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에 집중된 재난방송 지원, 특별법 제정해 지역까지 확대해야"

김고은 기자 2024. 2. 2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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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지화되는 자연재해 지역방송의 역할' 토론회…획일적인 의무·과태료 기준 등 차등화 요구

“코로나19 때 자동자막송출시스템으로 우리한테 날아온 재난정보가 연간 2000건이었다. 그중 3건이 문제 돼서 과태료 1500만원씩 4500만원을 부과받았다.(실제론 50% 감액) 지역(울산)과는 아무 관련 없는 것이었다. (…) 사람이 하는 일이고 심지어 기계도 오차범위라는 게 있는데 100% 토씨 하나도 틀리지 말고 송출하라는 건 억지에 가깝다고 본다.”
-송창섭 ubc울산방송 경영정책국장

기후위기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연재해 발생률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우리 일상이 위협받는 일도 잦아졌다. 한쪽에서 폭우로 신음하는 동안 다른 지역에선 가뭄에 시달리고, 산불이나 국지성 호우로 특정 지역에 피해가 집중되는 등 재난 형태가 점차 국지화되는 것도 최근의 경향 중 하나다. 재난 상황에서 지역 언론 특히 지역방송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이유다.

그러나 고질적인 인력난과 경영난에 시달리는 지역방송이 잦은 재난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지역방송들은 정부가 지원 없이 의무만 지게 한 채, 조금의 실수나 잘못이 있어도 과태료를 부과하는 건 지나치다고 하소연한다. 재난방송 주관방송사인 KBS로 지원 시스템이 집중돼 지역MBC와 민영방송 등은 꼭 필요한 지원조차 받기 어려운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재난방송 관련 제도를 규제 중심에서 지원(진흥) 중심으로 바꾸고, 이를 뒷받침할 특별법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지역언론학회와 지역방송협의회 주관으로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지화되는 자연재해 지역방송의 역할은?’ 토론회가 열렸다. /김고은 기자

한국지역언론학회와 지역방송협의회 주관으로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지화되는 자연재해 지역방송의 역할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재난방송 실시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가칭)’ 제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재난 주관방송사를 KBS로 한정할 게 아니라 지역별 거점 주관방송사를 지정해 지원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실행해야 할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정작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인력·재정 다 다른데 획일적 재난방송 기준…“과태료 차등화해야”

이날 발제를 맡은 송종현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방통위가 지난 2021년 ‘재난방송 강화 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 어느 정도 실현됐는지 의문”이라고 전제한 뒤 “모든 제도와 정책이 실현돼서 실질적인 시스템으로 구축되고 자원이 재분배되기 위해선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재난방송 지원 특별법이 조속히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지역MBC와 지역민방을 대상으로 재난방송 관련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토대로 재난방송 관련 제도의 현실적인 개선을 촉구했다. 그에 따르면 지역방송은 재난이 발생해도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현장 취재나 중계를 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이동 생중계 장비인 LTE가 1대뿐이거나 낡아서 휴대성이 떨어지고, 수백만원에 달하는 회선 사용료가 부담이라는 곳도 있었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이교선 전국언론노동조합 대전MBC지부장도 지난해 오송 참사 당시 MBC충북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오송 참사 발생이 토요일 아침 취약 시간이었는데, 한 대뿐인 LTE 중계 장비는 새벽에 발생한 괴산댐 월류 상황에 취재 인력과 함께 파견돼 있었다. 즉 재난방송에 투입을 하고 싶어도 장비, 인력이 빈약해 현장 투입 시점은 지체됐고, 현장 데스크 운영, 공동취재단 구성 등도 요원했다. 타 지역사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경영적으로 어려운 지역사 사정이 재난방송 대비의 불평등까지 초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처럼 방송사의 재원이나 인력 규모에 따라 재난방송 대비 역량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 현행법과 제도는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의무와 벌칙을 부과하고 있다. 지역방송 권역 외에서 발생한 재난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며, 과태료도 방송사 규모와 관계없이 동일하다. 송종현 교수는 과태료 부과를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며 “방송사업의 형태, 매출 규모, 종사자 수, 재난방송의 제작능력 등을 고려해 (과태료를) 경감해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기준을 고시로 공표할 것”을 제안했다.

