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바다 건너 찾아오는 봄
2024. 2. 24. 00:06
예전에는 마을마다 동네 어귀에 마을의 수문장처럼 동구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가 몇 살인가에 따라 그 마을의 역사도 가늠되었으므로 수령 수백 년의 멋진 동구나무는 마을의 자부심이었다. 나무를 타고 놀던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나무와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 또한 집에서 멀리 떠났다가 오래간만에 귀향하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이해주는 것도 동구나무였다. 타향에서 거칠게 혹은 서럽게 살아왔다면 나무를 보며 슬그머니 위로받고, 자랑스럽게 잘 살아왔다면 당당하게 어깨를 펼 것이다. 이때 나무 아래 평상에 모여있던 노인들은 “누구네 집 자식이구만!” 묵은 기억을 끄집어내고, 숨바꼭질하며 놀던 동네 개구쟁이 중에는 “삼촌~”하고 뛰어오는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 고향의 문지방을 넘어선 것이다.
전남 강진에서 허리 굽은 노인처럼 ㄷ자로 구부러져 자라는 웅장한 고목을 보았다. 남쪽 바다를 향해 몸을 한껏 내민 나뭇가지는 반갑게 봄을 부르는 손짓 같았다. 그 손끝마다 새순이 돋아나면 겨울과 막 이별한 잿빛 고목은 점차 연둣빛으로 물들고 늦가을 이후 성장을 멈췄던 나무는 싱싱한 계절을 다시 펼칠 것이다. 또한 나무처럼 나이테를 하나 더 그린 사람들도 새봄을 맞이하여 농부는 밭으로, 어부는 바다로, 거침없이 삶의 한가운데로 나아갈 것이다. 어느새 봄이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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