. 그러니 마우스 커서가 아주 조금씩 말을 듣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을 실행하려 노란색 아이콘을 노려봤다. 닿지 않았다. 아이콘 근처 다른 곳으로 시선을 바꿔봤다. 마우스 커서가 갈 듯 말 듯, 약이 바짝 올랐다. 됐다, 싶을 때 흥분해서 눈동자가 휙 흔들려버렸다.

커서를 노려보며 10분 넘게 끙끙댔다. 짜증이 꽉 찰 무렵에야 겨우 카카오톡 아이콘에 닿았다. 그 순간,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그게 마우스 클릭이었다. 카톡이 마침내 실행됐다.

눈알이 아프고 어질어질했다. 그만하고 싶었다. 맘이 묵직해졌다. 몰랐던 세상은 여전히 많았기에.

5살 때부터 온몸이 굳고 말라갔다
해맑게 웃는 익선씨와 그의 어머니./사진=익선씨 제공
'후우우우욱, 탁. 후우우우욱, 탁.'

공기를 불어넣는 인공호흡기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말할 때 틈틈이 숨이 들어가야 한단 걸 새삼 알았다. 10초만 빼도 호흡이 어렵다고 했다. '숨 쉬듯 당연하다'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앓는 병은 '진행성 근이영양증'. 10만명 중 약 4명이 걸리는 희귀병. 시간이 흐르며 빠르게 근육이 굳고 말라가는 무서운 병. 처음 진단받은 건 5살 때였다. 계단 오를 때 난간을 잡는 아들을 보며, 부모님이 데려간 병원에서였다. 병이 익선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호흡 근육이 약해져 인공호흡기를 24시간 써야하는 익선씨./사진=익선씨 제공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빼앗아 갔어요. 걷지 못해 휠체어를 타게 됐고요. 앉는 것도 힘들어졌어요. 누워서만 지냈지요. 호흡 근육도 약해져 스스로 숨 쉴 수 없게 됐지요. 24시간 인공호흡기를 써요."

굳은 몸 안에 꼼짝 없이 갇혔다.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와 엄지손가락, 발가락. 그것도 마디 끝만 살짝 가능했다.

익선씨는 방황하고 좌절했다. 매일 스스로 반복해서 물었다.

'이런 내 삶이 희망이 있을까.'

눈으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다니, 대체 어떻게…
손으로 마우스를 쓰는 비장애인보다 게임을 더 잘한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이를 찍고 편집해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어 올린다. 편집도 전부 그가 직접 한다./사진=익선씨 제공
'컨트롤 지리네, 엄청 잘하시네요.'
'이건 정말 대단하다.'
가장 좋아하는 치킨을 먹어도, 살이 자꾸 빠지는 익선씨. 누워 있는 침대가 그의 우주이며, 바라보는 컴퓨터가 가장 좋은 친구다./사진=남형도 기자
크리에이터인 익선씨가 올린 영상 댓글이 이랬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영상이었다. 게임 화면이 띄워져 있었고, 오른쪽 하단엔 인공호흡기를 한 익선씨 모습이 작게 보였다. 그는 눈을 쉴 새 없이 굴리고 깜빡이고 있었다.

유튜브 채널 이름은 '눈으로 쓰는 근육병 일상.' 근이영양증 희귀병 유튜버. 천만번의 눈 깜빡임으로 세상과 소통한다는 사람.

익선씨 유튜브 채널인 '눈으로 쓰는 근육병 일상' 영상에 달린, 구독자들의 댓글./사진=장익선씨 유튜브 채널 화면 캡쳐

그런 설명 없이, 게임 화면만 보면, 손으로 마우스 컨트롤을 한다고 믿을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굳은 몸으로 눈동자만 움직여 이렇게 하는 거였다. 어떻게 가능하게 된 걸까 싶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그를 만나러 온 것도,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서였다. 누워 있던 익선씨가 날 반기며 말했다.

"조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영상 편집은 누가 하느냐고 묻기도 했고요. 다 제가 하고 있지요."

절망에만 머무를 수 없어…프랑스까지 메일 보내 장비 구했다
이 장비는 익선씨가 오랜 시간을 들여 검색하고, 또 찾고, 수소문해 일일이 다 구한 거란다. 비용도 수백만원씩 들었다. 게임을 하고 싶은 근육 장애인들이 많은데, 접근성이 너무 낮아 장비를 구하기조차 어렵단다./사진=익선씨 유튜브 영상 화면 캡쳐
누워 있는 침대가 익선씨에겐 전부이고 우주였다. 일상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다. 침대 위엔 온갖 기계가 주렁주렁 달렸다. 책장엔 의약품이 가득했다. 약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라 했다.

가만히 있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거였다. 그저 매일 조금씩 더 근육이 약해지는 걸 바라보는 게. 익선씨는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삶은 계속되잖아요. 어둠 속에서만, 절망 안에서만 머물러 있을 수 없었지요."

