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대사 “승리 확신? 물론…휴전 협상은 없다”
“2년은 견디기 어려운 긴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2년 동안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19일 서울 용산구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한겨레와 만난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는 우크라이나 시민과 군이 2년 동안의 전쟁으로 매우 지친 상황에서 승리를 확신하느냐는 물음에 주저 없이 “물론”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전쟁 초기 “푸틴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라고 한 데서 달라진 것은 시간뿐이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불법합병, 동부 돈바스 침공 뒤 이뤄진 휴전을 위한 민스크 협정 당시 협상팀에 참여했던 그는 러시아가 침공 의지를 꺾지 않는 현시점에서 “협상 가능성은 없다”라고 했다.
―지난 한 해는 전쟁 첫해와 어떻게 달랐나?
“2022년엔 러시아가 전쟁 초 점령했던 영토의 절반 가까이 탈환하는 성과를 이뤘지만, 지난해 전선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여전히 상당한 자원과 전쟁 피로감, 핵 협박을 동원해 승리를 기원하며 장기 소모전 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2023년 우크라이나군은 흑해함대의 3분의 1 가까이 침몰시켰고 글로벌 연합을 결성해 여전히 반격에 나서고 있다. 올해는 영공에서도 적군을 무찌를 수 있길 바란다. 전쟁 첫해 러시아가 우리의 주요 에너지 기반시설을 파괴하며 장기 정전 사태가 벌어졌지만, 지난해는 달랐다. 정교한 방공 미사일 시스템으로 지금은 러시아의 미사일, 드론 대부분을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유럽연합 가입 논의를 시작하기로 한 것은 괄목할 성과다.”
―한국 포함 국제사회의 관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여전히 일반 사람들조차도 많은 지지, 응원을 보낸다. 다만 한국 정부가 공식 국제무대에서 이런 부당한 침략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또한 한국을 포함한 협력국에 지속적인 지원을 요청한다. 필요한 무기만 준다면, 나머지 일은 우리 군이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이 만든 고도로 정교한 무기는 전장에서의 상황을 바꾸는데 매우 중요하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상황이 어려워졌다. 최근 협력국의 무기 및 기금 지원이 더뎌지는 상황이다. 1200km에 달하는 최전선을 방어하려면 상당한 양의 무기, 탄약이 필요하다. 특히 최신 항공기와 방공 무기, 포, 탄약, 드론, 장갑차, 전자전 무기 등이 가장 필요하다.”
―미국 등 서방 무기 지원이 지금처럼 더딜 경우 연말 전에 전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회의적 분석도 있다.
“푸틴은 3월에 있을 러시아 대선 전에 최소한 작은 성과라도 내기 위해 전장에 수천명을 계속 투입하는 ‘인해전술’로 우크라이나의 7∼8배에 달하는 막대한 병력을 잃고 있다. 1㎢ 크기 땅을 얻기 위해 평균 400명을 희생시킨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러시아의 공세 작전이 현재 진행 중이지만 대단한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다.”
―현지 시민들이 고물가 등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경제 위기가 전력에도 지장을 줄까.
“2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분명히 우리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러시아로 인해 입은 피해액만 4110억달러에 달한다. 우리의 지난해 핵심 목표 중 하나는 거시 경제 안정성 유지, 경제 회복이었다. 지난 1월 기준 우크라이나 경제는 투자 수요 증가, 물류 역량 확장 등에 힘입어 회복 추세에 있다. 수출량은 전쟁 전 규모를 회복했다. 총 수출액은 침공 전 수준에 다가서고 있다. 다만 협력국의 외부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 우리 내부 예산이 모두 러시아의 침략에 대응하는 데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동부 아우디우카 마을 점령에 성공하는 등 기세가 등등하다. 미국에서조차 유일한 현실적 선택지는 ‘협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시점에서 협상 가능성은 없다. 푸틴이 승리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모든 협상은 희망과 시간 낭비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2022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발표한 ‘평화 공식’(Peace Formula)은 아직 유효하다. 6개월 동안 끊임없이 공격한 결과 러시아군은 아우디이우카를 차지했고 이를 그들이 치른 대가는 막대하다. 우리 군은 탄약이 부족했고 인명 피해를 피하려고 2차 방어선으로 후퇴했다.”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민 영웅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경질하는 등 군 수뇌부 인사 개편을 해 시끄러웠다. 내부 분열이 있나?
“루머는 루머일 뿐이다.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역사에 남을 영웅이며 대통령도 이미 그에게 상을 내렸다. 새로 임명된 이들은 모두 프로다. 2014년 이래로 10년 동안 러시아에 맞서 싸웠고 대부분이 잘루즈니 총사령관 팀에 속해 있었다.”
―전쟁 초반 높았던 젤렌스키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다.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2년 동안 전쟁을 겪었다. 근데 전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이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정부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길 바라니까 정부나 대통령을 탓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정말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나?
“그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고 자신이 있다. 우리가 2년 동안 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충분한 자원만 있다면 우리 영토에서 점령군들을 몰아낼 수 있다.”
―지난해엔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시도했다. 올해는 전황을 어떻게 전망하나?
“우리 군은 현재 적극적으로 ‘능동 방어’를 하고 있다. 러시아가 공세 작전에 너무 많은 병력을 쏟아 넣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의 무기 지원 상황이 순탄치 않은데, 우리는 서방 무기에 상당히 의존한다. 미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영국 등한테서 이미 약속된 지원 패키지를 받는 등 여건이 마련된다면 다시 공세로 돌아설 수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16일) 프랑스, 독일, (지난 1월 12일) 영국과 전례 없었던 강력한 안보 합의서를 체결한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내년에 ‘전쟁 3년’을 계기로 또 인터뷰하게 될 것 같나.
“내년에는 (전쟁이 모두 끝난 뒤) 평화를 주제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싶다. 이 나라를 어떻게 재건할지, 얼마나 많은 기업이 재건에 참여할지, 양국이 어떤 새로운 양해각서를 체결할지 등을 주제로 말이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총선 선대위원장’ 윤 대통령…민생토론 가는 곳마다 지역공약
- 교통사고에 3시간 ‘응급실 뺑뺑이’…구급차 타고 무한대기까지
- 우크라 ‘빼앗긴 봄’ 2년…“농사짓고 셋째 아이 두고 싶다”
- [단독] 세한대, ‘중장년 유령학생’ 학위 장사…학과생 35명→971명
- 이수진 탈당, 박용진 ‘재심’ 기각…커지는 민주당 공천 파동
- “데이트 몇 번 했다고 성폭행해도 되냐”…의사들 ‘막말’ 도 넘었다
- ‘이대남’이 이상해진 이유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 ‘안산판 블랙리스트’ 팀장 개인 일탈이라니…“꼬리자르기” 비판
- 이재명 “경쟁력 있는 후보 고르는 중”…비명 “피 묻히고 조롱하나”
- “나는 경선, 아무개는 컷오프”…뒤숭숭한 국힘 ‘4권역’ 공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