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반발 넘어… 혁신 향한 나사의 항해

송은아 2024. 2. 2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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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프로젝트 후 관료주의 늪
덩치만 비대해지고 성과는 못내
정치권과의 이해관계 원인 꼽혀
한계 속 ‘민간 경쟁’ 도입 목소리
결국 뉴스페이스 시대 여정 돌입

중력을 넘어서/로리 가버/조동연·김지훈 옮김/다산사이언스/2만4000원

오랫동안 우주 탐사의 변방이었던 한국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경외의 대상이다. 나사는 인류의 미래를 이끄는 범접할 수 없는 조직 같다. 신간 ‘중력을 넘어서’는 이런 나사에 대한 환상을 산산이 조각낸다.

1992년 아홉 번째 나사 국장이 된 대니얼 솔 골딘이 동맥경화를 떠올렸을 정도로 한동안 나사는 과거의 영광 대신 관료주의의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했다. 미국의 우주 개발도 자연스레 정체됐다. 이 책은 미국 우주 탐사가 기득권 집단의 반발을 극복하고 나사 주도에서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같은 민간 기업으로 넘어오기까지 지난했던 여정을 다룬다.
‘중력을 넘어서’의 저자 로리 가버(왼쪽)가 민간 우주산업을 이끄는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와 함께한 모습. 다산사이언스 제공
저자 로리 가버는 민간 우주 시대를 연 설계자 중 한 명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 후 나사 인수위를 이끌었고, 2009∼2013년 나사 부국장을 지냈다. 이공계 전문가는 아니다.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선수강하지 못해, 이공계 대신 콜로라도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가버는 1980년대부터 비영리단체인 국립우주협회에서 일하면서 미국의 우주 탐사를 개혁하는 데 매달렸다.

저자가 나사에 의문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다. 챌린저호는 비행 73초 만에 수백만명이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폭발했다. 7명의 우주비행사가 숨졌고 위성 수십개가 정지됐다. 저자는 “이 비극을 겪으며 나사가 무엇을 위해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나사가 아폴로 프로젝트 이후 비효율과 관료주의의 늪에 빠진 모습은 여러 면에서 감지됐다. 미국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은 1972년 닉슨 대통령 시절 발표됐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2008년까지 발사 비용을 낮추고 우주여행을 정기적으로 하겠다는 목표는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 1년에 40∼50회를 비행하도록 프로그램이 설계됐지만 27년 동안 평균 5회 비행에 그쳤다. 비용은 1000억달러가 넘은 상태였다.

나사가 덩치만 비대해지고 성과를 내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정치권과 업계의 이해관계였다. 나사가 발주하는 계약은 각 선거구의 경제와 일자리에 영향을 미친다. 한 선거구에서 한번 대규모 계약이 체결되면 이를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나사의 한계를 인지하고, 우주 탐사에 민간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고 여긴 이들은 일찍부터 등장했다. 저자는 이들을 영화 ‘스타워즈’의 한 솔로와 같은 ‘우주해적’이라 부른다. 저자가 속했던 국립우주협회를 포함한 우주해적들은 1984년 ‘상업적 우주 발사 장려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정부가 민간의 우주 발사 관련 혁신 장비와 서비스를 확보·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1989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인간을 달로 보내고 화성으로 가는 프로그램을 추진했을 때 우주해적들은 현재의 ‘뉴스페이스’와 유사한 주장을 내놓았다.

1992년 취임한 골딘 국장도 숨 막히는 관료주의를 개혁하려 애썼다. 골딘은 1996년 X-프라이즈 재단이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완전히 재사용 가능한 우주선’을 개발하기 위해 대회를 여는 것을 승인했다.
신간 ‘중력을 넘어서’의 저자 로리 가버는 미국 우주 탐사가 기득권 집단의 반발을 극복하고 나사 주도에서 스페이스X, 블루오리진 같은 민간 기업으로 넘어오기까지 험난했던 여정을 다룬다. 다산사이언스 제공
그러나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텍사스주 상공에서 폭발하는 등 나사 내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했다. 나사를 감찰해야 할 감찰관이 당시 나사 국장과 식사하고 골프 치고 여행을 가기도 했다.

저자가 나사 개혁에 동참한 결정적 순간은 2008년 찾아왔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오바마는 그에게 ‘넬슨이라는 사람이 오랫동안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을 연장하기 위해 로비하고 있다’며 의견을 물었다. 이 대화를 계기로 저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나사 전환 팀을 이끌게 됐고 이어 나사 부국장에 올랐다.

오바마 행정부의 오거스틴 위원회는 나사의 콘스텔레이션 프로그램 대신 상업 우주 부문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나사가 2004년 발표한 콘스텔레이션은 2020년까지 달에 우주인을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오바마 정부는 2010년 이 프로그램의 종료를 포함한 첫 예산안을 의회에 냈다.
로리 가버/조동연·김지훈 옮김/다산사이언스/2만4000원
개혁은 쉽지 않았다. 이해관계자들과 오랜 줄다리기 끝에 나사는 2010년 상업 승무원 수송 프로그램을 위한 첫 계약을 맺었다. 5000만달러를 5개 민간기업에 배정했다. 블루오리진이 이 첫 예산을 받았다. 스페이스X는 1차 입찰에는 선발되지 않았으나 2011년 4월 다음 회차에 뽑혔다. 10여년이 지난 현재 두 회사는 민간 우주 탐사를 이끌며 인류의 꿈을 미래로 보내는 선두 기업이 됐다.

이 책은 우주 탐사의 최전선을 다루지만 딱딱한 과학도서가 아닌 사람 얘기에 가깝다. 한국은 관료주의에 젖어 있고 정치권은 이해관계자들에 휘둘려 퇴행적인 결정만 한다고 한탄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이 흥미로울 법하다. 민간 기업이 우주 탐사를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열기까지 미국에서 벌어진 복마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정치와 행정의 영역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어디든 지난한 전진과 후퇴가 반복됨도 알 수 있다. 때로 권력자의 이해관계와 사소한 우연이 맞물려 중요한 결정이 이뤄지는 모습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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