3년 전부터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 근육병에 대한 편견을 줄이고,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였다. 카메라, 마이크, 조명, 안구마우스 등 장비 하나하나를 구했다. 기왕 시작한 건데, 제대로 해보잔 생각에 투자했다.

섬세한 턱의 움직임으로 컨트롤이 가능한 깃털 조이스틱. 이 역시 다 해외에서 직접 구매했다./사진=익선씨 유튜브 영상 화면 캡쳐

근육병을 알리는 것만으론 컨텐츠에 한계가 있다고 느꼈단다. 게임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당장 장비를 구하는 것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외국은 장애인의 게임 접근성이 높은데, 우리나라는 관심이 너무 적어서요. 장비를 일일이 다 해외직구로 수입해서 써야 하지요."

이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 업체와 주고받은 메일을 보여줬다. 몇 달에 걸쳐 계속된 게 보였다. 미세한 힘으로 클릭할 수 있는 스위치, 인터페이스, 턱으로 움직일 수 있는 깃털 조이스틱 등. 그걸 하나하나 구하기 위해 이리 애써야 했다.

'익선님 응원합니다'…여덟 글자 카톡 쓰는데 30분
눈으로 스타크래프트 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익선씨. 정말 실력이 좋은 게 느껴졌다./사진=남형도 기자
익선씨가 눈동자를 움직여 스타크래프트 하는 걸 직접 봤다. 세팅을 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24시간 활동을 보조해주는 이모님이 도와주었다. 손과 발끝엔 스위치를, 나머진 안구마우스로 컨트롤하는 거였다.

프로토스 종족을 고르고, 자원을 모으고, 유닛을 생산하고, 컴퓨터와 대등하게 싸우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봤다. 그동안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죄송하지만, 제가 한 번 눈으로 게임 해봐도 될까요?"

나름 중학교 때 스타크래프트를 해본 터라 호기롭게 도전해보기로 했다. 익선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침대에 누웠다.

익선씨가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주 종족인 프로토스로 게임하는 모습./사진=남형도 기자

눈동자를 굴릴 때마다 커서가 미친 듯이 움직였다. 이게 아니구나 싶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해도 원하는 방향에 가지 않았다. 과학 기술을 너무 맹신했다. 진짜 어려웠다.

누르고 싶은 아이콘을 바라봐도 그리로 가지 않았다. 감으로 근처를 바라보며, 아주 천천히 동공을 움직여야 했다. 카카오톡 창을 띄우는 데에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옆에 걸 누르고, 그걸 끄는데 또 고생하고, 애간장이 탔다.

기자가 눈을 움직이고 깜빡여, 안구마우스로 카톡을 보내는 화면. 사정없이 빠르게 움직여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사진=남형도 기자

익선씨와의 대화창을 띄우고, 숨을 참으며 한 글자씩 썼다. '익선님 응원합니다.' 전하고픈 말이었다.

그 짧은 글을 다 쓰고 나니, 30분이 흘러 있었다. 하도 굴렸더니 눈알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왜 돌아다녀", "안락사 시켜"…할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
12년 전에 원인 모를 가스가 복부에 차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익선씨. /사진=익선씨 제공
12년 전엔 익선씨가 죽을뻔했다. 원인 모를 가스가 복부에 찼다. 배가 부풀어 올랐다. 어떤 방법을 써도 효과가 없었다. 이미 안쪽 근육까지 약해져 있어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심할 땐 한 숟갈만 먹고 버티기도 했다. 그런데도 가스가 심하게 찼다. 30킬로가 안 될 정도로 살이 빠져 앙상해졌다. 눈도 뜰 수 없고, 호흡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잠도 잘 수 없고, 헛것이 보이더라고요. 저승사자처럼 생긴 검은 물체가 제 옆에 있는 느낌도 들었고요. 이젠 끝이구나 생각했지요."

방 안에 있는 형광등 때문에 눈물도 자주 흘렸다. 가래도 주기적으로 뱉어야 해 활동보조사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익선씨는 그때 기도했다.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살려주시고, 없다면 거두어 가달라고. 기적적으로 몸 안의 가스가 사라지면서 비로소 살아날 수 있었다. 그때 다시금 깨달았다. 삶의 모든 게 당연히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 숨 쉬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지금 입는 옷조차도. 그때 남긴 글이 이랬다.

'모든 걸 잃고 나서야 보여지는 게 있다. 우리가 잠이 들어 내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자체가 기적이라는 사실이다.'

삶을 더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남은 인생을 압축적으로 살겠다고. 뭐든 주저 없이 도전했다. 검정고시도 통과하고, 사회복지학은 학사와 석사까지 땄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땄고, 한국근육장애인생명권연대를 만들어 권리를 외치고, 농성하며 목소릴 높였다.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확보를 위해 토론회에 참석한 익선씨./사진=익선씨 제공

그 과정은 다 힘겨웠다. 희귀병과 장애, 그러니 차별을 이중으로 당했다. 어디 나가기만 하면 이런 얘길 듣는 게 보통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왜 돌아다니냐고 했지요. 기차를 타도, 식당에 가도, 호텔에 가도, 다 나가라고 하고요. 죽으면 책임질 거냐면서요. 막연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이 사람은 이럴 것이다.' 존재를 부정당하기도 해요. 그냥 안락사시키라고. 아예 의미가 없다고 보는 거지요."

