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년' 김범수 "5년 전 무대공포증..10년만 정규앨범 '여행'으로 극복했죠"[★FULL인터뷰]
"20주년 콘서트 첫 공연 때였는데 오케스트라도 하면서 힘을 많이 들였어요. 저도 공연 전 살도 빼야 하고 목상태에 대한 강박이 심한데 공연 당일날 급성 후두염이 생겼어요. 공연 당일날 공연을 취소해야 하는 일이 생긴 거죠. 목소리가 아예 안 나왔고 리허설 때는 대화 할 수 있는 목소리조차 안 나와서 병원에 가니 급성 후두염이라 하더라고요. 의사도 원인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는데 스트레스가 있었거나 환경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 거라고 했어요. 공연하면서 그런 적은 처음이었는데 깜깜해지더라고요."
"당시 수많은 차들이 들어가고 있었고 스태프들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쥐구멍이 있으면 사라지고 싶었어요. 이 상태로 노래를 하고 있는 그대로 설명드리고 환불드리고 공연을 접자고 생각하고서 무대에 올랐어요. 가시는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하고 저녁에 사과문도 썼어요. 그러면서도 저 자신이 덤덤하게 넘겼죠. 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 스태프분들에게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고 감정 없이 하루를 보내려 했어요. 근데 그게 화근이 됐던 거예요. 울든지 도망을 쳤든지 했어야 했어요. 그 이후에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무대 공포증이 생겨서 무대에 올라가면 다리가 떨리고 심장 소리가 다 들리고 노래를 부르면 피치가 왔다 갔다 했어요. 노래에 무릎을 꿇는다는 느낌이었죠. 그런 상황이 2년 정도 되면서 코로나 시기가 왔고 그 시기에 활동량이 적어지면서 오히려 버틸 수 있었어요. 코로나 이후에도 사실 한참을 헤맸고 이 앨범을 하기 직전까지도 앨범을 만들 수 있을까 불안했어요. 그런데 이 앨범을 만들면서 희한하게 회복이 됐어요."
'김나박이'(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란 별명으로 더 이상의 극찬이 필요없는 대한민국 최고 보컬리스트 김범수에게도 활동 25년 중 슬럼프는 있었다. 대부분의 대중도, 본인도 큰 논란이나 사건사고 없이 평탄하게 가수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았지만, 내면엔 그 '최고'란 타이틀이 마음 속 깊이 묵직한 부담감으로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5년 전 급성 후두염과 함께 찾아온 무대 공포증, 그로 인해 대규모 콘서트를 취소해야 했던 악몽. 그러던 중 김범수가 발표하는 이번 정규 9집 앨범 '여행'은 팬들에게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가 된 큰 선물이었다.
김범수는 최근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 카페에서 스타뉴스와 만나 데뷔 25주년 소감과 22일 오후 6시 공개되는 정규 9집 앨범 '여행'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김범수는 지난 1999년 1집 앨범 'A Promise'와 타이틀곡 '약속'으로 데뷔해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이했다. 그는 데뷔 초 신비주의의 '얼굴 없는 가수' 콘셉트였지만, 압도적인 가창력과 함께 2000년 '하루', 2002년 '보고 싶다'를 히트시키고 '니가 날 떠나', '가슴에 지는 태양', '슬픔활용법', '지나간다', '끝사랑', '집밥' 등을 발표하며 대한민국 명실상부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자리잡았다.
김범수의 정규 9집 '여행'은 지난 2014년 발매된 정규 8집 'HIM'(힘) 이후 김범수가 10년 만에 선보이는 정규앨범으로,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은 김범수의 음악적 깊이와 스펙트럼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여행'을 비롯해 '너를 두고', '그대의 세계', '걸어갈게', '각인', '나이', '머그잔', '꿈일까', '너는 궁금하지 않을 것 같지만', '혼잣말', 'Journey'까지 총 11곡이 수록됐다. 타이틀곡 '여행'은 김범수가 아티스트 김범수로 걸어온 길을 '여행'이라는 키워드에 함축적으로 녹여낸 곡으로, 싱어송라이터 최유리가 작사와 작곡, 편곡에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김범수의 이번 앨범엔 싱어송라이터 최유리와 선우정아, 아티스트 이상순, 임헌일, 작곡가 피노미노츠(Phenomenotes)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으로 힘을 보탰다. 또한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가 '머그잔'의 작곡과 피아노 연주에 참여했다. 타이틀곡 '여행' 뮤직비디오엔 배우 유연석이 출연했으며, 선공개곡 '그대의 세계' 뮤직비디오엔 배우 현빈이 출연해 특급 라인업을 완성했다.
