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미-일 반도체 회사 합병시키려 윤 정부도 SK에 요청”
합병 때 시장점유 ‘1위 삼성’ 맞먹어
SK “우린 압력에 굴복하는 회사 아니다”
반도체 대기업인 일본의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반대로 중단됐던 두 회사 합병 협상을 오는 4월에 재개할 것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가 나왔다. 두 회사의 합병을 위한 ‘에스케이 설득’에 윤석열 정부도 나선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예상된다.
아사히신문은 23일 관계자를 인용해 “웨스턴디지털 쪽이 내부자 거래 방지 문제로 협상 재개를 위해선 일정 (휴지) 기간을 둬야 한다. 이 기간이 끝나는 4월 말에 (키옥시아와) 협상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어 “지난해 가을 (합병 협상이) 일단 결렬됐지만, 두 회사 모두 생존을 위한 규모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5분기 연속 적자를 낸 키옥시아는 회사 재건을 위해 웨스턴디지털과 합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반도체 분야에서 미·일 협력의 ‘상징’으로 생각해 적극적으로 지원 중이다. 최대주주인 미국 투자펀드 베인캐피털도 투자금 회수를 위해 업계 재편으로 기업가치를 올린 뒤, 매각 등을 통한 최대 수익 확보를 노리고 있다.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지난 2018년 베인캐피털 등이 참여한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을 통해 키옥시아에 약 4조원을 간접 투자한 상태여서, 지분 매각 등에 대해선 의견을 낼 권한이 있다.
일본과 베인캐피털 쪽에선 합병에 반대하는 에스케이하이닉스를 설득하는 것이 최대 과제가 됐다. 합병 협상이 중단된 지난해 가을 이후에도 에스케이하이닉스와 물밑 협상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이달 초 에스케이그룹 최태원 회장이 일본으로 왔다. 급하게 일본 방문을 통보받은 경제산업성이 서둘러 면담을 추진했다”며 “일본 국회 회기 중이라 경제산업상(장관) 대신 사무차관(차관)이 만났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찬반을 뚜렷하게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산업성 간부는 이 신문에 “최 회장과 만났다는 점에선 진일보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시점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의 합병 과정을 상세히 다뤘다. 보도를 보면, ‘에스케이 설득’에 한·미·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신문은 “두 회사의 메모리 분야 합병 논의는 웨스턴디지털 주주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봄에 논의가 시작돼 여름에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나서면서 협상에 급물살을 탔다”고 밝혔다.
미·일 정부의 지원 속에 속도를 내던 합병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반대다. 경제산업성 쪽은 베인캐피털에 대해 ‘에스케이의 양해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라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베인캐피털 내부에서는 ‘정치적 압박을 가하면 (에스케이가) 납득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도 있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베인캐피털이 말한 ‘정치적 압박’은 한·미·일 정부 차원의 대응을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 베인캐피털 간부는 신문에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당시),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 한국 정부 등 ‘관계자 일동이 혈안이 돼 설득’ 했지만, 에스케이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이 합병하는데 있어 에스케이하이닉스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2018년 계약문서에는 대형 통합을 검토할 경우 에스케이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명시돼 있지 않다”며 “베인캐피털이나 웨스턴디지털이 향후 관계를 감안해 에스케이의 반대를 무시할 수 없어 지난해 10월 협상을 백지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일은 에스케이가 시장에서 존재감 저하를 우려해 합병에 반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두 회사가 합병을 하면, 낸드플레시 메모리 반도체 세계 시장 점유율이 2위인 에스케이를 뛰어넘어 1위인 삼성전자와 맞먹게 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낸드 시장은 삼성전자(31.4%), 에스케이하이닉스(20.2%), 웨스턴디지털(16.9%), 키옥시아(14.5%), 마이크론(12.5%) 등 다섯 업체가 나눠 갖고 있다.
에스케이 쪽은 자신들을 포함한 ‘3사 통합’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사히신문은 “에스케이가 3사 통합을 제안하고 있지만, 3사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 각국의 독점금지법상 심사가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키옥시아는 받아들이지 않을 방침”이라고 전했다.
일본 쪽에선 반도체 산업이 정치적 영향력이 강해 미·일 정부의 반감을 사면 에스케이에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이에 대해 에스케이 관계자는 신문에 “우리는 압력에 굴복하는 회사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28일 보도 설명자료를 내어 “우리 정부가 미-일 반도체 회사 합병에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동의하도록 압박했다는 보도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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