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우크라전쟁 패배는 美패권 몰락의 서막인가

이규화 2024. 2. 23.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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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색짙은 우크라전은 미국 등 서방의 대리전
우주무기 주도권, 38년 전과 현재 美露 역전
러시아 침공 전 돈바스지역은 이미 전쟁상태
미국이 밀리는 걸 보며 세계는 美 패권 의심
지도자의 일탈과 무능이 슈퍼파워 몰락 재촉

지난 24일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2년이 됐다. 승패는 기울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주 돈바스지역의 요충지인 아우디이우카에서도 퇴각했다. 우크라를 앞세워 러시아와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반면 러시아는 더 강해졌다. 공교롭게도 엊그제 미국의 위신을 추락시키는 일이 또 일어났다.

미국 정부가 러시아의 우주 핵무기 실험과 배치를 만류하기 위해 비공개 접촉을 가졌다는 뉴스가 떴다. 말이 비공개 접촉이지 러시아의 우주 무기에 뜨악한 미국이 러시아에 '제발 우주무기 경쟁은 하지 말자'고 사정하는 것이다. 소련 해체 후 30년간 유일 초강대국 지위를 누렸던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건가. 그저 '소련의 잔해물' 정도로 여겼던 '3류 국가' 러시아에게 전장에서 밀리고 첨단무기 경쟁에서도 한수 물려달라고 할 판이다.

세계 패권에도 나비효과가 작동한다. 잘못 꿰인 단추 하나로 인해 국력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국가 지도자라면 명심해야 할 철칙이다. 미국의 우주무기 제한 제안은 1986년 냉전시절 미국과 소련이 미국의 스타워즈 계획을 놓고 벌인 협상의 판박이다. 다만 공수(攻守)가 180도 바뀐 것만 빼고는.

◇힘 받쳐준 자신감으로 소련을 해체로 몰다

냉전의 막바지 시기인 1980년대 중반 미국 레이건 정부는 소련이 생명이 다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것을 간파했다.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슐츠 국무장관은 소련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개혁·개방으로 나오도록 이끌었다. 특히 소련을 핵무기 감축 협상장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한 가지 '트릭'을 쓴다.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고르바초프와 마주앉은 레이건은 테이블에 '스타워즈'라는 미국의 '우주무기'를 올려놓는다. 미국은 앞으로 우주에서 전쟁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며 소련에서 날아오는 모든 미사일을 실시간으로 요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식적으로는 SDI(Strategic Defense Initiative)로 알려진 스타워즈 계획은 차원을 달리하는 미사일 방어체계였다. 이 계획이 실행된다면 소련의 핵은 무용지물이 될 판이었다. 레이건은 스타워즈가 완성단계에 있다고 과장했다. 고르바초프는 의심했지만, 소련이 대응할 방어체계를 개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련의 군사기술은 뛰어났으나 경제력이 받쳐주지 못했다. 이후 중거리핵미사일 제한 협정(INF) 등 핵감축협상이 이어지고 고르바초프는 경제 분야로 개혁의 눈길을 돌렸다.

그러던 미국이 지금은 러시아에 우주 무기 개발을 제한하자고 간청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레이건이 이를 알면 어떤 말을 할까 궁금하다. SDI는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상상 속의 방어체계다. 레이건이 상상 속의 무기를 실제인양 고르바초프를 속였지만, 실제로 당시 개발에 착수했다면 오늘날 러시아에 굴욕적인 제안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아버지 부시, 클린턴, 아들 부시,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20년을 미국은 일극 강대국으로서 내실을 다지기보다 걸프전과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 발칸전쟁 등 실익 없는 전쟁을 벌이는데 국력을 낭비했다. 레이건과 슐츠의 대(對)소련 전략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확산이라는 대의에 부합했다. 자유주의 확산이라는 미국의 외교정책 노선도 건전하게 기능하고 있을 때였다. 명분과 힘, 자신감이 갖춰졌었다.

◇가치도 실익도 의심스러운 우크라이나전쟁

하지만 우크라이나전쟁이 과연 자유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전통적 정책 노선을 따르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물론 어떤 말로도 타국을 침략하는 행위는 비난받아야 한다. 국제연합(UN)은 모든 침략전쟁을 부인한다. 러시아는 침략국이다. 제재는 당연하다.

그렇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와 접경지대인 돈바스지역은 러시아의 적극적 지원을 받는 친러 반군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전쟁 중이었다. 군대만 빼고 러시아는 친러 반군에 모든 것을 지원했다. 그럴 만한 명분이 있었다.

이 지역은 구소련 시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각자 자치공화국으로서 한 국가 안에서 접경이 모호하게 형성된 곳이었다. 러시아인이 많이 살고 있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독립하면서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 중앙정부에 자치권을 요구했다. 우크라 정부는 자치권을 부여하는 듯했으나 러시아어를 쓰지 못하게 하는 등 핍박을 했다. 급기야 우크라 정부군과 러시아계 민병대간 내전이 발발했다.

