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죽은 아들 옷을 입고 잤나...한 정신과 의사의 37년간의 기록

장윤서 기자 2024. 2. 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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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 이야기 기록한 정신과 의사 김철권 교수의 신간
총 4편, 한 권당 80여편 이야기가 모여있는 임상기록
‘증상만 보지 않고 사람을 보기’ 위한 평생의 연구
한 정신과 의사의 37년간의 기록 1./안목 제공

50대 중년 여성이 남편 손에 이끌려 정신과 진료실에 들어온다. 더운 날씨에도 긴 소매 스웨터에 긴 치마로 온몸을 옷으로 감싸고 있다. 여성이 들어오자 악취가 코를 찌른다. 남편은 “아내가 몸은 씻는데 옷을 갈아입지 않고 말도 안한다”고 말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여성은 옷에 배어 있는 아들의 냄새가 없어질까 봐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 의사는 이 여성이 입원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그는 “아들의 옷은 아들에 대한 기억의 상징일 수 있다”면서도 “아들의 기억을 붙잡고 있으면 죽은 아들이 저승으로 길을 떠나지 못해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될 수 있다. 사랑한다면 놓아줘야 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부인은 울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정신과 의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을 겪은 한 환자의 진료 경험을 덤덤하게 풀어냈다. 책의 저자인 김철권 동아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37년 동안 진료실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고 그들의 증상을 글로 기록했다. 그렇게 해서 ‘한 정신과 의사의 37년간의 기록’이라는 총 4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우울증,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나눈 대화는 물론 정신분석과 행동치료를 적극적으로 적용한 치료과정부터 정신과 의사로서 살아오며 겪은 고충과 소회에 이르기까지 의사로 살아온 저자의 삶이 용해된 결정판이다.

책은 총 4권에 걸쳐 37년간 수백여명의 환자에 대한 방대한 진료 사례와 치료 방법을 담은 기록물이다. 1권 ‘죽은 아들 옷을 입고 자는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환자의 아픔을 첫 책의 첫 사례로 소개하며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의 존재 의미를 기록의 화두로 삼는다. 2권 ‘무지개 치료’는 37년간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분석부터 원포인트 치료, 사진치료, 타로카드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연구하고 개발한 맞춤형 치료 방법과 사례를 소개한다.

3권과 4권은 저자의 정신과 의사로서의 치료 철학, 고민도 담겨 있다. 3권 ‘사람들의 가슴에는 구멍이 있다’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 사랑의 고통과 집착이 낳은 다양한 정신병적 증상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건강한 삶을 실천할 수 있는 행동치유법을 제시한다. 4권 ‘나는 항구다’는 정신과 의사로서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의료 현장의 고충과 후배들에게 전하는 저자의 치료 원칙과 철학을 담았다.

책은 환자들의 임상기록을 담고 있지만, 알기 쉽게 이야기처럼 소개된 각 에피소드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공통의 사연들을 다룬다. 비밀엄수가 요구되는 의료인으로서 저자는 이 책의 저술을 위해 환자 본인들에게 직접 책의 취지를 설명하고 허락을 구했다.

책에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고민도 담겨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치료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환자들에 대한 죄책감, 정신질환 진단체계로 기계적 처방에만 급급한 현대 정신의학계에 대한 회의도 겪는다. 저자는 “이 모든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태어나도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이 바로 정신과를 찾는 환자들이라고 단언하다.

37년 동안 환자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을 낸김철권 동아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안목

정신과 의사는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이자, 사람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저자의 치료 철학은 고스란히 그의 발자취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증상 뒤의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평생을 연구해 온 장본인이다. 인간의 정신과 연관된 학문인 철학, 심리학 방면의 권위자들을 찾아 스승으로 모셨고 인간 심리를 파고들기 위해 시작한 영화 연구는 영화학 박사학위로 결실을 맺었다. 프로이트라캉 정신분석학회에서 10년 이상 정신분석을 공부하면서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다양한 인간탐구를 위해 60여개국을 여행한 저자는 여행지에서 직접 촬영한 수만장의 사진 가운데 36장을 골라 책 표지와 본문에 실었다.

이 책은 정신질환과 이로 고통받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정작 읽어야 할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일 수도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한 숨은 환자들에게 의사인 저자가 마치 모두의 정신과 주치의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독자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바라보고 점검할 수 있는 ‘자가치유’의 길을 열어 두었다.

김철권 지음ㅣ안목ㅣ368쪽ㅣ총 4권ㅣ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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