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과 민족 사이 ‘경계’를 살아온 존재들의 고뇌

정진수 2024. 2. 23.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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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출간돼 뉴욕타임스, BBC 등에서 '올해의 책 10'으로 선정되고, 전미도서상 픽션 부문의 최종 후보작에 오른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는 전 세계에 재일조선인의 삶을 조명하는 역할을 했다.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1세대가 식민주의와 냉전, 분단의 역사적, 집단적 의식을 갖는 경향이 있다면, 2, 3세대는 그런 경험을 물려받으면서도 일본 사회의 일상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1세대보다는 일본 사회 내부에서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차별과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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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집―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김용규·서민정·이재봉/소명출판/1만9000원

2017년 출간돼 뉴욕타임스, BBC 등에서 ‘올해의 책 10’으로 선정되고, 전미도서상 픽션 부문의 최종 후보작에 오른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는 전 세계에 재일조선인의 삶을 조명하는 역할을 했다. 험난한 현대사의 파고 속에서 3세대를 거쳐 일본에 자리 잡는 모습을 그린 이 소설은 동명의 시리즈로도 제작돼 더욱 공감을 얻었다.

사실 재일조선인의 삶은 단순히 고향을 떠나는 ‘이주’와는 결이 다르다. 일제 치하 국권 상실, 민족 분단이라는 격동의 현대사가 빚어낸 역사적·사회적 함의가 큰 존재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뿌리 뽑혀 다른 지역이나 장소로 이산된 사람”이라는 디아스포라의 정의에 들어맞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여행이나 사업을 위해 이중 국적을 갖고 세계를 오가는 글로벌 이주민과도 다른, 양쪽에서 차별과 억압을 겪은 ‘경계’에 선 존재들이다.
김용규·서민정·이재봉/소명출판/1만9000원
신간 ‘대담집―재일 디아스포라의 목소리’는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1세대 김석범, 2세대 서경식, 3세대 최덕효, 정영환 등 일제 강점기 조국을 떠난 1세대부터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3세대를 인터뷰하며 그동안의 변화상과 앞으로의 미래를 모색한다.

책은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지식인들의 고민과 사유가 역사적·세대적으로 어떻게 변주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 현재 1세대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고, 3세대 이후의 새로운 세대들은 일본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일본 사회로 통합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고 있다.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1세대가 식민주의와 냉전, 분단의 역사적, 집단적 의식을 갖는 경향이 있다면, 2, 3세대는 그런 경험을 물려받으면서도 일본 사회의 일상을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1세대보다는 일본 사회 내부에서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차별과 마주친다. 1세대에서 주로 디아스포라의 집단적 생성이 두드러진다면 2, 3세대에서는 디아스포라의 개인적 생성이 두드러지는 셈이다.

그러나 세대의 시각에서만 역사적 경험과 이해를 구분 짓고 그 차이를 분석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디아스포라라는 위치와 맥락이 있는 만큼 세대의 변화로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의 문제의식은 소멸하지 않기 때문에 식민주의적 유산, 국가주의의 차별과 억압은 그대로라는 의미다. 책은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의 변화하는 사고는 세대적으로 읽어내는 한편 선후배 세대의 문제의식이 어떻게 계승, 발전하는지, 또 어떤 점에서 달라지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않았던 이들의 ‘살아온 이야기’, 오래전 떠난 친구부터 시간을 따라 변해 온 자신의 가치관, 스스로 끊임없이 물었던 ‘경계 위의 질문’ 등을 고스란히 담았다.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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