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다년계약 거부, 힘 있을 때 한화 복귀…류현진에게 '의리남' 구로다의 향기가 난다

신원철 기자 2024. 2. 2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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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현진 ⓒ곽혜미 기자
▲ 현역 시절 구로다 히로키.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메이저리그 구단의 후한 제안에도 단년 계약만 고집하다, 아직 건강하다고 판단했을 때 친정 팀으로 돌아간다. 구로다 히로키(전 히로시마 카프)의 낭만 가득한 일화가 한국에서도 재현됐다. 류현진(한화 이글스)이 여러 메이저리그 구단의 제안을 마다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를 직접 밝혔다. 1년 계약만 고집했고, 팀에 힘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올해 복귀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구로다와 분명 비슷한 면이 있다.

한화 이글스는 22일 오전 류현진과 8년 총액 170억원(옵트아웃 포함·세부 옵트아웃 내용 양측 합의 하에 비공개)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총액 기준 KBO리그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이다. FA 권한 재취득 기준인 4년이 보편적인 KBO리그에서 8년 계약도 역대 최장 타이기록이다. 단 옵션 없이 보장 8년은 류현진이 처음이다. 첫 8년 계약의 주인공 NC 박민우는 5+3년 계약이었다.

▲ 류현진 ⓒ곽혜미 기자

지난 시즌을 끝으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8000만 달러 계약이 만료된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FA 자격을 얻었다. 이후 메이저리그 잔류와 국내 복귀를 고민하다 마침내 한화 유니폼을 입는 결단을 내렸다. 미국 스포츠 언론에서는 류현진을 '특급' 바로 다음 단계로 규정하고 어렵지 않게 메이저리그에 잔류할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 계약 규모는 길어야 2년, 몸값은 연 평균 1000만 달러 안쪽이었다.

류현진은 2월 중순까지도 거취를 고민했다. 계약 소식이 좀처럼 나오지 않자 기대치에 맞는 제안이 없다거나, 혹은 제안 자체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런데 류현진은 실제로 여러 구단의 제안을 거절하고 한화행을 선택했다. 류현진이 23일 일본 오키나와 출국 인터뷰에서 직접 밝혔다.

- 메이저리그 FA 시장이 열렸을 때 전체적으로 선발투수들이 후한 대우를 받아서 금방이라도 계약이 나올 것 같았는데 조금 시간이 소요됐다. 기다리면서 심정이 어땠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더라. 다년 계약 이야기도 있었지만 내가 다년 계약 오퍼를 수락하면 마흔 가까이 던져야 했기 때문에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년 계약은 강력하게 거부했었다. 최대 1년으로 계약 기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 류현진(왼쪽)과 박찬혁 대표이사. ⓒ 한화 이글스

류현진의 한화 복귀는 그 시기가 문제였을 뿐 언젠가 이뤄졌을 일이다. 류현진이 그 시기를 앞당기는 쪽을 택하면서 한화와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1년 계약으로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킨다. 여기서 구로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구로다 역시 메이저리그 구단의 다년 계약 제안을 받지 않고 1년 계약을 고집한 것으로 유명하다.

단 류현진과 같이 복귀 직전의 결정은 아니었고, 메이저리그 진출 때 첫 3년 계약이 끝난 뒤부터 꾸준히 단년 계약만 맺었다. 구로다는 "다년계약을 하면 아무래도 힘을 남겨놓기 마련이다. 팀 역시 (노장선수와 다년계약은)위험부담이 있다. 매년 내 가치를 입증하겠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2014년 시즌이 끝난 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제안을 뿌리치고 히로시마 복귀를 결정했다.

▲ 손혁 단장 ⓒ곽혜미 기자
▲ 한화 이글스 박찬혁 대표(왼쪽)와 류현진 ⓒ 한화 이글스

한화 손혁 단장 역시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의미있는 제안을 여럿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22일 류현진 영입 확정 뒤 "미국에서 좋은 오퍼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현진이랑 계속 이야기할 때 들어보면 미국 쪽도 오퍼가 괜찮았다. 금액도 그렇고 기간도 긴 것도 있었다. 미국 쪽에서도 류현진의 건강은 다 체크하고 고려해서 긴 기간의 계약도 제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도 나름대로 계약을 계속 준비하면서 몸 상태를 체크했다. (운동선수이다 보니) 확신한다는 말은 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류현진이 건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계약 기간이 긴 오퍼도 있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류현진의 한화 복귀 의지와 건강한 몸 상태를 알 수 있다.

▲ 양키스 시절 구로다 히로키.

구로다 또한 '건강하게, 히로시마에 힘이 될 수 있을 때'를 복귀 시점으로 꼽았다. 그는 40살이 되던 2015년에 히로시마로 복귀했다. 마지막으로 샌디에이고로부터 받은 제안이 1년 1800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혹의 나이에도 26경기에 선발 등판한 구로다는 169⅔이닝을 던지면서 11승 8패, 평균자책점 2.55를 기록했다. 단 2015년의 히로시마는 구로다와 마에다 겐타, 크리스 존슨이라는 선발 빅3를 보유하고도 페넌트레이스에서 센트럴리그 4위에 머물렀다. 구로다는 1년 더 히로시마에 남아 꿈을 이뤘다. 2016년 35경기에서 151⅔이닝을 책임졌고, 10승 8패 평균자책점 3.09를 기록해 팀의 센트럴리그 1위를 도왔다. 힘이 남아있을 때 돌아온다는 말처럼 마지막 2년 동안 구로다는 21승을 더해 미일 통산 203승을 달성했다.

은퇴 시기를 결정한 기준도 남달랐다. 9이닝 완투가 구로다만의 은퇴 기준점이었다. 구로다는 2016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면서 "9이닝을 던질 수 없는 몸이 되면서 좌절감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현역 연장을 욕심내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몸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한 순간 기꺼이 유니폼을 벗었다.

▲ 토론토 시절 류현진의 역투 장면

구로다의 전격 복귀는 히로시마시의 내수경제를 활성화시킬 만큼 파급력이 컸다. 팀에 끼치는 영향 역시 엄청났다. 구로다의 복귀와 함께 전국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시즌 티켓은 예약 판매 시작과 함께 매진됐다. 히로시마는 구로다 복귀 2년 만인 2016년 센트럴리그 정상에 올라 2018년까지 3년 연속 1위를 지켰다. 류현진의 한화 또한 마찬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편 류현진은 오키나와 출국 기자회견에서 "해외로 진출하기 전에 '건강하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며 포스트시즌 진출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마지막 목표로 설정했다.

또 8년이라는 장기 계약에 대해서는 "8년까지는 예상을 못했다. 단장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바로 납득을 할 수 있었다"며 "우선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다. 8년이라는 숫자를 채우게 되면 KBO 리그 최고령 선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점에 있어서도 영광스러울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자부심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옵트아웃 권리를 가진 류현진이 8년 계약을 다 채우면 송진우의 기록도 넘어설 수 있다.

▲ 배지현 아나운서 류현진 ⓒ곽혜미 기자
▲ 류현진 ⓒ곽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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