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 범죄자 될라" 의사 일 떠맡아…업무범위 논의는 '지지부진'
모호한 법 조항 '불법 진료' 유발
전공의 모자라 간호사 나서야 하지만
업무범위 논의는 지지부진하기만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의료공백이 현실화하면서 간호사들이 병원에서 맡는 역할이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이 중에는 의사만이 해야 하는 업무도 있어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칫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로 환자를 치료하고도 '불법 진료'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2020년 전공의 파업 때 부족한 의사를 대신해 '의사 업무'에 투입됐던 간호사가 '업권 침탈' 등을 이유로 전공의에게 고소·고발당한 사례가 실제 있었다.

간호사들이 전공의 이탈 후 겪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불법 진료 지시였다. 채혈, 심전도 검사, 수술 보조·봉합 등 수술 관련 업무, 대리처방, 진단서 대리 작성 등 의사가 해야 하는 업무를 간호사가 떠맡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부족했던 2020년 전공의 파업 때와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탁영란 간협 회장은 "많은 간호사는 지금도 전공의들이 떠난 빈자리에 법적 보호 장치 없이 불법 진료에 내몰리고 있다"며 "하루하루 불안 속에서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내는 상황"이라고 분개했다.
간협은 간호사의 업무 부담이 결국 환자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경고했다. 외래·수술 등 진료 스케줄 조정, 드레싱 준비, 정기적인 혈압·맥박 체크 등 간호사가 지금 맡은 업무가 상당하다. 여기에 의사의 업무까지 도맡으면 병원이 설령 환자 수를 조절해도 일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병원은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간호사 인력을 최소한으로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전공의 집단 이탈로 환자 수를 줄이고 "일이 없으니 쉬라"며 간호사에게 강제 연차를 쓰게 하는 병원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사법 리스크'다. 현행 의료법에는 간호사가 의사의 지도하에 '진료의 보조'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진료 보조'의 개념이 모호해 의사가 간호사에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맡기는 건데, 상당수는 법원 판결에서 의사가 아니면 해선 안 되는 '불법' 진료 행위로 구분됐다. 간호사는 혈압 맥박 등 생체징후 측정, 채혈, 주사 등의 의료행위는 할 수 있지만 진단과 처방, 상처 소독 등 드레싱, 중심정맥관과 같은 카테터 삽입, 의료기기 시술 등을 하는 건 불법이다. 예를 들어 피부과에서 레이저 시술을 간호사가 하는 건 불법이다. 심지어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것도 약물의 위험도 등에 따라 불법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훈화 간협 정책전문위원은 "복지부가 의료공백 현장에서 간호사의 업무를 명확히 하고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인 '긴급업무지침'을 행정명령 방식으로 곧 발표하기로 했다"며 "22일 복지부 간호정책과와 실무 협의도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최 전문위원에 따르면 전날 복지부는 긴급업무지침을 통해 즉시 의사가 간호사에게 지시할 수 없는 '위임 불가 행위'를 행정 명령하고 위반 시 책임과 제재(행정처분) 방안을 명시하기로 했다. 불가피한 업무일 경우 병원장이 간호부와 반드시 협의하고 그런데도 간호사가 거부하면 강요를 금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알렸다. 최 전문위원은 "위임 불가 행위의 기준은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설정할 계획"이라며 "이번만큼은 복지부도 대단히 협조적인 입장"이라고 구체적인 기준까지 소개했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4.02.23.](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02/23/moneytoday/20240223185413929irwm.jpg)
하지만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기자회견이 열린 당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행정명령을 통한 간호사 업무 범위 지정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박 차관은 "간협이 간호사들을 보호할 법적 보호 체계와 긴급 행정명령을 복지부와 논의 중이라고 하는데 검토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긴급명령이라고 하는 걸 복지부와 협의를 하고 있다고 (간협이) 주장하는데 보고받은 바가 없다"며 "긴급명령은 대통령이 발령하는 것이며 복지부가 지금 그런 검토는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간호사 보호 체계에 대해서는 "비상시기라고 하더라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운영돼야 한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라며 "(간협의 불법 진료 신고 사례는) 어떤 것이 불법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굉장히 개별적, 구체적으로 판단돼야 한다"고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그러면서 박 차관은 "평상시에도 그런 현상(불법 진료)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더 강화될 우려는 분명히 있는 것 같다"면서 "의료기관장 책임하에 각 기관 내에서 이루어지는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법을 지켜 가면서 진행해 주실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또 그렇게 지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간협은 이에 대해 "복지부와 해당 사안을 논의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놨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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