김범수는 오는 4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시작으로 부산, 대전, 전주, 광주, 대구, 수원, 창원 등 총 8개 도시와 해외에서 콘서트를 개최하고 25주년의 의미를 다질 예정이다.
-'여행'은 2014년 발매된 김범수의 정규 8집 'HIM (힘)'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정규앨범이다. 컴백 소감은?
▶오랜만에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많이 설렘이 있었다. 시장이 많이 급변한 상황에서 저도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면서 큰 용기를 내 앨범을 내려고 했다. 목표나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많은 분들이 제가 작년 한 해에 노력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단 생각이었다. 많은 분들이 들을 수 있는 앨범을 내려고 했다.
-10년 동안 앨범을 안 내고 지금 시점에 앨범을 새로 낸 이유는?
▶사실 다른 가수들도 저와 비슷한 상황들이 많았을 거다. 저와 비슷하게 데뷔한 분들이 정규 앨범에 대한 다짐을 가슴 속에 하나씩 품고 있다. 사실 예전만큼 정규앨범에 대한 효용과 작업 과정에 대한 노력과 결과물을 얼마나 많이들 알아주실까 걱정했고 고민했다. 저 역시 '정규 앨범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가슴에 품고 지냈다. 10곡이 넘는 정규앨범을 발매하고서 타이틀곡 1곡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이 사장될 가능성이 크니까 걱정이 많이 돼서 앨범 발매가 미뤄지기도 했다.
그 사이 저는 음원 프로젝트도 했고 뭔가를 계속 하고 있었는데, 예전만큼 뭔가를 알릴 수 있는 창구가 잘 없어서 작업 과정이 지루하기도 하고 외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작년 초에 정규 앨범을 이제 진짜 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25주년을 맞이하면서 아무것도 없으면 내가 너무 부끄럽겠더라. 1년 동안 준비했는데 굉장히 심혈을 많이 기울였고 10년 전 작업보다 무게도 많이 실렸고 한 곡당 진심이 많이 담겼다. 대중과 팬분들에게도 오랜만에 선물이 되겠지만 이번 앨범은 이상하게 제 자신에게도 선물인 것 같다.
-정규 앨범 형태로 내는 것이 쉽진 않았을 텐데.
▶제 고집이었는데, 조각으로 음악을 내는 것은 내 작업에 대한 애정을 담기 어려운 것 같더라. 온라인으로 나오는 것도 작품이지만 저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제 손에 작품이 들리고 리스너에게도 제공할 수 있어야 작품이란 생각이 있다. 오랜 시간 그게 없이 소리를 만들어서 전달하는 형식을 계속 하다 보니 회의감 같은 것도 들었다. 물론 미니나 EP 형식도 생각했고, 베스트 앨범으로 신곡을 조금만 내는 것도 생각했는데 제 성에 차지 않더라. 정규앨범은 가수가 가진 생각이 다 녹여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완성체를 만들고 싶었다.
-'여행'을 타이틀 곡으로 선정한 이유는?
▶저는 싱어송라이터가 주가 된 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스타일의 곡을 만들까 생각하다가 어려운 작업을 했다. 정말 많은 경우의 수를 고민했는데, 제 예전 감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윤일상 프로듀서 등 저의 신인 때 프로듀서분을 찾아갈까, 아예 새로운 프로듀서분을 찾아갈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요즘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은 어떤 건가 생각했더니 상당히 미니멀한 음악이더라. 악기 구성도 단촐하고 가사 기반의 곡을 찾아듣고 있더라.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가 이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제가 듣는 노래 위주로 정리를 하다 보니 최유리, 선우정아 씨 등을 리스트업했다. 제가 연락을 드렸을 때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감사하게도 너무 흔쾌히 작업에 임해주셨다. 그래서 좋은 앨범이 나오게 된 것 같다.
