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지하철을 못 타겠어요

2024. 2. 22.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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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신과에 "지하철을 못 타겠어요"라고 호소하며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반 세기 동안 지하철을 이용해왔는데 왜 하필 요즘 들어서 지하철을 못 타겠다며 정신과까지 찾아오는 이들이 늘었을까.

뉴스에서 사건 소식이 계속 흘러나오던 시기에 그 환자는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감각이 예민한 이들은 공황장애 같은 질환이 없는데도 지하철 타는 걸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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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거나 감각 예민한 사람들 꺼려
갇힌 공간에 빽빽이 들어선 타인들 부담
요즘은 정신과에 “지하철을 못 타겠어요”라고 호소하며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졌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이 1974년 8월 15일에 개통했으니 올해로 우리나라에 지하철이 생긴 지 50년이 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반 세기 동안 지하철을 이용해왔는데 왜 하필 요즘 들어서 지하철을 못 타겠다며 정신과까지 찾아오는 이들이 늘었을까.

물론 예전에도 지하철만 타면 불안증상이 발생하는 환자들이 진료실을 찾아오곤 했다. 대표적인 질환이 공황장애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숨이 막히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지러움과 함께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라는 공포를 경험했던 환자는 지하철을 타면 또다시 그 증상이 생길 거라는 예기불안에 시달리고, 회피 행동을 보이게 된다. ‘공황 발작이 일어나 벌벌 떨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여길 거야’라는 상상 때문에 지하철 타기를 꺼리기도 한다.

타인을 과도하게 의식하거나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해도 지하철 타기를 회피하게 된다. 지하 공간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낯선 타인들이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자신을 쳐다보고 비평한다는 생각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사회공포증 환자가 발표 때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창피당할지도 몰라’ 하며 불안에 떠는 것처럼 지하철을 공포의 무대처럼 여기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자꾸 흘겨보는 것 같은 관계사고라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대중교통을 멀리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지하철 역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닥칠지 모른다며 불안해하던 환자도 있었다. 뉴스에서 사건 소식이 계속 흘러나오던 시기에 그 환자는 지하철을 타지 못했다. 인간은 누구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세상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늘 일어난다. 그런데 불안에 취약한 이들에겐 100% 완벽히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전부 공포와 회피의 대상이 된다. 그들에게 세상은 온통 위험천지인 것이다.

감각이 예민한 이들은 공황장애 같은 질환이 없는데도 지하철 타는 걸 피한다. 작은 컵에 연필을 촘촘히 꼽아놓은 것처럼 승객으로 꽉 찬 객차는 감각공해의 배지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스마트폰에서 새어나오는 기계음, 심지어 사물들이 스치며 만들어내는 작은 소음도 그들에겐 귀를 뚫고 뇌를 긁는 고통이다.

탄광의 카나리아도 아닌데 지하철만 타면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내고 신경이 금방 곤두선다. 화장품 냄새는 물론이고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체취마저 바늘처럼 코를 찌른다. 감각 자극이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통증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지하철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민감한 이들만 이런 괴로움을 겪을까. 그렇지 않다. 외부 자극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인식하면 누구나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느낀다. 시끄럽고, 냄새나고, 후끈거리는 공간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으면 몸과 마음이 쉽게 끓어오르는 건 보편적 현상이다.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세계는 개인의 마음을 에워싼 공기와 같다. 환경과 마음 사이엔 보호막이 없다. 공기가 오염되면 건강이 나빠지듯, 환경이 나빠지면 마음도 금세 오염된다.

정신건강을 지키려면 내면을 잘 돌봐야 하는데, 쾌적한 일상 환경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명심할 게 하나 더 있다. 나라는 사람도 환경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타인의 영혼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며 살아야 한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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