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로펌' 엔씨소프트, 세번째 표절 소송 어찌 될까

최우영 기자 2024. 2. 24.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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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마켓]
2008년 블루홀 인력유출 사건 패소 이후 환골탈태한 법무팀
2021년 웹젠 상대 제기한 소송서 1심 승소한 뒤 카카오게임즈 연이어 고소
리니지라이크 양산하는 국내 시장서 리니지 표절 논란 계속 이어져
[편집자주] 남녀노소 즐기는 게임, 이를 지탱하는 국내외 시장환경과 뒷이야기들을 다룹니다.

카카오게임즈의 올해 기대작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롬'이 오는 27일 출시를 앞두고 대형 악재를 맞이했다. 리니지W를 표절했다며 엔씨소프트가 한국과 대만에서 동시 소송을 제기했다. 엔씨는 손해배상도 청구했으나 더 중요한 것은 서비스 이용중지 요청이다. 엔씨의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롬'은 제대로 서비스도 해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가 최근 수년간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에 뺏기는 고객들을 되찾기 위해 칼을 갈아온 것으로 보고 있다. 가뜩이나 포화상태인 국내 MMORPG 시장에서 아류작들이 속속 등장하며 리니지 시리즈의 매출이 빠르게 내려앉는 걸 좌시할 수 없었다는 것. 이 같은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은 게임업계에서 '로펌'으로 부를 정도로 강력해진 엔씨의 법무 역량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엔씨소프트 '법적 분쟁'의 역사
/사진=엔씨소프트
엔씨는 과거부터 이용자와의 각종 분쟁이 이어져 왔다. 다른 게임에 비해 유독 환금성이 높은 리니지 내 아이템을 둘러싼 여러 사건과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고, 이 때마다 큰 마찰 없이 해결해 왔다. 업계에선 이 과정에서 법조 인력들이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이용자들의 집단행동 등에 대해 법무팀이 일을 처리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공식적으로 엔씨 법무팀이 최전방에 나섰던 것은 2008~2014년 이어진 블루홀스튜디오(현 크래프톤)과의 다툼이었다. 당시 리니지3 개발팀을 이끌던 박용현 개발실장(현 넥슨게임즈 대표)이 개발진과 블루홀로 집단 이적하면서 영업비밀 침해 혐의로 피소 당했다. 1심에선 엔씨가 승소해 피고들이 20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으나 항소심에서 금액에 관한 부분은 뒤집혔고, 대법원 역시 이를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집단 이직을 한 블루홀 직원들이 엔씨소프트의 '영업비밀의 표시' 기재 파일들을 부정취득해 이를 사용했다"며 "블루홀은 엔씨소프트의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이를 3자에게 제공해서는 안되며 저장된 관련 기록물을 폐기하라"고 했다. 당시 박용현 실장은 민사소송과 별개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배임 혐의로도 기소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경험 쌓고 레벨업 하듯...강해진 엔씨 법무팀
엔씨소프트 판교 R&D 센터. /사진=엔씨소프트
박용현 실장 등이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민사 소송에선 엔씨의 완벽한 패소였다. 1심 승소가 뒤집힌 데는 엔씨 법무팀의 안일한 후속 대응이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때부터 엔씨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업계에선 블루홀과의 소송 패배를 거울 삼아 각종 법적 분쟁에 대비할 체력을 기르기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엔씨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범람하기 시작한 리니지 아류작들에 대한 소송 검토도 활발히 진행하기 시작했다. 다만 리니지가 만들어놓은 한국 MMORPG의 공식과도 같은 요소들은 대부분의 게임에 들어가 있었고, 이 중에 소송 대상을 집어낸다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표절에 대해 공식 소송에 들어간 건 2021년 웹젠의 R2M에 대한 공격이 처음이었다. 리니지M의 인터페이스를 상당 부분 베꼈다는 이유에서다. 절치부심한 엔씨 법무팀은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탄력을 받은 엔씨는 지난해 4월 카카오게임즈가 같은 해 3월 출시한 '아키에이지 워'가 리니지2M을 표절했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올해 들어서는 출시 직전인 '롬'에도 표절 잣대를 들이대며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리니지라이크와 표절의 경계선은 어디?
(왼쪽)리니지W (오른쪽)롬. /사진=엔씨소프트
리니지의 핵심 요소들을 차용한 국내 MMORPG들은 적지 않다. 이들 대부분은 MMORPG의 공통요소일 뿐, 리니지를 베낀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만 국내 MMORPG의 공통요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리니지가 깊숙이 관여한 부분은 간과되고 있다.

