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연봉 따지고 성폭행 비유까지…의사들 막말에 여론은 ‘싸늘’
정부 결정을 가정폭력·성폭력에 비유
‘엘리트 의식’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도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반에서 20~30등 하는 의사를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 “40세 개업의 연봉이 2억8000만원이 비난받을 정도로 많은 연봉이냐”.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 집단행동 관련 일부 의료계 인사들의 발언이 여론의 뭇매를 받고 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표현과 엘리트 의식이 반영된 발언으로 갈수록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MBC ‘100분토론’에서 의사 측 인사로 나온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지역의사제에서 성적 낮은 학생을 뽑아서 의무근무 시키면 근로 의욕도 떨어질 것이고, 그 의사한테 진료받고 싶겠나”고 발언했다.
그는 “(지역의사제를 하면) 성적이 반에서 20~30등 하는 데도 가는 등 성적이 많이 떨어지는 인재를 뽑을 수밖에 없다”면서 “의무근무도 시키고 (하는 것을)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국민들이 최상의 진료를 받고 싶은데 정부가 ‘양(의대 증원)으로 때우려 한다”는 비판 취지에서 나온 것으로 정원 확대로 인한 학생의 질 저하를 우려한 의료계의 지적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입시업계의 설명을 종합하면 정부 발표대로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더라도 반에서 ‘20~30등 하는 학생’은 의대에 가기 쉽지 않다. 지난해 기준 전국 고교 수는 2379개로 전교 3등까지 포함할 경우 7000명을 초과한다. 의대 정원을 5058명까지 늘리더라도 최소 전교 3등은 해야만 의대에 입학할 수 있는 셈이다.
또 이날 대통령실은 ‘사실은 이렇습니다’를 통해 “1980년대 의대 정원이 오히려 지금보다 많았다”면서 “서울대 의대 등 당시와 비교 시 의대 정원은 현재 절반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260명이었떤 서울대 의대 정원은 현재 135명, 부산대의 경우 208명에서 125명으로 줄었다. 대통령실은 이어 “반면 교수 채용은 늘어나 1985년 대비 기초 교수는 2.5배, 임상교수는 3배 증가했다”면서 “의대생을 교육할 교수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현재 40개 의대 중 17개교가 정원 50명 미만으로 소규모 대학이기 때문에 오히려 학생 수가 너무 적을 경우 비효율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의대 신입생을 특정 지역 출신으로 뽑는 지역인재전형의 비중을 40% 이상에서 60% 이상으로 높일 계획인데 학원가에서는 이 경우에도 최상위권이 아니라면 의대 진학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2028년도에는 문·이과 통합수능이 돼 문과에도 (의대) 문호가 열릴 텐데 그때는 오히려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며 “‘전교 1~2등 가던 것이 3등도 간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조심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이 회장의 ‘반 20-30등’ 발언을 두고는 의사들이 평소 가졌던 ‘엘리트 의식’이 TV 토론회라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좋은 교육, 좋은 실습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의료인으로서의 사명에 대한 분명한 생각들이 정립돼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이라며 해당 발언을 직접적으로 반박했다.
박 차관은 “‘반에서 20~30등’이라는 표현은 ‘지방 학생들은 공부를 못한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것 같다”며 “지역인재전형 비중 확대가 의료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얘기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 데에는 타고난 능력을 가진 인재의 선발보다는, 육성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무조건 시험을 잘 보는 의사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공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명감 있는 의사의 육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사실 의사가 부족한 분야는 꼭 수술과 진료의 난이도가 높은 과목만이 아니기도 하다”며 “일반의도 부족하고, 보건소도 의사가 없어서 공중보건의로 대체하고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여론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은 계속되고 있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사를 ‘매 맞는 아내’로, 환자를 ‘자식’으로, 정부를 ‘폭력적 남편’으로 묘사했다가 질타를 받았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보고 많은 의사가 자기 마음이라면서 나에게 보내왔다”며 이때 “매 맞는 아내가 자식 때문에 가출 못 할 거라고, 자식을 볼모로 폭력 행사하는 남편과 정부가 무엇이 다릅니까”라는 비유를 사용했다.
그러면서 “가장 손쉽고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데, 이거 놔두고 10여년 걸려 증원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의사 부족이) 아주 급하면 외국 의사를 수입하든가 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인턴, 레지던트, 펠로 과정을 마치고 40세 정도 돼서 개원한 의사들의 연봉 2억8000만원이라는 수입이 비난을 받아야 할 정도로 많은 연봉이냐”고 해 온라인상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주 위원장의 이 발언은 최근 MBC ‘100분토론’에서 나온 김윤 서울대 교수의 “35살 무렵 전문의가 받는 연봉이 3억, 4억원”이라는 발언에 대해 반박하며 나왔다.
주 위원장은 “35세면 전문의가 갓 된 나이인데 연봉이 4억원이라는 건 팩트(사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의대 증원이 일방적 결정이 아닌 협의 진행 결과라는 대통령실의 주장과 관련해 성폭행에 빗댄 비난도 나왔다.
좌훈정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제2차 의대 정원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에서 “우리가 언제 의대 정원 늘리자고 동의했냐”며 “데이트 몇 번 했다고 성폭력 해도 된다는 말과 똑같지 않냐”고 정부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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