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다 멈춘 배[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13)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바다 사이에 낀 잘록한 땅인 지협이 있다. 육지와 육지를 연결해주는 다리 같은 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바다의 입장에서는 물길이 막혀 있는 곳이다. 따라서 지협을 뚫어 배가 지나가게 하면 수송 거리와 운항일수,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다. 역사적으로 인류문명은 물 접근이 용이한 강을 중심으로 성장해왔기에 수로가 확보되고 물류가 확대되는 운하 건설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물을 이용한 해상 운송은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육상 운송에 비해 우위에 있었다.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철도, 항공 운송은 속도 측면에서 해상 운송을 앞지르지만, 여전히 경제적 측면에서는 해상 운송이 다른 운송 수단을 압도하고, 국제 교역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북아메리카 대륙과 남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좁은 길목에 파나마운하가 있다. 운하가 건설되기 전에는 멀리 남미 끝에 있는 드레이크해협을 돌아가야 했기에,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식민화할 때부터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 건설을 꿈꾸었다. 단지 운하를 건설할 기술과 엄청난 자본이 문제였다. 파나마운하의 공사 시작은 수에즈운하를 개통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에 의해 1880년 시작됐다. 하지만 난공사 구간이 많았고, 사고 및 질병으로 무려 2만2000여명의 인부가 죽어 나갔다. 프랑스는 결국 9년 만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물러났다.
이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미국은 프랑스가 포기한 파나마운하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미국은 동부와 서부를 해운으로 연결하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미국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 파나마운하를 미국이 건설해야 한다고 믿었다. 1902년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파나마운하 사업권을 4000만달러에 매입했다. 이후 미국이 콜롬비아-매입 당시 파나마는 남미 콜롬비아의 땅이었다-에 제시한 일방적인 임대조건을 콜롬비아가 거부했다. 미국은 무력개입을 통해 파나마를 독립시켰다. 이윽고 신생 파나마 정부로부터 운하 착공에 대한 전권, 완성된 운하의 운영과 관리권, 그 보호를 위한 군대 주둔에 관한 협정까지 일사천리로 맺고 1904년 착공에 들어갔다. 파나마는 지금도 군대가 없다. 미국이 파나마운하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파나마의 군대 보유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미국 달러를 법정통화로 사용하는 등 중남미 내 대표적인 친미 성향의 나라다.
미국은 파나마운하를 1914년에 완공했다. 완공 후 자국 내 미개발 지역인 서부 지방과 생산성이 높은 동부의 경제를 연결하며 경제를 빠른 속도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단번에 전 세계 해양교역의 핵심국가가 됐다. 또한 운하 건설로 미국은 두 대양에 걸쳐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한 해양세력이 됐다. 미 해군 전함이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현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파나마운하
프랑스가 건설한 수에즈운하도 어려웠던 공사였지만, 적어도 평탄한 지형에서 운하를 파는 것이었다. 파나마운하는 난도가 더 높은 복잡한 공사였는데, 중간에 160m가 넘는 산맥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토목학회(ASCE)가 현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은 파나마운하는 신공법과 신기술장비가 총동원됐다. 결국 파나마운하의 높이를 해수면보다 최대 26m로 조정하고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혁신적인 방법을 채택했다. 바다에 있는 배가 독에 들어오면 물을 채워 더 높은 위치의 독으로 올려보냈다. 운하 중간에 위치한 가툰 호수-파나마운하 건설로 생긴 인공 호수-를 거쳐 다시 독으로 들어가 물을 빼 내려갔다. 물의 수위에 의해 작동하는 엘리베이터처럼 계단식으로 대륙을 관통하는 갑문식 시스템을 이용했다.
하지만 갑문식으로 운영되는 운하는 몇 가지 제약조건이 있다. 독마다 물을 채우고 비우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배가 한 척 통과할 때마다 많은 양의 물을 바다로 흘려보낸다. 이렇게 소모되는 가툰 호수의 물은 주변 유역에 내리는 강우량에 의해 보충됐다. 배 1척당 필요한 물의 양은 약 2.3억ℓ다. 이렇게 물을 ‘물 쓰듯’ 소비할 수 있었던 것은 파나마가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풍부한 강수량을 기록한 나라였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가뭄으로 가툰 호수 역대 최저 수위 ‘비상’
온난화로 이미 뜨거워진 지구 온도에, 2023년부터 발생하고 있는 ‘엘니뇨’ 현상까지 겹치면서 지구 곳곳에 폭염과 홍수, 가뭄의 이상 기후가 발생했다. 특히 파나마는 최근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며 기상관측이 이뤄진 이래 가장 건조한 해 중 하나를 겪고 있다. 믿었던 강수량에 뒤통수를 맞으며, 가툰 호수가 역대 최저 수위를 기록하고 파나마운하 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작년 5월부터 파나마운하청은 흘수-선박이 물 위에 떠 있을 때 물속에 잠기는 선체 깊이-제한 조처를 내렸다. 선박의 흘수를 줄이는 것은 배에 실을 수 있는 짐의 양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에 대형 선박에 해당하는 컨테이너선들은 컨테이너 적재량을 40% 가까이 줄여야 했고, 화물 운송 비용도 인상했다. 가뭄의 상황은 계속 심각해지며, 파나마운하청은 작년 11월 추가 발표를 했다. 흘수를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하루 선박 통행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하루 36척까지 통과시켰던 통행량을 단계적으로 줄여 올해 2월부터는 18척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파나마 국내총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운하통행료와 관련 금융 물류 서비스 산업은 직·간접적으로 축소될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5%, 동북아시아와 미국 동부 해상 물류의 46%를 이동시킨 대서양-태평양 연결 수로가 좁아졌다. 이미 일부 선박은 최소 수주 이상의 운송 시간 증가와 비용 상승을 감수하고 남아메리카 끝단의 드레이크해협으로 우회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에 따른 물류 병목현상은 파나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가을 세계에서 가장 넓은 강이자 일 년 내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 아마존강이 극심한 가뭄에 메마르며, 120년여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위를 기록했다. 아마존강에 의존하던 브라질 지역 물류는 마비됐다. 2023년 10월 미국 미시시피강은 미국 중부 가뭄으로 수위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져 내륙 물류 운송에 비상이 걸렸다. 2022년 독일은 500년 만에 유럽을 강타한 최악의 가뭄으로 라인강 수위가 낮아져 선박 용량의 25%만 운항할 수밖에 없었다.
혈관 벽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면 혈관이 좁아지며 동맥경화로 이어진다. 화석연료의 오남용으로 탄소가 쌓이며 물류가 좁아지고 병목현상으로 이어진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줄이듯, 탄소 배출이 많은 연료 사용을 줄여야 한다. 그것만이 세계 물류의 동맥경화를 막을 수 있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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