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안 보고 육아시간 확보 ‘영웅담’ 넘쳐나길

한겨레 2024. 2. 2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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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박수정의 오늘, 여성노동자
‘맘시생’ 거친 엄마 공무원
게티이미지뱅크

사기업 10년 다니고 ‘공시’ 도전
최종면접 때 “둘째 안 낳겠다”
복무규정엔 ‘24개월간 단축근무’
하루에 2시간씩 꿋꿋이 챙겨

다미(가명)씨는 몇해 전 “나이 든 신규자”로 공무원이 되었다. 그 전에는 사기업에서 10여년 일했는데, 바쁜 시기에는 퇴근이 없는 업계였다. 결혼하고 아이를 생각하니 답이 없었다. 보육시설을 이용해도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는 육아가 안 될” 근무 환경이었다. 다미씨는 부모님의 희생을 바라지 않았다. 35년차 인테리어 도장공으로 일하는 엄마가 자랑스러운 딸은, 자신 앞에 놓인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조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노동자가 ‘만 8살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하여 근로시간의 단축’을 신청하면 허용해야” 한다고 했지만, 다미씨가 일하는 사기업 현장에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이제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어 다미씨는 새 길을 찾아나섰다. 경력과 소득을 포기하고 출퇴근 시간과 복지제도가 보장되는 공무원에 도전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의 ‘특별휴가’에 따르면 “5살 이하의 자녀가 있는 공무원은 자녀를 돌보기 위하여 24개월의 범위에서 1일 최대 2시간의 육아시간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미씨는 ‘공시생’(공무원 임용시험 준비 수험생)으로 시작해 ‘맘시생’이 되었다. 임신·출산을 거쳐 육아하는 엄마 공시생이었다.

“육아 때문에…” 화살이 된 면접관 질문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아이가 안 생기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어요. 나이가 있으니까요. 맘시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육아하면서 시험 준비하는 엄마가 많은데, 합격률은 희박할 거예요. 가족이 도와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무관심 속에서 혼자 아등바등하는 사람이 훨씬 많거든요. 제 남편만 해도 굉장히 힘들게 일하니까 육아를 맡아주지는 못했어요. 성공을 확신하기가 어려우니까 더 그랬겠죠. 아이 낳기 전에도 안 됐는데, 아이를 돌보면서 공부하는 게 되겠냐는 거죠. 맘시생들은 시험 전날까지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시험 보러 가요.”

다미씨는 수험서가 든 배낭을 메고 노량진 학원가를 오갔다. 만원 전철에서 그나마 배낭이 몸의 균형을 잡아주더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시험에 떨어진 게 한이 돼 산후조리원에도 수험서를 챙겨 갔다.

“아이 낳고 6개월 만인가 다시 시험장에 갔어요. 모유를 먹일 때라 막 젖이 붇고 차오르는 거예요. 다들 열심히 시험에 막 달려드는데 저 혼자만 멍하게 있었어요. 집중력이 떨어지는 거죠. 그간도 책을 붙들긴 했지만, 나는 하루 24시간 날마다 아기 옆에 있었잖아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안 되는구나.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내 환경이 나를 이렇게 잡는구나.’ 포기했죠.”

시험장에서 돌아와 수험서를 모조리 서랍에 넣어버렸다. 이제 안 보겠다고, 나중에 다른 일을 모색하겠다며 마음을 내려놓았다.

“깔끔하게 포기한 줄 알았는데 불현듯 떠올라요. 그 전에는 시험에 대한 미련이 너무 강해 아기를 보면서도 수험서를 보니까 이도 저도 아니었던 거예요. 불안하니까 그랬겠죠? 다시 시작하면서는 원칙을 세웠어요. 아기가 잘 때까지는 아기한테 집중하고 아기가 자면 공부에 집중하자고요.”

다미씨는 4년 만에 공무원 시험을 통과했다. 마지막 관문인 면접시험도 직무와 관련해 나름 전문적인 질문을 기대할 정도로 자신 있었다. 면접관 3명이 모두 남성이었다.

“사내에서 누군가 육아 때문에 근무시간을 단축해서 쓴다면, 다른 직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직원을 바라봐야 합니까?”

