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권력' 가진 남성이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는 건 무엇일까 [젠더살롱]

2024. 2. 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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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침묵하는 것만 정답일까
지난해 5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7주기 추모집회에 참여한 이한(앞줄 가운데) 작가 등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회원들. 이한 작가 제공

올해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을 한 지 8년이 됐다.

도대체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페미니즘 책이라도 읽어보려고 했다가 도저히 책만 읽고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조금씩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 나선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집회에 참여하고 교육에 뛰어들면서 드는 고민과 생각을 말할 길 없어 글을 쓰게 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상은 이런 사람과 글을 낯설어하면서도 흥미롭게 여겨 과분한 기회로 한국일보 젠더살롱 지면에 글을 실을 수 있었다.


‘남성화된 글쓰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사실 처음 연재 요청을 받았을 때는 우려가 앞섰다. 모자람 많은 사람인 데다가 ‘젠더살롱’이라는 코너에서까지 또다시 ‘남성’의 목소리를 내도 괜찮을까 염려했다. 나보다 훨씬 더 깊은 고민과 너른 활동을 한 수많은 여성 페미니스트를 떠올리면, 이것이 다분히 나에게 주어진 발화권력 때문이라는 걸 모를 수 없었다. 그러나 부채감을 안고 숨는 것 역시 못지않게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질타받을지언정 무엇이라도 하는 게 덜 비겁하지 않겠나 생각하며 격주로 부끄러움 많은 글을 토해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그래도 글을 쓰면서 ‘남성화된 글쓰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존경하고 애정하는 동료 페미니스트 박정훈 기자는 자신의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에서 수많은 칼럼니스트가 자신을 ‘보편’의 자리로 위치시키고 타자를 심판하는 형태의 글을 쓰는 것을 언급하며 ‘남성화된 글쓰기’라 지적했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내 한계를 인정하며 타자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기보다 함께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늘 마감에 쫓기고 성찰 없이 살아온 날이 길어 마음처럼 잘 되지는 않고 서툴렀음을 수줍게 고백해 본다.


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논의의 자리를 만들었다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아쉬웠던 기억이 하나둘 떠오른다. 남성과 페미니즘을 연결하기 위해 최대한 다양한 주제로 페미니즘 말하기를 시도했다. 남성의 몸, 위계질서, 연애, 친구, 돌봄 등 다양한 주제를 찾았고 개중 몇 개는 글이 계기가 되어 강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할 수 있다면 한 주제에 대해 더 다양하고 심층적인 목소리를 담아 논의의 자리를 만들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남는다. 이를테면 군대 문제가 그렇다. 재작년, 군대 글을 쓰면서 나 역시 올챙이 적을 떠올리지 못하는 개구리와 다를 바 없음을 깨달았다.

곧 있을 총선에서부터 당장 눈앞에 닥친 인구감소, 격정의 소용돌이가 예고된 국제관계는 원하든 원치 않든 안보 이슈를 뜨거운 감자로 만들 게 뻔하다. 그렇다면 이 주제를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이야기하는데,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군인권센터를 만나서 현황을 듣는다던가, 김엘리 선생님의 '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을 같이 읽고, '전쟁없는세상'과 함께 기획 포럼을 열어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남성들도 페미니즘과 자신의 삶이 동떨어진 문제가 아님을 더 쉬이 깨달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 논의된 바도 없고 대체 어떻게 물꼬를 터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렇게 막연하게라도 이야기해놓으면 언젠가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며 아쉬움을 토로해 본다.


남성이라는 젠더권력을 고려하며 페미니즘 활동한다는 건?

남성의 위치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어렵다. 페미니즘 활동을 하며 가장 낯설었지만 동시에 가장 유념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위치성에 대한 이해였다. 왜 같은 말과 행동도 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까? 나는 제법 선량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자꾸만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 줄까? 페미니즘은 내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젠더권력의 존재를 밝혀 그것이 내 말과 행동에 영향 미칠 수 있음을 알게 했다. 많은 차별과 폭력이 젠더권력을 인지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그래서 처음 글을 쓰면서부터 자신의 위치성을 파악하고 이를 고려하여 타인과 소통해야 함을 이야기했다.

