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미국의 ‘눈송이’ 세대론, 꼰대들의 ‘입틀막’ 전략

양선아 기자 2024. 2. 2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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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한국이나 '꼰대'들은 비슷한 행동과 전략을 취한다.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비디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해나 주얼이 미국 사회의 꼰대가 젊은 청년들을 싸잡아 부르는 멸칭 '눈송이'에 관한 담론을 해부한 책이다.

저자는 대안 우파들이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정당한 정치적 주장을 눈송이라는 멸칭을 통해 나약하고 징징거리는 개인의 불만 표출 정도로 축소했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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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20일, 영국 런던 거리를 메운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가 “나는 유럽연합을 사랑한다” “나는 16살. 당신의 투표가 내 미래” 등 여러 주장이 담긴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런던/EPA 연합뉴스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
왜 예민하고 화내고 불평하면 안 되는가
해나 주얼 지음, 이지원 옮김 l 뿌리와이파리 l 2만2000원

미국이나 한국이나 ‘꼰대’들은 비슷한 행동과 전략을 취한다. 꼰대들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꼰대질’을 한다. 또 20~30대 젊은 청년들을 바라볼 때 ‘요즘 젊은 애들은…’이라고 말하며 그들을 싸잡아 어떤 특성이 있다고 성급하게 일반화해버린다.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비디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해나 주얼이 미국 사회의 꼰대가 젊은 청년들을 싸잡아 부르는 멸칭 ‘눈송이’에 관한 담론을 해부한 책이다. 눈송이라는 말을 누가 언제부터 어떤 의미로 쓰기 시작했는지부터, 그런 호칭을 둘러싼 정치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짚는다.

책에 따르면, 한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던 눈송이가 멸칭으로 변한 것은 1996년 즈음부터다. 작가 척 팔라닉이 쓴 소설 ‘파이트 클럽’을 보면 “여러분은 아름답고 유일무이한 눈송이가 아니다. 여러분은 다른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썩어가는 유기물이고, 우리는 다 같은 퇴비 더미의 한 부분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소설이 나온 이후 팔라닉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매사에 늘 발끈하는” 좌파들을 눈송이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이렇게 시작된 경멸조의 눈송이란 용어가 2016년이 됐을 땐 ‘콜린스 영어단어’가 선정한 10대 단어 목록에까지 오르게 된다. 콜린스는 ‘눈송이 세대’의 정의에서 ‘전 세대에 비해 강하지 못하고 쉽게 마음 상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여겨지는 2010년대의 젊은 청년들’이라고 정의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도 ‘눈송이’에 대해 “조롱조로, 과하게 예민하거나 쉽게 불쾌해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지는 사람, 특히 자신이 특별한 대우나 배려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2016년이란 시기는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세계적인 정치·사회 격변기였다. 영국이 국민투표로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가 있었고, 강력한 반이민 정책을 내세우고 극단적인 언동으로 지지층을 결집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해다. 2016년 전후로 미국과 영국에서는 노골적으로 백인 우월주의와 반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대안 우파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보수 웹사이트 ‘브라이트 바트’에서는 이민, 세계화, 임신중절 권리가 백인을 지구 상에서 말살시키려는 좌파 눈송이들의 계략이라며 끊임없이 눈송이를 공격했다. 저자는 대안 우파들이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의 정당한 정치적 주장을 눈송이라는 멸칭을 통해 나약하고 징징거리는 개인의 불만 표출 정도로 축소했다고 분석한다. 한마디로 꼰대 우파들의 ‘입틀막’(입을 틀어 막다) 전략인 셈이다.

저자는 눈송이라는 멸칭을 반대로 해석해 이를 재전유하자고 주장한다. 눈송이란 말은 “형편없는 자본주의자”라는 말이며 “충분히 탐욕스럽지 않으며, 이윤에 집착하지 않으며, 성공을 위해 자신의 도덕성이나 건강을 희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경제 불평등, 인종 불평등, 젠더 불평등을 깊이 우려하는 ‘용감하고 연민 어린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 용어를 사용하자고 말한다.

미국의 눈송이 담론 분석을 읽다 보면, 한국 사회의 ‘엠지(MZ) 세대론’과 많이 겹쳐 보인다. 기성 세대들은 ‘엠지가 개인주의적이다, 프로불편러가 많다’는 식으로 쉽게 일반화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청년에게는 ‘꼰대’들의 특성과 전략을 알려주고, 기성 세대들에게는 ‘세대론’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책이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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