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人문화] "카펫 위 기술적 이미지, 사진인가 아닌가"

박은희 2024. 2. 2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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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 년을 돌아보면 저는 미술계 안에서 사진과 사진이 아닌 것 사이를 끊임없이 도는 사이클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새로운 이미지로 바꿔내는 것도 제 작업의 일부라고 할 수 있죠."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66)가 새 기술로 구현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2004년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전시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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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루프 개인전 'd.o.pe.'…"프랙털 구조 아름다움 비로소 반영"
토마스 루프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d.o.pe.'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소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토마스 루프 개인전 'd.o.pe.' 전경. 사진=박은희 기자
토마스 루프 개인전 'd.o.pe.' 전경. 사진=박은희 기자
토마스 루프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d.o.pe.'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지난 20여 년을 돌아보면 저는 미술계 안에서 사진과 사진이 아닌 것 사이를 끊임없이 도는 사이클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새로운 이미지로 바꿔내는 것도 제 작업의 일부라고 할 수 있죠."

독일 사진작가 토마스 루프(66)가 새 기술로 구현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2004년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전시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다. 작가는 현실을 반영하는 기록사진에 만족하기보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입각해 다양한 실험을 해왔다. 1980년대 중반 초상사진 연작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한 이후 '누드' '서브스트라트' '별' '건축' '신문사진' '포스터' 등 여러 장르의 사진작업을 시도했다.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독일의 대표적 사진작가 번과 힐라 베커의 지도를 받은 그는 '사진은 사물의 표면만을 포착할 뿐'이라는 전제 하에 끊임없이 매체의 한계를 시험했다. 사진은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해석이 아니라 이미지의 이미지, 즉 조작된 2차적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2000년 이후 사진은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매체이며, 기술이라는 것은 항상 개선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 방향은 결과적으로 디지털화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사진으로 작업을 하는 동시대 예술가로서 기술적인 이슈들을 사진으로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2001년부터 제작한 '서브스트라트' 연작은 일본 만화를 자료로 삼아 여러 개의 층을 중첩하고 합성시켜 현란한 색채 속에서 더 이상 어떤 의미도 찾아볼 수 없게 만든 작품이다. 작가는 이 연작에 대해 "인화지에 인화했지만 사진이라고는 할 수 없다"며 "사진적 이미지가 아니라 완전히 추상적인 것"이라고 짚었다.

2000년대 초반 프랙털(임의의 한 부분이 항상 전체의 형태와 닮은 도형) 구조의 다차원적인 아름다움을 작업에 반영하고자 했으나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했고,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함께 2022년 비로소 실현할 수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이번 PKM갤러리 'd.o.pe.'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카펫을 사진의 지지체로 처음 사용해 작업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생성한 프랙털 패턴을 겹치고 합성해 최장 290㎝의 거대한 융단 위에 황홀경처럼 펼쳤다.

작가는 "직접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냈기 때문에 이 작품들은 사진이라기보다 기술적 이미지"라며 "제가 갖가지 테크닉들을 탐구하는 연구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연구를 하다보면 매우 극단적으로 치달아서 서브스트라스나 이번 작업처럼 천장을 뚫고 나아가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다가 다시 사진적인 사진으로 돌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저는 사진계에만 속하지 않고 미술계 안에서 살았다"고 강조했다.

카펫 작업 과정에 대해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이미지를 생성한 뒤 어디에 출력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며 "플렉시 글라스의 대형 인화지를 뽑아 보여주는 건 지금까지 해오던 전형적 방식이라 배제했고, 캔버스는 이미 회화적으로 시도를 했고 이 이미지들은 회화가 아니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던 중 벽에 카펫을 걸어놓는 전통이 있는 벨기에의 한 회사에서 벨루어 카펫에 출력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인화지에 뽑은 것만큼 디테일을 다 담아내진 못하지만 이미지 속에 뛰어들 수 있을 것 같은 깊이감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전시 제목인 'd.o.pe.'는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지각의 문'에서 따왔다. 책은 인간이 화학적인 촉매제를 통해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고 본 헉슬리의 자전 에세이다. 전시는 4월 13일까지 이어진다.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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