페미니즘 용어 ‘맨스플레인’을 만들고 퍼뜨린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창비 제공

글은 차라리 쉽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 복잡하고 어렵다. 주변에서 누군가 여성에게 성차별적인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개입해야 할까? 자칫 잘못 오지랖 부리면 여성의 발언권을 빼앗게 될 것 같고 가만히 방관자가 될 순 없어서 골치가 아프다. 게다가 만약 성차별적인 발언을 한 사람이 여성이었다면? 문제를 바로잡으면서도 '맨스플레인'(남성이 설명을 가장해 여성을 훈계하는 행위)처럼 느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별이분법과 생물학적 성별에 국한되지 않으면서도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라는 젠더권력의 위치를 고려하면서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답 없는 고민만 자꾸 쌓인다.


우리의 활동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기를

앞으로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당장 다음 달도 가늠하기 어려운 요즘이지만, 그래도 바람은 많다. 계속 글을 쓰고 교육하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 계속 활동이 향하는 방향을 고민한다. 우선은 목소리가 더 많은 남성에게 가닿았으면 좋겠다. 젠더문제에 대해 무감한 남성이 여전히 많다. 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비슷한 경험을 토대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보면 의문투성이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느껴졌던 막막함이 생생하고, 없는 형편에도 데이트할 때는 꼭 먼저 카드를 꺼내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비슷한 고민에도 여전히 자신의 남성성을 의심받을까 두려워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들이 조금이나마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춰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활동을 잘 기록해서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다. 단지 비대한 자아 때문만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언제 이 활동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 역시 가지고 있다. 혹시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다른 누군가 배턴을 이어받아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바랄 수 있다면 그게 더 많은 사람에게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변에는 페미니즘을 통해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또 페미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로 인해 갈등이 커져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포기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그 마음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변화는 늘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와 내 동료들이 페미니즘을 접한 건 다분히 이런 변화 덕분이다. 누구도 유달리 부지런하거나 똑똑하지 않았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생활 반경이 서울이라 주변에서 페미니즘 관련 집회, 교육을 접하기 쉬웠다. 때마침 앞선 페미니스트가 뿌려놓은 씨앗이 싹 틔운 시기였던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 자본의 수혜와 더불어, 답답하고 느린 나를 포기하지 않아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나면 쥐어박고 싶을 것 같은데, 한숨 한 번 쉬지 않고 인자하게 이야기해 준 친구들 덕분에 지금 좀 덜 부끄럽게 산다. 당신들이 포기하지 않아주어서 생긴 작은 균열이 이렇게 뿌리내려 이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잘 기록해두면 누군가, 언젠가 지쳐 쉼이 필요할 때 슬쩍 들춰보면서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함께 구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됩시다

1년 6개월 동안 한국일보 젠더살롱 코너 덕분에 참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떠나기 좋은 때는 대체 언제인지, 도통 어떻게 해야 그 뒷모습이 아름다울 수 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처음 기대한 것보다는 훨씬 오래, 많은 글을 썼다. 덕분에 배움이 많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페미니즘을 접한 이후의 순간이 전부 그랬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공부는 무엇보다 나와 내 삶을 이해하는 언어가 됐다. 그 과정이 모두 순탄했을 리 없지만 그래도 분명 후회보다 환희가 많았다. 그 과정에 함께해 준 모든 분께 감사할 따름이다. 미련 많은 사람이라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평소 교육 마무리에 쓰던 명언을 가져와봤다.

“함께 구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됩시다.”
페미니즘 운동 현장에서 널리 퍼진 목소리이자 좋아하는 책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에도 나오는 문장이다. 더 나은 세상이 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변화에 함께할 것임을 다짐하는 이 문장을 참 좋아한다. 어두운 과거를 밀어내고 밝은 미래로 나아갈 모두를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문화를 읽습니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인 이한 작가와 김신현경 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가 번갈아 글을 씁니다.

이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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