면접관들은 대략 50대로 보였다는데, 그들도 다미씨의 나이를 가늠했을까. 공무원이라면 여성과 남성 모두 육아시간을 보장받는데, 왜 물었을까. 대통령령에 따른 복무규정으로 이러한 특별한 휴가가 있으니 쓰라고 권유할 일을, 왜 “근무시간을 단축해서”라고 물었을까. 현장에서 갈등이 있다면 제도를 보완할 일. 어떤 의도였든 이 질문은 당시 두돌잡이 엄마인 다미씨를, 아이를 키우면서도 일과 꿈을 놓지 않고 자신으로 살겠다며 그 자리에 선 다미씨를 “대놓고 저격한” 한방이었다.

“저는 그때 그랬어요. 협동심이라고. 협동하는 마음이 없으면 좋게 보이지 않을 거다, 그런 마음이라도 줘야지 다른 누군가 이 제도를 쓸 테고, 이어서 계속 누군가 쓰지 않겠느냐고요.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저는 둘째는 안 낳을 겁니다, 영원히 둘째는 없을 겁니다’라고 했어요. 면접관들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자신들이 좀 전에 한 말의 본질은 까먹고요. 질문 안에 들어 있는 화살과 바늘을 저는 충분히 느꼈는데요. 그날 집에 가면서 엄청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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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선임들’의 응원

육아시간을 써보기도 전에 면접관한테서 “눈치 받았던” 다미씨는 부서에서도 눈치 받았다. 그래도 꿋꿋하게 육아시간을 썼다. 동네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오전 9시 반에 출근해서는 오후 4시 반에 퇴근해 아이를 데리러 갔다. 아이가 병원에 가야 한다고 어린이집에서 급히 연락해 오면 육아시간을 썼다. 먼저 워킹맘으로 살았던 여성 선임들이 “나 때는 이런 게 없었는데 너희는 참 좋겠다”면서 적극 응원하며 힘이 돼주었다.

“사실 육아시간을 마음 편하게 쓴 적은 없어요. 오히려 다 썼을 때 정말 홀가분했어요. 육아시간을 쓰는 동안은 화장실도 제대로 안 가고, 남들이 휴게시간 쓰러 갈 때도 자리를 꼭 지켰어요. 미안하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육아시간을 쓴 직원들은 다 그랬을 거예요. 시간 내에 일을 다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도 컸는데, 옆에서 보는 사람들은 잘 모르죠. 내가 육아시간을 처음 쓸 때는 괘씸하다며 상관이 안 좋은 직무를 떠넘기기도 했어요. 결혼 안 한 젊은 직원들이 경계하고 비아냥대면 서럽기도 했는데, 내가 육아시간 쓰는 동안 그 친구들도 힘들었겠다는 걸 알아요. 마음 약한 사람들은 당연한 권리인 육아시간을 제대로 못 썼을 거예요. 지금은 남자든 여자든 덜 눈치 보고 육아시간을 써요. 보편화된 거죠. 당시에는 공무원 조직이 육아시간을 받아들이는 데에 과도기였던 것 같아요.”

당연한 권리도 눈치 보며, 눈치에도 굴하지 않고 부딪치며 써온 사람, “선구자들”이 있어 이제 다미씨의 동료들은 좀 더 마음 편히 육아시간을 쓸 터. “나 때는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라며 “자신만의 영웅담을 들려주는” 다미씨들이 곳곳에 넘쳐나면 좋겠다. 더 낮은 곳에 더 좋은 제도가 흘러가 펼쳐지면 좋겠다.

육아시간 종료 뒤부터 아침마다 다미씨는 아이 손을 꼭 붙잡고 전철역으로 달린다. 사람 가득한 출근 전철에 엄마와 아이가 타면 흘겨볼 일이 아니다. 한 여성의 출근길이고 한 아이의 등원길이다. 동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 혼자 남아 오래 엄마를 기다렸는데, 직장 어린이집에서는 다 같이 남아 엄마들을 기다린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각자 지낸 다미씨와 아이가 집에 돌아오면 저녁 7시. “씻기고 밥 먹이고 책 한권 읽어주면 벌써 아이가 잘 시간”이다. 그래, 다미씨 말이 맞다.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 노동시간이 줄어야 하지 않을까요.”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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