그런 이들에게 '내가 생각한 게 틀릴 수 있구나'란 걸 전하는 것. 누워 있는 이도 똑같은 사람이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어느덧 구독자 3200명을 넘긴 그는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틀린 거라고.

"의기소침해지지 않았다, 포기하면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엄지손가락을 겨우 까딱할 수 있는 정도로 남아 있는 근육. 아주 미세한 힘으로도 클릭할 수 있게 만든 스위치다./사진=남형도 기자
쓰던 걸 멈추고 기사에 달릴 댓글을 예상해본다. '대단하다', '인간 승리다', '존경스럽다', '부끄럽다'.

그 이후를 상상한다. 익선씨 삶은 달라질 게 없다. 본질은 그가 대단하다며 존경을 받는 것도, 구독자가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앞으로 나아갈 삶이, 또 그처럼 근육병이 있는 이들의 하루가 바뀌는 게 '의미'인 거다. 익선씨가 힘주어 말했다.

"지원이 거의 없다 보니까, 이런 현실에 대해 계속 바꿔달라 요구해요. 그런 게 알려져서 저와 같은 근육 장애인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길 바라는 거지요. 최소한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고요."

가장 필요한 건 활동지원사 시간. 부모님하고 함께 산다고 시간을 조금밖에 안 준다고. 어떤 장애든, 어떤 힘든 상황에 있든 상관없이.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다고 시간 더 주는 것도 아니란다.

익선씨는 24시간 활동보조를 받고 있지만, 모두가 이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당선됐을 때, 죽기 직전까지 이르렀던 익선씨가 절박하게 생활하는 영상을 보냈다. 그가 직접 만나러 왔고 24시간 보조를 받게 됐다. 그 덕분에 자립해서 살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모님도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며, 남동생도 선생님을 못 했을 거라 했다.

익선씨의 일상 하나하나에서, 손과 발과 마음이 되어주는 활동보조사 이모님. 세 분이 돌아가며 24시간씩 지원하는 구조다./사진=남형도 기자

가족부양의무제에 대한 비판이었다. 가족이 돌보고 희생하는 걸 당연시하는 생각. 20분마다 밤새도록 자세를 바꿔줘야 하는데, 어머니가 잠을 한숨도 못 잤단다. 사람이 살 수가 없는 거라고.

"혼자 있다가 활동 보조 시간이 없어서 돌아가신 분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생명권 연대를 만들었고, 침대를 끌고 국회까지 쳐들어가기도 하고, 목소릴 냈었던 거지요. 왜냐하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요."

어딜 가든 거절당해도 의기소침해지지 않은 사람. 끝없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아도 오늘 하루를 잘 살자며 계속 도전하는 사람. 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민원 넣고 싸우며 독종이라 소문났을 사람. 병은 통제할 수 없지만,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로 맘먹은 사람.

그를 보며 읽었던 책의 한 문장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차별받은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을 같은 존재라고 여기거나 차별받았으므로 저항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연결지었다. 하지만 나는 차별 받은 존재가 저항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라고 하는 게 차별인 것이다. 나는 부디 그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홍은전 - 그냥, 사람 中)

5월 21일. 꽃이 활짝 피는 가장 좋은 봄에 태어난 익선씨. 어머니가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다. 구독자가 선물한 케이크란다./사진=익선씨 유튜브 영상 캡쳐

에필로그(epilogue).

지난해 5월 21일. 그날은 익선씨 서른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어머니와 활동지원사 이모님이 왔다. 그가 좋아하는 콩나물과 두부, 고기도 샀다. 닭꼬치가 후라이팬에 구워지는 소리가 지글지글났다. 생일엔 빠질 수 없는 미역국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덕담과 함께 케이크에 촛불이 켜졌다. 초가 언제 이리 많아졌냐며 농담이 오갔다. 익선씨를 대신해 어머니가 촛불을 껐다.

그에게 생일은 어떤 의미였을까.

환히 웃는 게 좋아서, 그가 보내준 여러 사진 중 이걸 꼭 넣고 싶었다. 그대로 잘 유지되다가, 기적처럼 치료제를 쓸 수 있기를 바라며. 그 힘으로 다시 이리 웃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사진=익선씨 제공

5살 때 의사가 말했다. 스무 살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그처럼 근육병을 가진 친구들의 단톡방이 있다. 28명 중 3명이 이미 하늘나라로 떠났단다. 숨질 거라던 스물을 넘겨 17년을 덤으로 살고 있단다. 그러나 몸의 기능은 매일 약해지고, 심장은 정상 기능의 25%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생일 소망은 단 하나라고 했다.

"지금 이대로라도 잘 유지됐으면 하는 거지요. 저에게 생일은, 그 소망이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하고요."

끝으로 그가 덧붙였다.

"오늘도 저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어요."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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