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강경훈]홍콩 ELS 사태, 이번엔 ‘외양간’을 제대로 고쳐야
은행 역량에 맞게 판매 여부-한도 정해야
집단소송제-징벌적 손배 도입도 검토할만
은행들은 ELS를 직접 팔지 않고 주가연계신탁(ELT)이나 펀드(ELF) 형태로 판매한다. 많은 가입자들은 매우 안전한 상품이란 은행 직원 설명을 믿었다는 입장인데 사실 ELS는 원금을 손해 볼 수도 있는 상품이다. 다만 원금 손실 확률이 높지는 않다. 개별 종목이 아니라 글로벌 주가지수가 3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해 반 토막에 못 미치는 경우는 무척 드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처럼 흔치 않은 경우가 실제로 발생하게 되면 손실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즉 ELS의 위험은 실현 가능성이 상당히 낮지만, 실제 발생했을 때 손실이 매우 큰 위험이다. 이런 위험을 일반 투자자들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측정하기는 어렵다. 난해한 상품을 안전하다고 판매한 은행이 손실을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없지 않다.
반면 은행들은 상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고 서명까지 받았으니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과거 DLF나 라임 사모펀드 등의 사태를 겪으면서 정부가 금융소비자 보호 장치를 계속 강화해 왔는데 이를 충실히 지켰다는 것이다. 더욱이 ELS는 누구나 살 수 있는 공모 상품이다. 많은 가입자들이 오랜 기간 동안 별 탈 없이 약정 수익을 받아 왔다.
손실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니 감독 당국에서 분쟁을 조정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 조사 결과 불완전판매 등이 드러나면 담당자를 징계하고 높은 배상률을 적용해야 한다. 반대로 투자자 책임이 더 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각각의 사례에서 누구 책임이 더 큰지 가려내는 것은 어렵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금융감독원의 분쟁 조정안에 어느 한쪽이 승복하지 않으면 법적 소송을 통해 책임과 배상을 따지게 된다.
이렇듯 탈 많고 말 많은 ELS를 앞으로 은행이 팔지 못하게 금지하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손쉬운 ‘금지 해법’의 실효성은 그리 크지 않다. ELS는 아니지만 특성이 비슷한 상품을 또 만들어 팔면 그만이다. 금융상품은 결국 위험을 수익으로 보상해주는 것이다. 손실 규모가 매우 클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이 많이 낮아 보이는 상품을 새로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동안의 경험에서처럼 많은 투자자들이 새로운 상품에도 우르르 가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아예 원금 손실의 가능성이 있는 모든 금융상품을 은행이 팔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 이 경우 은행들이 예금이나 적금만 취급하게 되면 금융소비자 불만이 커질 수 있다. 판매 채널이 적은 증권사 등만 취급하게 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고수익 기회를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전체 금융산업의 발전도 해칠 수 있다.
결국 특정 금융상품의 판매를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손쉬운 해법은 정답이 아니다. 지금껏 금융사고 이후 해당 금융상품을 금지한 사례가 많았지만 새로운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다. 보다 효과적이고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은행 스스로 자신의 역량에 맞게 금융상품의 판매 여부와 한도, 대상 등을 정하도록 해야 한다. 어느 은행은 초고위험 상품까지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다른 은행은 고위험 상품을 특정 대상에게만 판매하며, 또 다른 은행은 손실 위험이 20%를 넘는 상품은 아예 판매하지 않는 식이다.
물론 지금도 각 은행은 금융상품 판매와 관련하여 스스로를 제한할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규제하지 않는 판매 행위를 스스로 제한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인은 부실 판매에 대한 중징계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 불완전판매가 드러날 경우 은행의 존립에 위협이 될 정도로 엄벌을 내린다면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르는 유사 사례를 막을 수 있다. 엄중한 처벌을 내리기에 앞서 투자자 책임과 판매 은행의 책임을 정확히 가를 수 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일 경우 재판의 결과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들에게도 적용되는 제도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금융회사의 불법 행위로 피해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그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을 하도록 처벌하는 것이다. 이 제도들은 금융회사의 책임과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이유로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금융회사에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행위를 스스로 자제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잘못을 저질러도 처벌이 미미하면 올바른 관행이 자라나지 못한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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