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어도 ‘아전인수’ 해석… 공론장이 공허해진 이유[연구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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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를 꼽으라고 할 때 '혐오'와 '청년'을 빼놓을 수 없다.
책은 '청년'이라는 단어로부터 출발하여 구체적인 사례들로 한국 사회 공론장의 문제를 파헤친다.
청년이라는 단어는 텅 빈 말의 대표적인 사례다.
'청년'뿐 아니라 '불평등' '경제'와 같은 단어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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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언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를 꼽으라고 할 때 ‘혐오’와 ‘청년’을 빼놓을 수 없다. 두 단어에는 공통점이 있다.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식이 제각기인 텅 빈 말이라는 점이다. 이런 말들이 합리적인 대화를 위한 토대가 될 수 있을까?
합의된 언어를 통한 대화가 가능해야 법이나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수립하는 합리적인 정치적 대화 또한 가능하다고 할 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합리적인 정치적 대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치철학자 박이대승은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오월의봄)를 통해 작금의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를 언어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진단하고,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언어를 뿌리부터 다시 세우자고 제안한다.
책은 ‘청년’이라는 단어로부터 출발하여 구체적인 사례들로 한국 사회 공론장의 문제를 파헤친다. 청년이라는 단어는 텅 빈 말의 대표적인 사례다. 일상적인 상황뿐 아니라 정책 용어일 때조차 그 범주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노동 문제나 주거 문제인 것이 ‘청년 문제’로 둔갑한다. 그렇게 청년들의 문제는 노동 문제나 주거 문제에서 함께 다뤄지지 않고, ‘청년만의 문제’인 것처럼 고립된다. 그러면서도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청년’을 부르짖으며 그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의미가 불분명한 언어를 조작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자기편을 구성하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지만, 그러한 언어만이 공론장을 가득 메운다면 대화는 불가능하다. ‘청년’뿐 아니라 ‘불평등’ ‘경제’와 같은 단어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저자는 어느 정도 의미가 고정되어서 소통의 기반으로 작동할 수 있는 언어인 ‘개념언어’의 부재가 지금 우리가 처한 공론장, 나아가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필요한 것은 정확한 언어다. 저자가 다른 것보다도 ‘시민성’과 ‘권리’를 정확한 개념으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것은 이 단어들이 합리적인 정치적 대화를 위한 기본 단위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익숙한 ‘권리를 주장하려면 먼저 의무를 다하라’와 같은 말들은 특히 약자의 권리 주장을 가로막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시민성’과 ‘권리’가 한국 사회에서 개념으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약자의 고통을 은폐하는 비체계적 정치 체제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대화의 표준이 될 수 있는 개념 언어다. 이것은 단지 몇 개의 단어를 교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고통의 소통, 대화와 논쟁을 위한 새로운 공통언어를 구성하는 문제다. 정치 체제를 새로이 발명하는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정확하게 저항할 것인가? ‘‘개념’ 없는 사회를 위한 강의’가 정확한 논쟁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이다.
안희제 작가·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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