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십년이라는 시간

2024. 2. 2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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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올해가 결혼 십주년이었다.

그때 나에게 십년이란 어마어마하게 긴 세월이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렇게 열심히 친구들의 십년 후를 상상하며 즐거워했던 것일까.

나아가 이제 나는 십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대단히 긴 세월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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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올해가 결혼 십주년이었다. 세상에,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렀나. 지난 십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십년 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지금의 나는 그때와 어떻게 달라졌는가. 새삼스럽게 이 기억 저 기억을 더듬다가 문득 지금 나를 사로잡고 있는 십년이라는 단위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기억이 났다. 아주 오래전 십대 시절에 나는 일없이 학교 친구들의 십년 후 모습을 상상하기 좋아했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고등학교 때 교실에 앉아 친구들의 뒤통수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칠판 앞에서 선생님은 수업을 하고 학생들은 수업을 듣거나 듣지 않고 4분단 뒤쪽에 앉은 나는 1분단 앞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이다. 어디 보자, 맨 앞줄 왼쪽에 앉은 친구부터 한 명씩. 쟤는 십년 후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 쟤는 십년 후에 어떻게 변해 있을까. 어디에서 어떻게 살까. 결혼은 할까. 어떤 사람과 할까.

쟤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있을 것 같아. 쟤는 간호사, 쟤는 왠지 초등학교 선생님 그림이 그려지는군. 반면에 쟤는 십중팔구 백수가 되어 있거나 외국 유학을 가 있을 것 같아. 쟤는 예쁜 카페나 식당 같은 것을 운영할 거 같고, 또 쟤는 연애도 일찍 하고 결혼도 일찍 해서 자녀를 셋쯤 낳고 주부로 살지 않을까. 빈곤한 상상력이었음에도 상상은 즐거워서 나는 남몰래 친구들의 미래를 그려보며 속으로 웃고는 했다.

그때 나에게 십년이란 어마어마하게 긴 세월이었다. 아직 이십 년도 못 살았으니 평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 아닌가. 게다가 십대에서 이십대가 되는 십년은 사십대에서 오십대가 되거나 오십대에서 육십대가 되는 경우와 완전히 달라 강산이 변하는 이상으로 급격히 무한히 예측불허하게 바뀔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렇게 열심히 친구들의 십년 후를 상상하며 즐거워했던 것일까.

이제 나에게는 그것이 딱히 즐거울 것도 없는 일이다. 아마도 십년 후 나와 현재의 나 사이 간극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다는 방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제 나는 십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대단히 긴 세월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안다. 십대 시절에는 몰랐던 것을 아는 셈인데, 아는 게 병이라더니 어째 씁쓸하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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