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면 역적인데..." 한숨 돌린 에이스, 이제 '벽 같은' 중국 꺾으러 간다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

부산=양정웅 기자 2024. 2. 2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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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부산=양정웅 기자]
남자 탁구대표팀 임종훈(맨 오른쪽)이 23일 오전 10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본선 토너먼트 덴마크와 8강전을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남자 탁구대표팀 장우진, 임종훈, 안재현.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남자 탁구대표팀이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고 메달까지 확보했다. 이제는 '타도 중국'에 나선다.

장우진(29), 임종훈(27·한국거래소), 이상수(34·삼성생명), 박규현(19·미래에셋증권), 안재현(25·한국거래소)으로 구성된 세계랭킹 3위 남자 탁구대표팀은 23일 오전 10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초피홀(제1경기장)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 본선 토너먼트 8강전에서 세계랭킹 19위 덴마크를 상대로 매치 스코어 3-1(3-1 1-3 3-0 3-1)로 승리했다.

이로써 남자 팀은 24일 세계랭킹 1위 중국과 준결승을 펼친다. 앞서 중국은 전날 오후 8시에 열린 일본과 8강전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일찌감치 4강 진출을 확정한 상태다. 한국은 여자대표팀이 22일 중국과 8강전에서 패배한만큼, 남매의 복수를 위해 나서게 된다.

이날 임종훈(세계랭킹 18위), 장우진(14위), 안재현(34위)이 차례로 출격한 한국은 덴마크의 안데르스 린드(세계랭킹 28위)-요나단 그로트(29위)-마르틴 부크 안데르센(387위)과 정면승부를 펼쳤다. 대표팀은 덴마크에 대해 '탄탄한 전력을 갖춘 팀'으로 평가했다.

21일 인도와 16강전 승리 후 주세혁(44) 대표팀 감독은 덴마크-슬로베니아의 16강전을 지켜보며 "덴마크를 걱정하고 있다. 린드가 다양하게 탁구를 치고, 더반 세계선수권(2023년)에서 장우진이 린드에게 패배했다"며 "까다로운 팀 중 하나다"고 이야기했다. 장우진과 임종훈도 "슬로베니아는 한 명의 에이스가 있다면, 덴마크는 전력이 고른 것 같다"며 덴마크를 견제했다.

남자 탁구 대표팀 장우진, 박규현, 안재현, 주세혁 감독, 임종훈(왼쪽부터).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예상대로 덴마크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주 감독이 경계한 린드가 1단식에서 임종훈을 괴롭혔다. 2세트 들어 페이스를 찾은 임종훈이 리드를 잡았으나, 린드도 3세트에서 7-9로 뒤지다 4점을 올려 승리를 따내 한치 앞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임종훈은 4세트 접전 끝에 1단식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이어 출전한 장우진은 어려운 출발을 보였다. 그로트의 실수를 틈타 점수를 올리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 1세트와 2세트를 연달아 패배하고 말았다. 3세트에서는 초반 기선제압에 성공하며 격차를 벌렸고, 막판 연속 5득점으로 한 판을 따냈다. 하지만 그로트는 장우진의 플레이를 파악한 듯 4세트에서 크게 앞서나갔다. 결국 장우진은 4세트를 3-11로 패배하며 2단식을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남은 두 선수가 장우진의 복수에 성공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3단식에 나선 안재현은 체급 차이를 보여주듯 초반부터 안데르센을 상대로 맹폭격에 나서 11-2로 1세트를 잡아냈다. 안재현은 2세트에서도 극적으로 8-8 동점을 만든 후 결국 13-11로 승리했다. 안재현은 3세트에서도 순식간에 매치 포인트에 도달해 11-7로 승리, 장우진의 복수에 성공했다.

이어 4번째 매치에 나온 임종훈은 장우진을 눌렀던 그로트를 만나 복수에 성공했다. 첫 세트를 9-11로 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던 임종훈은 2세트 들어 빠른 템포의 공격을 통해 그로트를 흔들며 12-10 승리를 거뒀다. 3세트에서 상대의 수를 읽은 임종훈은 연이어 그로트를 흔들면서 11-6이라는 여유 있는 격차로 승리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4세트 중반에도 연속 득점을 이어가며 그로트의 기를 제대로 꺾어 매치 승리를 확정했다.

남자 탁구 대표팀 임종훈(왼쪽)과 장우진.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안재현은 "덴마크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경기를 해보니 실제로 그랬다"며 "올라가게 돼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임종훈은 "오늘 응원을 많이 와주셔서 이겼다. 국가대표로서 게임을 뛸 수 있어 영광이었다. 그동안 (장)우진이 형이 힘들게 잘 잡아줬는데, 고전했을 때 제가 옆에 있어서 이길 수 있어 더 기분 좋다. (안)재현이도 3번에서 잘 끝내줘서 고맙다"고 밝혔다.