2014년 민스크협정에서 자치권을 확인하며 내전이 끝나는 듯했으나 2014년 키에프 친러 정권이 무너지는 마이단 혁명으로 다시 러시아계를 향한 차별과 압박이 가해졌다. 러시아가 침공하면서 대 우크라이나 선전포고가 아닌 '특별군사작전'이라고 하는 이유도 자기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러시아 침공의 단서가 된 이 같은 배경을 모르고 보면 우크라이나는 순전히 피해국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더구나 우크라이나는 동부 돈바스 지역과 서부 갈리치아 지역이 민족적 혈통도 다르다. 우크라이나 서부와 동부는 역사적으로도 섞이지 않고 갈등을 겼었던 시기가 길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때 갈리치아인들은 독일 나치에 가담해 동부 러시아인들을 학살한 이력이 있다. 이번 러시아의 침공 명분 중 하나도 나치의 후예들인 '신나치'를 척결한다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전의 장기화는 또한 러시아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미국과 나토(NATO) 등 서방의 의도도 작용하고 있다. 미국 네오콘(극단적 미국가치 우선주의)과 서유럽에는 러시아인들을 깔보는 동시에 러시아의 위협을 부풀려 보는, 뿌리 깊은 루쏘포비아(russophobia)가 자리잡고 있다.

◇슈퍼파워 미국의 실체

미국은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에 1500억 달러 이상의 현금과 물자를 투입하고도 러시아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나토의 지원까지 합치면 우크라이나에는 2000억 달러 이상의 서방 전쟁 물자가 쏟아부어졌다. 우크라 젤렌스키 정권의 무능과 부패로 제대로 된 전투 한 번 치르지 못했다. 서방은 우크라를 적극 지원하면 러시아에 승리할 수 있고 러시아의 국력이 빠질 것으로 봤지만,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러시아도 소모적 전쟁으로 인해 7% 고물가에 16% 고금리의 고통을 받고 있다. 장기화될 경우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국제은행간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퇴출당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받고서도 견디고 있다. 오히려 러시아 경제는 2023년 3.0% 성장한 데 이어 올해 2.6% 성장을 하며 구매력 평가(PPP) 기준 독일을 제치고 유럽 1위로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와 가스 같은 막대한 천연자원과 식량자급이라는 든든한 버팀목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접하면서 글로벌 사우스(제3세계)는 미국의 패권이 저물고 있다는 점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 군사력의 투사가 예전 같지 않으며 러시아의 전력에 밀리는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좋은 본보기가 미국의 중동 맹방이자 미국의 보호국이랄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말을 듣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페트로 달러의 불문율을 깨고 중국 원유수출 대금의 일부는 미국 달러가 아닌 중국 위안화로 결제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사우디는 자신과 미국의 앙숙인 이란과 극적 화해를 했다. 브라질 러시아 중국 남아공화국의 협력체인 브릭스(BRICs)에 가입 신청을 하며 미국의 눈 밖에 날 노선을 걸으려 한다. 왕실의 안전을 미국에 의탁한 상황에서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은 우크라에 무기를 공급하는 데에 큰 차질을 빚으면서 미국 하드파워의 진원인 군산복합체의 동원력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포탄이 없어서 한국에 포탄을 꿔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정도로 미국의 재래식 무기 생산체계는 완전하지 못하다. 군사적 동원력을 다시 짜야 할 형편이다.

미국은 아직까지는 자원, 인구, 통치 거버넌스, 과학기술, 우주개발, 시장, 문화적 파급력에서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유일 초강대국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냉전 이후 실익 없는 잇따른 중동전쟁과 비과학적인 대러시아 위협론에 매몰돼왔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으로 중동 발칸반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벌이는 과도하고 불필요한 폭격과 요인 제거는 자국민들에게조차 동의를 얻기 힘들다. 지도층의 잘못된 세계 인식과 오도된 전략 등으로 인해 막강 패권이 쇠락하고 있다.

미국은 민간인 희생이 증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의 휴전을 결의하는 유엔 안보리 투표에서 세 번이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선언한 만인의 자유와 인권,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내팽개치는 행위다. 지금의 미국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심야에 전화를 받고 '저 공산주의 ××들을 가만 놔두지 않겠다'며 즉시 미군을 파병했던 그 '미국'에서 크게 변질됐다. 세계적 국제정치학 석학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미국은 잘못된 세계 인식과 외교, 군사전략으로 국제사회에서 '자유의 수호자'라는 명예를 잃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국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미국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과 일탈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것을 확인케 해준 계기가 됐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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