-배우 현빈이 선공개곡 '그대의 세계' 뮤직비디오에, 유연석이 '여행' 뮤직비디오에 각각 출연했다. 이들과의 작업은 어떻게 이뤄진 건지.
▶현빈 씨와 유연석 씨는 제가 아주 두터운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 현빈 씨는 제가 축가를 불렀고 지금도 아기 잘 있냐 정도 얘기하며 연락한다. 이전엔 현빈 씨의 드라마 OST를 제가 불렀다. 배우도 자신의 테마곡을 부른 가수를 못 잊는다고 하더라. 비슷한 감정의 친밀감이 있었는데 축가를 통해서 알게 됐다. '그대의 세계' 곡 작업을 할 때 현빈 씨가 그냥 떠올랐다. 현빈 씨가 걸어들어오기만 해도 멋있겠다 생각했고 여쭤보기라도 하자고 했는데 너무 흔쾌히 출연해 주셨다. 유연석 씨도 친분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피노미노츠 작곡가가 유연석 씨와 친분이 있었다. 유연석 씨가 제 공연을 보러 온 게 신기했고 이번에 피노미노츠와 작업하면서 유연석 씨와 이미지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태주 시인의 '너를 두고'를 곡으로 만들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제주살이를 하면서도 그런 정서가 잘 어울렸다. 최유리님이나 나태주님이나 선우정아님의 공통점이 요즘의 직선적인 표현이 아니라 서정적이고 시적인 표현을 쓴다는 것인데, 이 시대에 필요한 정서인 것 같았다. 현대사회는 가진 게 많아도 조금만 공백이 생겨도 우울해하지 않냐. 저도 그걸 느끼고 있던 차였다. 내가 이렇게 감사할 게 많은데 왜 슬퍼해 하나 제어가 안 되더라. 나태주 시인의 시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들꽃 하나만 피어있는 것도 감사하지 않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태주 시인의 '너를 두고'를 곡으로 만들었다.
-이번에 창법도 다소 바뀐 듯하다.
▶사실 제 목소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창법이 바뀌었다거나 색깔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제 목소리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번엔 서정성을 전달하려다 보니 제가 기존에 주로 많이 활용했던 테크닉적인 부분이나 고음역대의 음정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불필요한 부분을 뺐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하지만 저는 보컬리스트다. 휘트니 휴스턴의 다큐를 최근에 봤는데, 곡을 받아서 노래한다는 점에서 저와 공통점을 느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언제든지 보컬리스트는 변화무쌍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번 앨범에 담겼다.
-보컬리스트로서 고민을 한 적이 있다면?
▶지금도 곡을 쓰는 부분에서 노력을 안 하는 건 아닌데, 저는 제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고 보진 않았다. 음악을 만드는 분들의 영역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곡을 써보니 그만큼 잘 쓰진 못하고 표현은 잘할 수 있겠더라. 8집 앨범을 내고서 결심했다. 사실 곡을 쓰면 저작권도 들어오고 좋지만 그런 부분을 내려놓으려 했다. 억지로 곡을 쓰진 말자고 생각했고 무대 위에서 멋있는 곡을 훌륭한 연주자와 함께 협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서 보컬리스트로서 노력했다. 이번에 '너를 두고'는 제가 멜로디를 썼고 나중에도 가끔 쓸 수 있지만 상업적인 느낌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
-데뷔 25주년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2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게 안 믿어지고 많은 선배님들이 25주년을 맞이했을 때 제가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과연 그때까지 내가 활동할 수 있을까도 생각했다. 그걸 너무 덤덤하게 생각하는 선배들을 봤을 때 '너무 대단한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지' 싶었는데 내가 그렇게 되더라. 이번 정규 앨범 투어도 '25주년'이란 말을 뺐다. 괜히 부끄럽더라. 나는 하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 너무 무게를 두는 것 같더라. 저에게는 가야 할 길도 온 만큼 남았다고 생각해서 큰 간이역에 온 것 같다. 그래서 긴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최유리 씨에게 곡을 의뢰할 때도 저에 대한 생각이나 여정 같은 걸 굉장히 고민 많이 하고 곡을 써주셨다. '여행'이란 곡이 나왔을 때 단어 자체에서 타이틀이 될 수 있는 단어이겠구나 싶었다.
