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처럼 '최고 선수' 의존했던 클린스만, 새 감독은 달라야 한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2024. 2. 2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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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위르겐 클린스만(왼쪽)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사진=뉴시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독일어로 '푸스발 나치오날 만샤프트(Fußball national mannschaft)'라고 부른다. 워낙 독일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의 위상이 높다 보니 축구를 의미하는 푸스발을 빼고 나치오날 만샤프트로 호칭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만샤프트(mannschaft)'다. 만샤프트는 원래 부대에서 '사병 전체'를 의미했지만 근대 스포츠가 독일에서 뿌리내린 뒤 자연스럽게 '팀 또는 선수단'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생겨났다. 조직력과 희생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군 부대가 스포츠 팀으로 확장된 셈이다.

스포츠 팀을 현장에서 지휘하는 최고 책임자를 우리는 '감독'이라고 한다. 감독(鑑督)은 근대 일본이 영어의 헤드 코치(Head Coach)나 매니저(Manager)를 번역하면서 스포츠 지도자로 통용되기 시작한 표현이다. 문자 그대로 감독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잘못이 없도록 보살피고 다잡는 일을 한다.

이 두 가지 표현만 놓고 봐도 지난 16일 경질된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60·독일)은 수많은 언론 매체에서 지적했듯이 스포츠 지도자로서는 결격사유가 너무 많았다. 그는 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머물면서 한국 선수들을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고 아시안컵 요르단과 4강전을 앞두고 일어난 대표팀 내부 문제도 다잡지 못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 축구의 특장점이었던 조직력이 아시안컵에서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선수단을 이끌지 못했다. 독일 국가대표 출신의 클린스만은 그런 면에서 '만샤프트'의 기본정신을 스스로 걷어찼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16일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발표한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신임 전력강화위원장이 21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차기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업무를 총괄하는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신임 전력강화위원장은 지난 21일 새로운 대표팀 감독 선발 기준으로 대표팀 전력에 맞는 전략 수립, 취약 포지션 해결 능력, 소통 능력과 리더십 등을 꼽았다.

전력강화위원회가 이날 1차 회의를 통해 내놓은 감독 선발 기준은 다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자기 나름의 축구 철학을 통해 대표팀 운영 전략을 선보일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이는 단순히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예선 성적표가 아니라 장기적 측면에서 한국 축구의 성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감독의 축구 대표팀 운영 전략은 일반적으로 대표팀 선수 선발에서 시작된다. 여기에 어떤 경기에 어떤 선수를 선발로 기용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수반된다. 이처럼 축구 대표팀 감독은 수많은 선택을 하는 직업이다. 그의 선택 하나하나에 온 국민의 시선이 모아지는 부담감 속에서 외로운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어로 감독은 '셀렉시오뇌르(Selectionner)'로 불린다. 감독은 기본적으로 선수를 '선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셀렉시오뇌르라는 단어는 감독, 특히 축구 대표팀 감독은 선수를 뽑는 게 주된 업무라는 점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각국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들은 대표 선수를 뽑기 위해 깊은 고민을 한다. 기본적으로 각 포지션에서 기량이 가장 뛰어난 선수를 대표팀에 소집하지만 감독으로서는 더 큰 그림을 봐야 할 경우가 많다. 팀 플레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또는 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감독은 전체 기량에서는 다소 부족한 면이 있어도 특별한 장점을 가진 선수를 뽑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1969년 선수 시절의 잭 찰튼. /AFPBBNews=뉴스1
그래서 현대 축구에서는 오래 전부터 '최고'의 선수가 아닌 대표팀에 가장 알맞은 '최적'의 선수를 뽑아야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논란거리는 많았다. 1966년 월드컵에 참가한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이 그랬다. 수비수 잭 찰튼(1935~2020) 때문이었다. 그의 동생 보비 찰튼(1937~2023)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지만 잭은 대표팀에 들어갈 만한 실력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하지만 알프 램지 감독(1920~1999)은 1965년 당시 30세로 발도 느리고 패스 능력도 그리 뛰어나지 않은 수비수 잭 찰튼을 과감하게 대표팀에 불러 들였다. 램지 감독은 "잭 찰튼을 대표팀에 뽑은 이유는 그의 개인 능력이 아니라 팀을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잭 찰튼은 잉글랜드의 주장이자 수비의 핵이었던 보비 무어와의 조화를 위해 대표팀에 선발됐다. 개인기가 뛰어난 무어는 공격 전개를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 빈 자리는 잭 찰튼의 몫이었다. 수비수로서 책임감이 뛰어나고 안정적인 플레이를 했던 그는 결국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잭 찰튼의 2019년 모습. /AFPBBNews=뉴스1

잭 찰튼이 사망한 2020년 6월 EPL 애스턴 빌라와 크리스탈 팰리스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묵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흥미롭게도 잭 찰튼은 1985년 아일랜드 국가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뒤 마치 그를 월드컵 대표로 선택했던 램지 감독처럼 '최적의 선수'를 찾는 데 주력했다. 사실 잭 찰튼은 아일랜드를 800년 동안 식민지배했던 영국 국적의 감독이라 아일랜드 팀을 지휘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잭 찰튼 감독은 특유의 친화력과 유머를 바탕으로 아일랜드 축구 팬들과 가까워졌고, 이 와중에 적지 않은 새로운 선수들을 대표팀에 불러 들였다. 1990년 아일랜드를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던 그는 이 월드컵에서 팀을 8강까지 올려 놓으며 아일랜드의 영웅이 됐다.

그의 성공 비결은 선수 선발에 있어 조화와 균형을 중시한 점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잭 찰튼은 항상 새로 선발한 선수와 기존 대표 선수들간의 내부 경쟁도 치열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와중에 기존 선수들도 중요한 경기나 대회를 앞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려웠다.

아일랜드 축구 대표팀에서 생겨난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찰튼 감독의 '최적의 선수' 찾기 프로젝트였다. 이는 차기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이다. 인공지능 AI처럼 그저 '최고의 선수'를 뽑아 그들에게만 의존했던 클린스만의 실패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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