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감성 그대로…추억을 상영하는 동두천 동광극장 [긴 세월 굳건하게, 경기노포를 찾아서]

이연우 기자 2024. 2. 24.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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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 지난해 경기노포 25곳 선정…생활관광 대표 콘텐츠 육성 계획
1959년 개관한 동광극장, 전국 유일 상영영화 상영하는 단관극장
"관객 발길 잡을 행사 유치해 色다른 지역문화 만들고파"

동서고금에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모를 구전부터, 퇴적·풍화를 거쳐 기록된 문헌까지 다양한 역사가 사시사철 숨을 쉰다. 지금 경기도엔 어떤 이야기가 남고, 또 사라졌을까. 경기일보 이연우 기자와 민경찬 PD가 시나브로 잊히는 우리네 이야기를 찾아 글과 영상으로 전한다. G스토리팀의 2024년도 첫 테마는 ‘노포(老鋪)’다.

오래된 가게에는 하루, 한달, 일년마다 손님들이 남긴 정서가 깃들어있다.

22일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도는 ‘우리 동네 오래된 가게(노포) 공모전’을 통해 경기노포 25곳을 선정했다. 오는 3월에는 신청을 받아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경기 대표 노포를 추가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도는 경기노포를 생활 관광의 대표 콘텐츠로 육성하겠다는 방침과 함께, 테마를 ▲평화생태권 ▲역사생활권 ▲도시여유권 ▲자연치유권 등으로 나눴다.

‘평화생태권’에는 고양시 내 한 지역의 옛 지명인 ‘백양골’의 이름을 딴 참기름·들기름 판매업체 백양상회(1980년 창업)가, ‘역사생활권’에는 이천시의 전통 한식점 장흥회관(1982년 창업)이, ‘도시여유권’에는 과천시에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정금주한복연구실(1994년 창업)이 선정된 식이다.

경기노포 25곳을 분석해 본 결과, 노포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곳은 경기남부권에 위치한 안일옥(안성·1920년)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비교적 ‘최신’ 매장은 여주의 남한강송어횟집(1999년)으로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여러 경기노포 중 G스토리팀은 ‘자연치유권’의 대표 노포로 꼽힌 동두천시의 동광극장(1959년)을 찾았다. 영화의 인기가 떨어지는 와중 수많은 멀티플렉스와 경쟁하면서 경기도의 유일한 단관극장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 속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이야기가 가득한 동광극장으로 출발했다.

동두천시 생연동에 위치한 ‘동광극장’ 고재서 대표가 극장 앞에서 옛 동광극장 사진을 들고 웃고 있다. 조주현기자

[G-Story] 노포편 ①오늘도 상영 중: 동광극장

샛노란 간판 아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가운 손님이 왔다며 ‘딸랑’ 종소리가 울린다.

입구 왼편에는 팝콘과 땅콩 과자가 쌓인 ‘매점’이, 오른편에는 성인 9천원·청소년 7천원이라 적힌 ‘매표소’가 보인다.

소박한 양 옆 풍경과 달리 정면은 별천지다.

수많은 로봇·자동차 프라모델과 피규어,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사는 어항, 필름이 착착 감기는 아날로그 영사기, 오래된 자주색 다방 의자 등 예스러운 레트로 감성이 오밀조밀 펼쳐져 있다.

고재서 동광극장 대표가 아날로그 영사기 속 필름을 되감고 있다. 조주현기자

이곳은 동두천시 생연동에 위치한 시네마천국 ‘동광극장’. 지난해 경기도의 대표 노포로 선정된 곳 중 하나다.

1959년 개관해 현재까지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상업영화를 상영하는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이면서, 자동차극장을 제외하면 경기도에 현존하는 유일한 단관극장이다.

영화 선정부터 티켓 발매, 매장 관리, 영화 상영, 매장 청소까지 전부 도맡아 관리하는 직원은 단 한 명, 고재서 대표(67) 뿐이다.

“선친이 운영하던 동광극장을 제가 맡게 되면서 현재 약 39년째 동두천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어요. 단관극장이지만 독립영화는 틀지 않고 일반 상영관과 똑같이 상업영화를 추구해요. 보통 설날이나 추석에 손님이 바짝 몰리는 편인데 최근에는 <서울의 봄>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호탕한 웃음을 지은 고 대표는 관객 없는 극장 안을 가리키며 “편하게 둘러보시라” 했다.