행정안전부, 방통위와 지자체 등이 송출을 요청하는 재난 자막방송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문제다. 연간 수백, 수천 건에 달하는 자막 송출을 처리하다 보면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방송 및 민방위경보방송의 실시에 관한 기준’은 “요청받은 즉시”, “그대로 빠짐없이 방송”하도록 정해 사소한 정보 하나라도 빠지면 과태료 처분 대상이 된다. 송 교수는 “현실과 맞지 않다”면서 “중요 핵심정보 위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방통위가 지난 2021년 발표한 '재난방송 강화 종합계획'에 나온 재난방송 실시 체계도 /방통위 자료

또한, 코로나19 이후 재난 발생 사항보다 예방 관련 내용이 많아졌는데, 송 교수는 “잦은 자막 송출에 시청자의 피로감이 커지고 무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스크롤 요청은 재난 상황으로 한정하고, 예방 관련 내용은 정부나 지자체가 비용 부담을 해서 캠페인으로 송출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재난 요소 지역별로 달라…지역 거점 주관방송사 필요”

지역별 거점 주관방송사 지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송 교수는 “KBS가 전국적인 재난 주관방송사 역할을 수행한다면, 지역별 거점 주관사를 선정해서 효율적으로 재난방송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희각 부산외대 교수도 여기 동의했다. 윤 교수는 “자연재해에서만큼은 주관사 개념을 지역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로 존재하는 위험한 재난의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알다시피 주관방송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재난) 영상을 확보하는 것과 비주관 방송사인 지역방송 기자로서 영상을 확보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속히 지역 거점 주관방송사 개념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지원을 위한 재원의 확보다. LTE 장비 1대를 보급한다고 해도 운영비를 포함하면 몇천만원이 필요하다. 방통위는 지난달 발표한 ‘제4차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에서 “재난방송 송출을 위한 재정 지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별법 등 관련 법률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지원한다고 해도 극히 일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윤희근 교수는 “중앙에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이 있고, 다수의 광역자치단체에도 별도의 지역신문발전기금이 존재한다”며 “재난이 터지면 광역자치단체에서 재난본부가 가동되고, 방송사도 준 재난본부 역할을 하게 된다. 광역단체별로 지역방송 재난보도 발전기금을 조성하는 게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홍보실장은 중앙정부의 책임감 있는 지원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전국 자연재해의 80%가 군 단위 등의 중소도시에 집중됐고, 이것이 서울 등 대도시의 ‘기후 부채’(climate debt)로 인한 “재난의 불평등”을 보여준다고 설명하며 “지역방송의 재난방송 관련 지원이 지자체가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태풍이 수도권 지날 때 아니면 드라마 끊고 재난방송 못 한다”

이날 토론회에는 지역MBC와 지역민방 노조 위원장들이 다수 참석했다. /김고은 기자

지역방송인들은 ‘제작과 편성의 자율권’을 비중 있게 언급했다. 송창섭 울산방송 경영정책국장은 “지역방송은 편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핵심 시간대 광고를 팔아야 하고 SBS 인기 프로그램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재난방송 해서 속보를 낸다고 프로그램을 끊는다? 끊기도 쉽지 않지만, 광고비와 전파료 손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역에 국한된 태풍속보 등은 지역방송이 오롯이 떠안을 수밖에 없는데 편성이 여의치 않아 유튜브를 활용하고 있다”면서 “재난방송 실적 등을 평가할 때 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부분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민성빈 언론노조 부산MBC지부장도 “태풍이 수도권을 지나면 난리가 나는데, 남부 지방만 지나면 드라마를 못 끊는다”며 “편성의 자율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예측 못 한 재난이 발생하면 다급하게 가서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고 뛰어드는 구조가 반복된다”며 “정책적인 고민과 공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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