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와 신진서···먼 훗날, 사람들은 누구를 GOAT로 꼽을까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중국과 일본 바둑 기사들의 공통적인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이창호 9단(48)을 이길 수 있을까’였다.
1988년 13세 나이로 KBS바둑왕전을 우승하며 바둑계를 놀라게 했던 이창호는 1992년 메이저 세계대회인 동양증권배에서 최연소 세계대회 우승을 작성했다. 그리고 이후 말 그대로 세계 바둑계를 지배했다. 이창호의 세계대회 우승 횟수는 무려 21회. 이창호를 제외하면 20회를 우승한 기사도 없다.
수많은 기사들이 이창호를 넘어서기 위해 계속해서 도전했지만, 그 때마다 쓰라린 좌절감만 맛봐야 했다. 1990년대 중국 최고기사였던 마샤오춘 9단은 이창호와의 대국에서 연전연패하면서 결국에는 스스로 무너져 갔다. ‘상하이 대첩’으로 잘 알려져 있는 2005년 제6회 농심신라면배 3라운드에서는 끝내기 5연승으로 중국 바둑을 충격에 빠뜨렸다. 평소 이창호를 존경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창하오 9단은 “다른 한국 기사를 모두 이겨도 이창호가 남아 있다면, 그 때부터 시작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창호의 상하이 대첩으로부터 19년이 지난 2024년 2월, 같은 장소에서 다시 한 번 중국 바둑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신진서 9단(23)이라는 불세출의 천재기사에 의해서다. 이창호가 그랬던 것처럼, 신진서 역시 홀로 남아 일본 기사 1명, 중국 기사 5명 등 총 6명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끝내기 6연승은 농심배 역사상 최초. 여기에 22회 대회부터 이어오던 농심배 연승 기록을 16연승으로 늘려 이창호의 종전 기록(14연승)을 경신했다.
전성기에 접어든지 아직 5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신진서의 기세는 무시무시하다. 50개월 연속 한국 랭킹 1위를 지키고 있으며, 매년 6~7개 정도의 타이틀은 우습게 거머쥐고 있다. 세계대회 타이틀 숫자는 6회. 무엇보다 신진서는 누구도 깰 수 없을 것 같았던 이창호의 불멸의 기록들을 하나하나 넘어서고 있다. 이창호가 1988년 세운 88.24%(75승10패)를 2020년 88.37%(76승10패)로 32년 만에 넘어섰다. 여기에 선수권전 방식으로 진행되는 GS칼텍스배에서 23회 대회부터 27회 대회까지 5연패를 작성, 이창호의 천원전 4연패(1996~1999)를 넘어 최초로 선수권전 5연패를 작성한 기사가 됐다. 그리고 이번 농심배에서 이창호의 기록 2개를 또 갈아치웠다.
신진서의 질주가 어디까지 갈 지 아무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창호의 기록들을 하나씩 넘어서면서 훗날 이창호와 신진서, 둘 중 누가 한국 바둑의 ‘GOAT’가 될지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이창호는 엄청난 우승과 기록을 작성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바둑사에 한 획을 그은 기사로도 존경을 받는다. 세계바둑의 흐름을 한 번 바꿔 놓은 어마어마한 업적이 있기 때문이다.
1930년대 중국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우칭위안 9단과 일본의 기타니 미노루 9단은 ‘신포석’을 발표하며 현대바둑의 기틀을 잡았다. 이전까지 포석은 귀굳힘이나 변에서의 실리 형성을 중시했는데, 이들은 4선과 중앙을 중시하면서 보다 자유로운 포석에 중점을 뒀다. 이것을 두고 바둑의 1차혁명이라고 표현한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등장한 이창호는 초반, 중반과 달리 미개척분야였던 종반 끝내기에 주목했다. 그는 다양한 포석들이 손해인지 이득인지 머리로 계산하며 선택했다. 이를 통해 대국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끊임없이 끝내기와 형세판단을 계산해야 하는 계산바둑의 시대를 열었다. 이 끊임없는 형세판단은 요즘 기사들이라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하는 능력이 됐다.
더 이상 바뀔게 없어 보였던 바둑은 이후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대격변을 맞게 됐다. AI는 포석은 물론, 매수마다 어디에 두는 것이 최선인지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이제 모든 바둑 기사들은 AI로 바둑 공부를 한다.
신진서 역시 AI의 도움을 받았다. 원래 신진서는 대국 중반 이후의 수읽기와 끝내기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초반 포석에서는 약점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AI로 공부를 하면서 그 약점을 완벽하게 극복했다. AI의 최대 강점이 바로 초반 포석과 접전 상황에서의 형세 판단이다. ‘신공지능’이라 불리는 별명이 말해주듯, 신진서는 바둑 3차 혁명의 정점에 선 기사다.
신진서에게 있어 이창호는 롤모델이자 우상이다. 지금껏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이창호와 비교하는 질문이 나올 때면 늘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2022년 삼성화재배 첫 우승 후 만나 인터뷰를 하던 도중 이창호의 세계대회 우승 기록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이창호) 사범님의 기록은 도저히 깰 수 없을 것 같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농심신라면배 및 농심백산수배 1라운드 개막식이 끝난 뒤에도 “이창호 사범님이 여기 왔으면 좋았을텐데…”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신진서는 지난 1월 인터뷰에서 “지금이 내 바둑 인생에서 한 절반 정도 온 것 같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기세는 조금도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바둑을 홀로 이끌며 지칠법 한데, 바둑 얘기를 할 때의 눈빛은 늘 또렷하다.
20년 가까이 세계 바둑을 지배했던 이창호와 비교되려면, 신진서도 최소 10년 이상은 지금의 기세를 유지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신진서는 훌륭하게 그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신진서의 발걸음이 멈추는 날, 바둑 팬들은 농구 팬들이 마이클 조던과 르브론 제임스를 비교하듯 정말 진지하게 이창호와 신진서의 GOAT 논쟁을 펼쳐야 할지도 모른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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