그의 안내를 따라 로비 맨 끝을 향하면 동그란 벽시계 아래로 둔탁한 철문이 보인다.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서자 딱딱한 계단과 함께 비로소 커다란 상영관이 눈에 들어온다. 푹신푹신한 2인용 소파, 관객의 보행을 돕는 파란 LED 조명선, 화려한 앰프 등도 시선을 끄는 요소다.

잠시 후 익숙함이 느껴진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이재한(조진웅)이 오열하던 영화관, <응답하라 1988>에서 김정환(류준열)과 류동룡(이동휘)이 영화를 보던 곳, 바로 여기 동광극장이었다.

“전체 좌석은 283석이지만 멀티플렉스 시장에 발 맞춰 최근 리클라이너 의자(소파)를 두면서 실질적으로는 240석이 됐어요. 좌석이 꽉 차는 날이 없어 관객들은 선착순으로 앉으면 되는 식입니다. 일반 영화관과 비교했을 때 생소한 분위기일지는 모르지만… 보시니 어떤가요?”

고 대표는 감상평을 물었다. 동광극장을 처음으로 마주한 ‘젊은 관객’의 입장이 궁금한 모양새였다.

“저는 ‘영화관’보단 ‘극장’을 지향해서 예전 문화회관 시절처럼 각종 부대행사도 열고 싶은데 지역 사정상 마땅치가 않아요. 동두천이 타 시·도보다 재정자립도도 약하고 젊은이도 직장을 찾아 다른 도시로 나가잖아요. 영화는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인데 저희 극장이 부합하진 않죠. 더욱이 근처에 대형 멀티플렉스가 생기면서 운영하기 힘든 형편입니다. ‘동광극장’ 이름값은 있는데 사진 찍고 구경하러는 와도,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은 얼마 없어요. 근처에 ‘양키시장’이나 ‘문화거리’(캠프보산 동두천문화특구) 방문하시면서 같이 오시는 편이죠.”

동광극장의 입구가 바뀌기 전이던 1967년 무렵, 박종호 감독의 <학사며느리>를 상영하고 있는 극장 모습. 조주현기자

그럼에도 이 오래된 극장을 붙잡고 있는 이유는 오로지 영화에 대한 애착이다. 고재서 대표는 ‘와칸다극장’이라 불리기도 했던 과거의 동광극장을 회상했다.

벽에 걸린 옛 사진에서 찾아낸 흔적으로는 이곳에서 상영한 첫 영화가 최훈 감독의 <내 가슴에 그 노래를>(1960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박상호 감독의 <우리 엄마 최고>(1964년), 박종호 감독의 <학사며느리>(1967년)를 간판에 내건 시절도 있다.

“지금은 도로 위치에 따라 극장 입구가 바뀌었는데 예전 입구는 아주 크고 넓었어요. 그 길목에 사람이 꽉 찼었다고요. 옛날엔 볼거리가 영화 밖에 없었잖아요. 저는 평생을 영화와 함께한 셈이라 애정을 많이 갖고 있지요. 우리 극장에 대한 애착도 크다 보니까 ‘힘들어도 잘 운영해보자’ 했어요. 이렇게 저렇게 꾸미는 걸 좋아해서 극장에 손을 안 댄 부분이 없어요. 이렇게 사진을 볼 때면 ‘예전 기록 좀 많이 남겨놓을걸’ 후회가 돼요. 이제부터라도 차곡차곡 모아가야죠.”

고재서 동광극장 대표가 다음 상영 시간 관객을 기다리며 상영관 내부 사운드를 조절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그의 희망처럼, 앞으로 동광극장의 미래는 관객들의 발길에 달려 있다.

경기도는 지정된 ‘경기노포’에 ▲유튜브 제작자(크리에이터) 등 영향력자(인플루언서) 활용 콘텐츠 제작 ▲관광콘텐츠 활용 등 사업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제공 ▲경기노포 현판 제작 및 설치 ▲이야기 책(스토리북) 제작 ▲지역 관광자원 연계 코스 개발 등을 제공한다는 방침이지만, 실질적으로 이 계획들이 얼마나 많은 수의 관객을 극장 안으로 데려올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2층을 리모델링 해 로비를 산만하지 않게 정돈하려고 해요. 저희 극장은 평일이건 주말이건 문 닫지 않거든요. 지역 군 부대, 학교, 지자체 단체 관람이나 명절 가족 행사 등이 우리 극장에서 이뤄진다면 동두천만의 특색 있는 지역 문화 생활이 어우러질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동광극장은 오늘도 ‘상영 중’입니다!”  G-Story팀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조주현 기자 jojuhyun0131@kyeonggi.com
민경찬 PD kyungchan6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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