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이런 때는 어떡해요?…위기인데 ‘웃픈’ 상황[그림책]
위기 탈출 도감
스즈키 노리타케 글·그림
권남희 옮김
이아소 | 48쪽 | 1만5000원
컵에 우유를 따르다 쏟았다. 어른이라면 쿨하게 수건으로 닦고 말겠지만, 아이에겐 큰일이다. 일단 고개를 돌려 엄마나 아빠가 보고 있을지 살필지 모른다. 어린 시절 ‘아까운 우유를 쏟았으니 혼나면 어쩌지’라는 마음에 바닥에 흘린 우유를 핥아 먹지는 않았는가. 그러다 그나마 조금 남았던 컵의 우유마저 머리로 쓰러뜨려 쏟지는 않았는가. 그때의 당황스러움, 분명 그건 위기였다.
아이가 세상을 살면서 한 번쯤 겪을 만한 생활 속 위기를 책은 1에서 100까지의 위기 수준과 5단계 발생 가능성으로 나눠 소개한다. 유쾌하고 기발한 동시에 공감 가는 위기들이 여럿 그려진다.
우선 이런 것. 새 공책을 사고 이름을 정성 들여 썼다. 아잇! 쓰다 보니 몇쪽을 건너뛰어 쓰고 말았다. 빈 페이지로 남은 공백들이 아이를 난감하게 만든다. 위기 수준은 12, 발생 가능성은 2로 낮지만, 아끼던 공책이라면 좌절감은 더 크다. 얼토당토않을 수 있지만 책은 이렇게 위로한다. “그림이라도 그려서 빈 페이지를 채워봐요.” “새 공책을 처음 쓸 때 실수로 뒤집어서 맨 뒷장부터 쓰는 일도 있어요.”
당황스러움에 놀라는 그림책 속 주인공의 표정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공감과 위로는 이 책의 특징이다. 공들여 깎은 연필심이 부러졌을 땐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아요”라고 토닥여주고, 머리를 생각보다 짧게 잘라 우울해졌을 땐 과학적으로도 접근한다. “머리카락은 하루에 0.4밀리씩 자란답니다. 일주일이면 3밀리쯤…1개월에 13밀리미터, 1년이면 약 15센티미터, 평생 자르지 않으면 약 12미터. 우앗!”
언젠가 어른이 되면 이런 사소한 위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진짜 어려움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도 조금만 마음을 가다듬어보자. 잘 생각해보면 분명 해결책이 있을 거다. 그래서 책은 말한다. 비 오는 날 우산을 같이 씌워주는 친구처럼 “여러분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새로운 만남도 있을” 거라고, “그래요. 위기 따위 두렵지 않아요!”라고.
일본 그림책 월간지 ‘MOE’가 선정한 2022년 그림책 대상, 기노쿠니야서점 베스트셀러 ‘키노베스! 키즈 2023’ 1위 등 여러 곳에서 수상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의 열풍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저자는 ‘어떤 ○○○이 좋아’ 시리즈로도 유명한데, 신칸센 기관사를 거쳐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 그림책 작가가 됐다고 한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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