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도서할인, 동네서점 공멸의 길

한겨레 2024. 2. 2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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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은 지난 1월22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생활 규제 개혁'을 개최하고, 도서정가제에서 웹툰 및 웹소설을 적용 제외하며 지역 서점만 추가 할인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밝혔다.

문체부는 "국민의 도서 구입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지역 서점 할인율을 확대하겠다"는 동네서점 죽이기 정책을 철회하고,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명시한 지역 서점 활성화 지원 정책을 제대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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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조정실·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브리핑을 열어 단통법 폐지, 도서정가제 개선, 대형마트 영업 규제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생활규제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연합뉴스

국무조정실은 지난 1월22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생활 규제 개혁’을 개최하고, 도서정가제에서 웹툰 및 웹소설을 적용 제외하며 지역 서점만 추가 할인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밝혔다. 곧이어 2월2일에는 김승수 의원(국민의힘) 등이 웹툰‧웹소설의 도서정가제 제외를 뼈대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행히 서점 할인율 관련 조항은 없었다. 며칠 뒤인 2월6일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 추진계획 발표에서도 웹툰‧웹소설의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가 거듭 언급되었다.

도서정가제 규정이 바뀌려면 국회에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이 필요한데, 웹툰‧웹소설에 대한 도서정가제 적용 제외가 속도감 있게 추진되는 양상이다. 반면 동네서점들이 현행법 규정(최대 15% 이내 직간접 할인)보다 더 할인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할인율 유연화’ 정책안에 대해서는 후속 논의가 답보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독자의 도서 구입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지역서점의 할인을 확대하고, 이를 통한 고객 증가로 지역서점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현재 법정 할인 한도를 모두 사용하는 곳은 대형 인터넷서점밖에 없으며, 경영난으로 할인 여력이 없는 동네서점들에 15% 이상의 직간접 할인을 허용한다 한들 그렇게 할 곳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죽기 살기로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는 서점이 생긴다면 고객 쏠림과 가격 경쟁으로 지역서점은 공멸의 길밖에 없다. 출판유통 약자들 사이의 할인 경쟁을 유도하게 될 이번 정책안은 지역 서점이 어렵더라도 제 살 깎아서 할인으로 고객을 늘리면서 사회 공익사업을 하라는 주문과 같다. 가난한 사람들에 한해 부자보다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겠다는 식의 언어도단이다.

구체적 세부 방안에 대한 검토조차 없이 쫓기듯 이루어진 졸속 정책 발표도 문제다. 이번 발표로 인해 전국 동네서점들은 극심한 혼란과 불안을 겪고 있다. 문체부 주도로 2022년부터 1년간 도서정가제 이해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한 민관협의체 운영 결과 ‘현행 유지’ 결론을 내렸고, 2023년 7월에 헌법재판소가 ‘현행 도서정가제 합헌’ 결정까지 내린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온 황당한 정책안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문체부는 “국민의 도서 구입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지역 서점 할인율을 확대하겠다”는 동네서점 죽이기 정책을 철회하고,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명시한 지역 서점 활성화 지원 정책을 제대로 시행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도서 구입비 부담을 줄이려면 그에 상응하는 정책부터 구상해야 한다. 예를 들면, 문체부가 올해 3월부터 모든 19살 청년들에게 1인당 15만원의 공연‧전시 관람비를 지원하는 ‘19세 문화예술 패스’ 사용처에 서점을 추가하거나 ‘19세 독서 패스’를 신설해야 한다. ‘문화 패스’의 선례인 프랑스의 경우 2021년에 18살 성인에게 300유로(약 40만 원)의 ‘컬처 패스’를 앱으로 지급했는데,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도서 구입에 사용되었다. 청년들에게 지급하는 ‘문화예술 패스’를 다른 분야는 제외하고 오로지 공연‧전시에만 쓰라고 하는 것은 선택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자 특혜 논란만 키울 수 있다.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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