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 ISSUE]'감독 내놓으라'는 대표팀 운영 규정은 '독소 조항', '시대 착오적'이라는 비판도

이성필 기자 2024. 2. 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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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팀 전력강화위원회, 거수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표는 정해성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 모두에게 붙어 있다. ⓒ대한축구협회
▲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팀 전력강화위원회, 거수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표는 정해성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 모두에게 붙어 있다. ⓒ대한축구협회
▲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팀 전력강화위원회, 거수기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표는 정해성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 모두에게 붙어 있다. ⓒ대한축구협회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새로 구성된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팀 전력강화위원회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거수기' 노릇은 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지만, 정해진 답을 찾는 조건을 스스로 만드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다.

정해성 신임 강화위원장은 2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위원회 1차 회의 후 언론 브리핑에서 "(국내외 지도자 모두) 열어 놓았다. (3월 태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전까지) 선수들을 파악할 시간 등을 고려하면 외국 감독도 (후보로) 열어 놓았지만, 국내 감독 쪽으로 비중을 둬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나눴다"라며 강화위 내 위원들의 기류를 전달했다.

2차 회의는 오는 24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언론에는 전면 비공개다. 정 위원장은 "2차 회의 때 조금 더 감독에 대한 부분을 논의하기로 했다. 2차 회의 때는 실질적인 위원님들의 생각을 모아서 (차기) 감독 후보들이 거론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윤곽을 잡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표팀 구성은 3월 21일 태국전 전까지 시간이 촉박한 것이 사실이다. 통상 소집 일주일 전(3월 11일) 명단을 발표한다. 이날까지가 선발하려는 선수의 구단에 통보하는(=소집 일주일 전) 최종 시한이다. 만약 신임 감독이 결정되면 취임 기자회견 등으로 자신의 청사진을 꺼내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늦어도 3월 7일 이전끼지는 이런 절차가 있어야 한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2024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는 오는 26일이고 개막은 3월 1일이다. 개막 라운드는 3월 3일까지다. 라운드를 치른 상황에서 K리그 팀을 지휘하는 감독을 빼 온다면 '대의를 위한 K리그 희생', '감독 빼가기' 등의 논란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축구협회다.

국내파 감독을 뽑을 수 있다고 앞세운 주장에는 국가대표 운영 규정 '제12조 (감독, 코치 등의 선임)'가 논리다. '①각급 대표팀의 감독, 코치 및 트레이너 등은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기준에 따라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또는 기술발전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 '②협회는 제1항의 선임된 자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당해 구단의 장에게 이를 통보하고,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강화위가 특정 후보를 K리그 구단 내에서 선정하면 당사자가 "도저히 못 하겠다"라고 하지 않는 이상 대표팀을 맡아야 한다. 긴급 이사회 등을 빨리 열어 의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 부족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 홍명보 울산 HD 감독은 강화위 기준으로 본다면 유력 감독 후보 중 한 명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 김기동 감독은 지난해 12월 14일 포항 스틸러스를 떠나 FC서울 새로운 감독에 부임했다.
▲ 김학범 감독은 2020 도쿄 올림픽 축구대표팀을 역임했고 최근 제주 유나이티드에 부임했다. ⓒ연합뉴스
▲ 최용수 전 강원FC 감독은 지난해 중도 사임 후 휴식 중이다. ⓒ한국프로축구연맹

무엇보다 이 규정은 '법리적 시각'에서 본다면 '독소 조항'에 가깝다는 법조계 의견이 상당수다. 신하가 무조건 받들어야 하는 임금의 어명도 아니고 구매자(=팬)에게 경기(=상품)를 판매하는 구단(=기업, 단체 등)이 경기의 구성원 중 하나인 감독을 대가 없이 내주는 것은 법리는 물론 경제적 관점에서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 한 법무법인의 변호인 A씨는 "(축구계 생리를 떠나) 규정 자체만 본다면 독소 조항 맞다고 본다. 구단이 감독을 선임할 때 계약금, 연봉 다 조정하고 코칭스태프도 다 맞춰주지 않았겠나. 시즌 중에(또는 시작 전에) 대표팀으로 데려가면 구단은 얼마나 손해를 보나. 금전적, 운영 면에서 큰 손해다. 감독이 저명하다면 선수 못지않게 간판으로 내세울 것이고 관중 동원력이 있다면 더 그럴 것이다. 선수단 운영적인 면에서도 겨우내 전술을 맞췄다가 급격하게 틀이 바뀌는 것 아닌가. 이런 것을 축구협회가 일괄 계산해 금전적으로 보상해 줄 것인가"라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법무법인의 변호인 B씨는 "사인 사이의(구단의 대표이사 또는 단장과 감독) 계약을 축구협회가 법적으로 무시하고 선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구단 소속의 장(대표이사 또는 단장)이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응하라는 것 자체가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감독이 아니라 장에게 무장해제를 하고 나와서 손 들고 '감독을 내놓아라'는 것 아닌가. 구단에서 금전적 손실에 대한 보전을 요구해도 이상하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소위 스포츠적인 인정이나 의리, 위계 관계나 관습적으로 한국 축구를 관장하는 최상위 기관에서 선택하는 정책에 하위 기관인 프로축구연맹이라는 '연합체'를 구성하는 '개별 구단'에게 찍어 누르는 무논리와 '대의', '대승적 차원'의 감독 선택이다.

A씨는 "상식적으로 축구협회가 프로 구단에서 감독을 데리고 온다면 구단과의 계약 당시 계약금을 다 물어줘야 한다. 또, 감독의 사임으로 인해 함께 관둬야 할 가능성이 있는 코칭스태프에 대한 손해도 물어야 한다. 여기에 새로 선임해야 하는 감독, 코치으패스의 계약금까지 구단을 대신해 물어줘야 합리적이라고 본다. 지휘할 경기 수의 평균 관중수까지 계산해 수익도 지급하라는 지적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규정은 비민주적이고 경제적 가치의 훼손이 크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다른 시각도 있었다. 번호인 C씨는 "해당 조항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기 어려우나 축구협회가 올려놓은 규정을 보면 1992년 12월 19일 전문을 개정한 뒤 2021년 5월 25일이 마지막 개정일로 나와 있다. '구단'이라 함은 해외가 아닌 K리그나 하부리그 구단일 것 아니냐. 이 조항을 시대에 맞게 삭제하거나 수정하려는 축구협회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감독의 선택은 아예 빠져 있고 구단의 장에게만 수락을 묻는다. 시대 착오적이고 경제 논리가 우선인 프로 단체에 관습법과 같은 규정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축구협회는 사단법인이고 정관에 의거 (대표팀) 운영 규정을 이사회에서 제정했다면 법적 효력이 있다. 이사진 중 개별 누군가가 (축구협회 이사회 등에서) 이 규정이 문제가 있다고 제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다"라며 축구계 수직적인 문화에 대패 비판적으로 해석했다. 즉 감독 빼가기 논란을 전체가 자초했다는 뜻이다.

실제 강화위 구성원 중에는 K리그 출신이거나 K리그 감독들이 있다. 시간이 부족하니 국내 감독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스스로 만든 셈이다. 3월 임시 체제, 6월까지 선임이라는 다른 방법은 그냥 개별 의견 중 하나로 뭉개지는 모양새다. 물론 몇 차례 더 논의의 장이 있고 변화 가능성이 희미하지만, 없지는 않다며 여지를 남긴 강화위다.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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