2단식을 내줬던 장우진은 "제가 졌지만 팀이 이겨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죄송스럽다. 해외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다면 이겨내기 어려웠을텐데, 우리 홈에서 하기 때문에 고비를 넘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4매치에서 임종훈이 1세트를 내주던 순간을 지켜본 장우진은 "속으로 '이거 큰일 났다. 5번에서도 지면 진짜 역적인데...'라는 생각으로 많이 준비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임종훈 선수가 2세트를 이긴 후로는 안도감이 들어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주세혁 감독은 맏형 이상수 대신 앞선 경기에 나오지 못했던 안재현을 3단식에 내는 변칙 오더를 냈다. 이에 대해 주 감독은 "3번 주자는 우리 중에 누가 나가도 유리하다"며 "그중에 제일 안정감 있는 안재현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상수는 컨디션이 좋지만 한번씩 비기복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3번을 무조건 잡고 가야 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갔다"는 말도 덧붙였다.

임종훈.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또한 장우진과 임종훈의 순서를 바꾼 부분에 대해서도 "린드가 작년에 장우진에게 더반(세계선수권)에서 이겼던 경험이 있어서 저쪽에서 바꿔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임종훈을 먼저 붙였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수많은 한국 팬들이 찾아와 선수들에게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보내줬다. 한국 선수들이 긴 랠리 끝에 극적으로 점수를 얻거나, 허를 찌르는 플레이를 선보일 때는 감탄 섞인 응원이 들리곤 했다. 임종훈은 "오늘(23일) 정말 응원을 많이 해주셔서 이겼다. 외국이었으면 솔직히 질 경기라 느낄 정도였다"며 "응원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제 한국은 '세계 최강' 중국과 맞대결을 펼친다. 중국 남자대표팀은 각각 세계랭킹 1, 2, 3위인 판젠동과 왕추친, 마롱이 주전으로 나온다. 한국으로서는 부담될 수밖에 없다. 전날 열린 중국-일본전을 지켜본 장우진은 "마치 벽 같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주세혁 남자대표팀 감독. /사진=양정웅 기자
우선은 피하지 않을 생각이다. 주 감독은 "오더 고민을 했다. 내일(24일)은 우리나라 홈에서 하기 때문에 정면승부를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선수들도 풀려줘야 된다. 홈 팬들 응원 덕분에 상대 범실도 있어야 한다"며 '우주의 기운'으로 기적을 써나가길 바랐다.

선수들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장우진은 "홈에서 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에 분위기를 많이 끌어올려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중국 선수들은 워낙 많은 상황을 겪어봤기 때문에 변칙적이고 예상할 수 없는 수를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종훈 역시 "강대강으로 붙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프랑스의 (펠릭스-알렉세스) 르브론 형제처럼 변칙적으로 경기를 준비할 생각이다"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승리를 확신하긴 쉽지 않다. 그래도 대표팀은 최소한의 자존심만은 세우려고 한다. 장우진은 "10번 정도 하면 한두 번은 이길 수 있다. 우리나라 홈이기 때문에 질 수도 있지만 0-3이 아닌 1-3, 2-3 등 스코어를 따서 여기 오신 분들께 희망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홈그라운드에서 경기가 열린다는 점이다. 탁구 강국 중국은 해외에도 많은 팬들이 찾아 열광적인 응원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고, 실제로 조직위 관계자에 따르면 토너먼트부터는 중국 팬들의 티켓 구매 지분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세계선수권인만큼 자국 팬들의 응원 역시 이에 못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홈그라운드의 한국이 '탁구장성'에 균열을 내야 한다. 객관적인 전력상 열세이므로 홈 관중의 열정적인 응원은 더욱 절실해졌다.

선수들은 대회 내내 팬들의 응원에 고마움을 드러내고 있다. 남자 맏형 이상수는 "아무래도 소리를 질러주시고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안 나던 힘도 생긴다. 그런 곳에서 힘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고, 임종훈은 "너무 기분 좋다. 중국 선수들은 어느 나라를 가도 홈처럼 응원받아서 부러웠는데, 홈에서 많은 응원을 받으니 경기력이 올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 막내 박규현은 "응원하러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긴장감도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고 고마워했다.

남자 탁구대표팀 주세혁 감독, 이상수, 박규현, 안재현(왼쪽부터)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사실 대표팀 선수들은 결승에서 중국을 만나는 시나리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 남자 대표팀은 그동안 세계탁구선수권 단체전에서 꾸준히 메달권에 들었다. 2001년 일본 오사카 대회 이후로는 9대회 연속 동메달 이상을 확보했다. 하지만 2008년 중국 광저우 대회 이후로는 결승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16년 만의 결승 진출을 위해선 최대한 중국과 늦게 만나야 했다.

장우진은 지난 14일 대표팀 공식 훈련이 끝난 후 "저희가 사실 그동안 4강에서 계속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결승을 가서 중국과 하는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은 게 목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목표는 중국과 만나기 전에 다른 나라들을 이기는 것이고, 그런 건 대진운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대진추첨에 참여했던 주 감독은 "바람보다 일찍 중국을 만나는 것은 아쉽지만 어차피 한 번은 싸워야 하는 상대다. 홈에서 한 번 일을 내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주 감독은 "4강까지는 무난해 보이지만 본선에서 만날 팀들 중 약팀은 없다. 예선에서 이긴 인도도 본선에서는 다를 수 있다. 심리전에서 우위에 서야 한다. 패하면 끝인 토너먼트인 만큼 모든 경기가 결승이라는 각오로 뛸 것을 선수들에게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세혁 남자 탁구대표팀 감독(맨 왼쪽)이 21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토너먼트 대진 추첨식에 참석했다. /사진=2024부산탁구선수권대회조직위 제공

부산=양정웅 기자 orionbear@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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