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세 공연하던 축구장이 군사기지로… 자유를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저널리스트 특별기고
나탈리야 구메니어크 PIJL 대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24일로 2년을 맞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수주 안에 전역을 점령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초기 전투에서 선전(善戰)했지만 지난해 대반격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해 전쟁이 교착된 상태다. 국내 정치가 분열된 미국이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을 못 하고 우크라이나 밖에서 전쟁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가 늘자 러시아 점령지를 넘겨주고 더 이상의 희생은 막자는 휴전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저널리스트인 나탈리야 구메니억씨가 이에 대한 의견을 기고했다. 구메니억씨는 저널리즘 비영리 기구인 공공 저널리즘 랩(PIJL) 및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기록하는 ‘레커닝 프로젝트(Reckoning Project)’의 공동 설립자·대표로 최전선을 취재하고 피해자들을 만나고 있다. |
“러시아의 점령 아래서라면 개인의 의견을 갖기만 해도 국가의 적(敵)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2022년 2월 24일) 첫날 러시아에 점령된 항구 도시 베르디얀스크를 탈출한 나탈리아가 들려준 말입니다. 그의 남편은 잔학 행위를 피하려는 이들을 탈출시키고 인도주의적 지원품을 배달하는 자원봉사를 반년 간 하다가 납치됐습니다. 44일간 구금된 그는 전기 고문과 살해 위협을 받았고 인도주의적 자원봉사 활동에 대해 문초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글로벌 언론인·분석가·변호사들이 전쟁 범죄를 기록하려 2022년 3월 만든 ‘레크닝 프로젝트’를 통해 러시아 점령지에서 일어난 이 같은 비인도적 사례를 수백 건 수집했습니다.
일부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 심문관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우크라이나의 언어, 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프로파간다(선전·宣傳)로 정당화한다고 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최근 논란이 된 미국 TV 진행자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9~11세기 때 돌던 사실과 다른 역사적 신화를 들면서 러시아가 주변 영토를 되찾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에 있는 이들이 먼 옛날 역사에 대한 그들만의 버전을 믿는다 해도, 이 땅에 사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생각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교사 교육을 받은 나탈리아는 구(舊) 소련 붕괴 후 독립한 우크라이나에서 자랐습니다. 개인이 의견을 개진하거나 모국어(우크라이나어)를 쓰고, 출석할 교회를 스스로 정하는 일이 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점령지 베르디얀스크에 남은 그의 친구와 친척에게 이 모든 것은 위험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2014년 모스크바가 점령한 영토를 둘러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이른바 ‘평화 협상’ 과정을 전면전 발발 8년 전부터 지켜보았습니다. 무작위로 쪼개진 우크라이나 동부의 마을들이 요새화된 전선(戰線)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한때 유명 관광지였던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의 다른 영토를 점령하기 위한 러시아 군사 기지로 변했고 비욘세 같은 미국 연예인들이 축구장에서 공연하던 도네츠크는 러시아의 군사 기지로 변해 세상으로부터 단절됐습니다. 러시아는 이 기지들을 2022년 우크라이나 침략의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국제 협약은 점령지 주민을 점령국 군인으로 징집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014년 이전까지 우크라이나 학교에 다녔던 소년들은 이제 러시아 군대에 강제 징집되어 복무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서방을 중심으로 휴전론이 거론되는 상황을 우크라이나인들은 걱정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크렘린의 수사(修辭)나 행동은 변한 것이 없습니다. 러시아 국영 TV에선 ‘우크라이나인을 죽이자’는 주장이 일상처럼 나오고 평화로운 마을에 대한 미사일 공격은 계속되고 있으며 러시아 군대는 여전히 전선을 돌파해 우크라이나 영토를 더 차지하려 애씁니다. 모스크바의 제안은 ‘점령 장기화’ 하나 뿐입니다. 우리는 점령이 평화로 이어지지 않고 더 큰 고통과 저항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압니다. 어린 시절부터 터득한 사상의 자유에 대한 믿음은 외국의 총 앞에서 쉽게 꺾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시적 휴전은 모스크바가 무기 재고를 보충하고 공급망을 재건하며 범죄자 동맹을 더 많이 확보할 시간을 벌게 할 함정으로 보입니다. 2023년 이란에서 제조한 드론이 우크라이나 도시들을 공격했듯, 2024년 우크라이나는 북한산 무기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지난 1월 러시아 국경에서 30㎞ 떨어진 우크라이나 2대 도시 하르키우를 공격한 로켓이 북한산이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61명이 중상을 입고 세 명이 사망했습니다. 검찰은 더 많은 북한 무기의 사례를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바딤 스키비츠키 우크라이나 정보국 부국장은 하르키우에서 사용된 무기가 러시아제 9K720 이스칸데르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현대화한 북한산이라고 재확인했습니다.(이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가 500㎞에 달하며 고도 5㎞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로 무기를 운반해온 선박이 빈 상태로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에서의 실전을 통해 미사일을 실험하고, 민간인 마을을 포함한 목표물을 타격하면서 서방의 방공망을 뚫을 방법을 알아낸다면 북한 무기의 성능은 개선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스크바와 평양의 거래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탄약이 부족한 우크라이나는 더 많은 군사 지원을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우방국이 자국을 위해 무기를 비축하는 이유도 이해하고 있기에, 자체 무기 생산 능력을 개발하려고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선진화된 한국의 국방 지식·기술 지원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기 외에도 한국이 도울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재건이 대표적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불안정한 전후 환경에서 일한 경험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비슷하게 이웃 국가 점령을 시도한 적이 없고, 문화와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여러 도발에서 살아남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와 연대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전쟁이나 무기를 좋아해서가 아니고, 당장 가족을 구하고 우리 아이들이 주변국의 지속적인 위협으로부터 살지 않도록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인들이 직장 경력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한다는 사실을 한국인만큼 잘 이해할 사람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세기 동안 우크라이나인들은 국가도 없이 정체성을 보전하려 애써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세우게 된 조국을 무책임하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 전쟁에 대해 낙관하지 않지만, 희망을 버리지도 않으려 합니다. 최악의 잔혹함이 휩쓸고 나서도 국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한국의 사례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수세기 동안 우크라이나인들은 국가도 없이 정체성을 보전하려 애써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침내 세우게 된 조국을 무책임하게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 전쟁에 대해 낙관하지 않지만, 희망을 버리지도 않으려 합니다. 최악의 잔혹함이 휩쓸고 나서도 국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한국의 사례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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