-예전에 '나는 보컬을 타고났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보컬리스트로서의 자부심은 아직도 있는 건지.
▶보컬이란 영역 자체가 사실 타고난 게 중요한 것 같다. 보컬에선 가수가 가진 색깔과 강약도 중요한데, 기술적인 면에서 금메달을 따는 운동선수가 피지컬적으로도 타고나듯이 노래도 비슷한 것 같다. 피지컬과 재능이 기반이 됐을 때 나머지 것들이 덧붙여지면 좋은 가수가 되는 것 같다. 저는 좋은 가수와 좋은 보컬은 또 다르다고 생각한다. 노래로서 제가 가진 기량은 타고났지만 그 외의 중요한 영역이 너무 많다고도 생각한다.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김나박이'(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가 거론되는데, 부담감이 있진 않나. 보컬리스트로서 자신만의 소신이 있다면?
▶이런 얘기를 테이블에서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다들 비슷할 텐데 너무 감사하면서도 무게를 느낀다. 어느 순간 이 명칭이 느껴지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는 고유명사가 되다 보니 거기에 이름을 올린 게 감사하지만 오랫동안 활동을 하다 보니 그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생겼다. 어느 순산 이것조차 뛰어넘어야 하는 허들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김나박이' 부담감을 가지면 잘할 수 없겠다 생각했다. 이번 앨범엔 그런 부분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으려 했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노래를 좋아하고 어떤 좋은 노래를 할 것인가 생각하고 앨범을 만들었다.
-코로나 때는 '김나박이'를 패러디해 '임나박이' 시리즈를 내기도 했는데.
▶'김나박이'란 상징적인 단어가 계속 저를 따라다니고는 있었지만 그 커버를 통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제가 스스로 그걸 끄집어낸 건데, 그렇게 파장을 일으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위트가 있는 이벤트로 했고 임재범 선배님의 이름을 내 이름 대신 넣어서 하면 웃음코드가 있겠다 생각했는데 그걸 진지하게 봐주시더라. 그걸 내가 꺼내고 내 스스로 무게에 짓눌렸다.(웃음) 다시 이걸 내려놓는 작업이 있었다.
-이번 타이틀 곡 '여행'에는 김범수의 어떤 고민이 담겼는지.
▶최유리 씨 가사는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저는 '여행'이란 노래를 받았을 때 가벼운 제목이 아니라 25년이란 시간 동안 활동을 하면서 제가 겪은 실패담이 많이 떠올랐다. 외로웠던 시간들, 힘들었던 시간들, 좋은 결과가 안 나왔을 때가 더 많이 떠올랐다. 그래서 저에겐 이게 짠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여행을 떠나봐야지'라고 다짐하는 게 저에게 큰 힘이 되더라. 황야 속에 핀 들꽃처럼 가수로서 힘든 시간도 있었도 빛난 시간도 있었지만 짐을 챙겨서 떠나봐야지 싶었다.
-김범수의 25주년은 어땠던 것 같나.
▶롱런하고 큰 이슈 없이 무탈하게 잘해 온 것 같다. 내면적으로 엄청 많은 갈등과 실수와 좌절이 있었는데 인생이란 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저 가수가 성공한 것 같아 보여도 난관을 뚫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뗏목은 아니겠고 바다에 뜬 크루즈 같다.(웃음) 물이 차가웠다가 뜨거워지기도 하고 그 안에서 일렁임을 가진 게 제 가수인생이지 않았나 싶다.
-언제 무대를 하며 행복하나.