일례로, 리니지 이전의 MMORPG에서는 대부분 '변신'이라는 BM(비즈니스모델)이 '아바타 옷 입히기' 수준이었다. 이용자 취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즈하는 용도로 쓰이던 변신은, 리니지에서 능력치가 붙은 '뽑기템'으로 거듭나게 된다. 일설에 따르면, 리니지에서도 변신은 원래 꾸미기용 아이템 수준이었으나 해골 변신을 한 일부 유저들이 화면에 나타나는 프레임값의 차이에 따라 '공격 속도'가 빨라지는 현상을 발견한 게 시작이었다. 이에 적지 않은 유저들이 해골 변신으로 플레이하자 엔씨가 이를 놓치지 않고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보편화된 MMORPG의 요소이기에 소송을 제기하기는 무리라는 평이다. 엔씨가 표절 소송을 제기한 세 게임은 리니지 시리즈와의 유사성이 다른 게임들에 비해 높은 것으로 평가 받는다. 엔씨 입장에서도 전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표 IP(지식재산권)마다 R2M(리니지M), 아키에이지 워(리니지2M), 롬(리니지W)를 '시범 케이스'로 선정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R2M '표절' 판단 내린 1심의 근거 살펴보니…
(왼쪽)리니지M의 '아인하사드의 축복'과 (오른쪽)R2M의 '유피테르의 계약'. /사진=엔씨소프트
엔씨가 승소한 R2M 표절 소송 1심 판결에는 이례적으로 수많은 게임 속 용어들과 사진 첨부자료가 등장했다. 법원은 △아인하사드의 축복 시스템 △무게 시스템 △장비 강화(인챈트) 시스템 △아이템 컬렉션 시스템 △변신 및 마법인형 시스템 등 리니지M의 핵심 구성요소를 R2M이 '실질적으로 유사하게' 표현했다고 봤다.

당시 판결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선택·배열·조합'이었다. 수많은 MMORPG에 쓰이는 보편적 요소들이라 하더라도, 각 구성요소를 게임에서 선택, 배열, 조합하는 방식에 따라 독창성이 나타난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엔씨가 리니지M에서 각 구성요소를 선택·배열·조합하고 이를 구현함에 있어서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리니지M이 출시되기 이전의 기존 게임들에서 이 사건 각 구성요소의 선택·배열·조합을 유사하게 구현한 방식의 게임은 리니지(PC버전)를 제외하고는 찾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법원은 변신 및 마법인형(서번트)을 획득하기 위한 카드뽑기 아이템의 경우 소수점 세리까지 똑같은 확률로 설정된 점 등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이와 같은 행위를 규제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게임 업계에서 굳이 힘들여 새로운 게임 규칙의 조합 등을 고안할 이유가 없어지게 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롬'은 리니지W와 얼마나 유사성 인정 받을까
리니지W 출시 전후의 게임 내 아이콘 비교. /사진=레드랩게임즈
엔씨에서 롬의 표절성에 대해 문제 삼은 부분은 크게 △게임 UI △주요 성장 콘텐츠 △게임 시스템이다. 게임 UI로는 플레이 화면과 전체메뉴 순서, 게임 내 시스템 등의 표현과 배열 등이 유사하다는 입장이다. 성장 콘텐츠는 변신과 마법인형 시스템 전반, 장비 인챈트(강화)시스템 전반, 아이템컬렉션(도감) 시스템 전반의 유사성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있다. 게임 시스템의 경우 PvP(이용자간 전투) 및 레벨업에 따른 랭킹 혜택, 혈맹(길드) 성장 시스템, 인벤토리 일관관리 등 편의기능 및 거래소 시스템 등이 유사하다는 게 엔씨 입장이다.

엔씨는 지난 22일 소송 제기와 함께 보도자료를 통해 "'롬'이 리니지W 게임 구성 요소의 선택, 배열, 조합 등 종합적인 시스템을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롬 개발사인 레드랩게임즈는 23일 신현근 PD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오랫동안 전 세계 게임에서 사용해온 통상적 범위"라며 "엔씨소프트의 소송 제기와 과장된 홍보 자료 배포 행위가 '롬'의 정식 서비스를 방해하고, 이용자들의 심리적 위축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로 진행된 행위"라고 반박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리니지라이크 게임을 출시할 때마다 불거지는 논쟁인데, 그만큼 시장 수요보다 더 많은 MMORPG 공급이 이어지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며 "포화상태에 달한 MMORPG 개발을 고집한다면 이후에도 똑같은 논란과 소송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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