▶저는 얼굴보다 목소리를 먼저 알린 가수이기 때문에 그 칭찬이 너무 감사하지만 익숙하기도 했다. 제가 MBC '나는 가수가'에 출연했을 때 무대를 다른 가수처럼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희열이 가장 컸다.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이 정도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앞으로도 어떻게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김나박이'(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란 부담감을 내려놓은 게 제일 크다. 예전엔 그 단어만 들어도 무서운 단어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는 제 스스로 짐을 내려놓고 '이건 내 거가 아냐. 대중이 붙여준 별명일 뿐이지'라고 생각했다. 코로나 이후 재작년에 공연을 시작했는데 확실히 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덜해지는 것 같다. 재작년엔 사실 불안했다. 관객들에게 비춰졌을 지도 모르겠지만 공연 내내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올해 좀 더 편안하게 할 수 있겠다. 제게 씌워주신 왕관을 내려놓고 가기만 하면 편안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럼 '김나박이' 외에 어떤 수식어가 붙는 가수가 되고 싶나.
▶제 자신을 정의하긴 힘들 것 같고 바람은 있다. 저의 다른 모습을 통해 새롭게 불러주시면 좋겠다. 좀 더 편안한 모습으로 변한 걸 받아들여주시면 좋겠다. 이전엔 피지컬 위주의 가수처럼 스포츠처럼 어느 음역대까지 도달하고 테크니션을 수려하게 꺾어서 마무리할까 기계체조 하는 사람처럼 노래했다면, 이젠 노래가 담고 있는 가사를 내가 어떻게 전달하고 어떻게 청자가 듣고 전달 받을까 고민하는 가수로서의 성장을 보여주고 싶다.
-음악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요즘엔 다양한 걸 보여줘야 하는 시대이지 않나. 사업 같은 것 안 하고 오랫동안 한길을 해온 사람을 롤모델로 삼아왔는데, 이젠 시대가 바뀌어서 부캐릭터도 가지고 다양한 걸 섭렵해야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더라. 저도 그래서 유튜브에 편승해 봤는데 저에겐 잘 안 맞는 것 같더라.(웃음) 결국 노래하는 게 너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고 사업은 안 맞았다. 바보 같겠지만 꾸준히 노래하는 사람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후배 보컬리스트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요즘 후배들이 너무 잘하고 있고 이제 스스로가 자기 얘기를 하는 시대가 됐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 이상의 보컬리스트가 많다. 스스로 곡을 만들 수 있고 엔터테이너적인 요소를 가진 분도 많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많이 놀랐는데, 내가 이제 느끼는 것을 '인생 2회차'인가 싶을 정도로 이미 느끼고 음악하는 분들이 많았다. 오히려 제가 배워야 할 게 많다. 한 가지 우려되는 부분은 발라드 시장 자체가 자극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이별하고 찾아 듣는 노래여야 하는데 어느 순간 기술적인 부분이나 고음역대 사운드가 강조되는 걸 보면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노래가 전할 메시지가 사라질까봐 걱정이 되더라.
히트곡은 많지만 명곡이 나오긴 힘든 시대이지 않나 싶다. 한편으론 피지컬로 노래하는 가창자들이 목을 좀 아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제 경험인데, 막상 해보니 영원히 나오는 지하수가 아니더라. 콸콸콸콸 압이 넘쳐서 쏟아지던 때도 있었지만 하고 싶다고 다 뱉으면 나중에 물이 고갈되거나 압이 약해지면 지금의 이 피지컬이 했던 곡을 부르기 힘들 것이다. 너무 경쟁처럼 안 되고 안배하면서 하는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제 음악을 다시 다 꺼내서 듣는 편은 아닌데, 이번 앨범은 저도 가끔 감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앨범이 저에게 선물 같은 것처럼 많은 분들에게도 특별한 선물이 되면 좋겠다. 제가 싱어송라이터분들의 노래를 듣고 위로 받았듯이, 이 시대의 힘든 많은 분들에게도 제 앨범이 들꽃처럼 안겼으면 좋겠다.
한해선 기자 hhs42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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