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병’ 치유 돕겠다더니…삐걱대는 ‘재난심리지원’
[KBS 전주] [앵커]
우리 법은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게끔 돼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재난심리 지원체계를 꾸리고 '국가트라우마센터'와 '권역트라우마센터', 또 지역별로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같은 여러 기관을 만들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재난 정신건강 위기대응 표준 지침서만 해도 130쪽에 달하는데, 여기엔 재난 규모와 시기별로 어떤 정신건강 기관들이 개입할지, 고위험군은 어떻게 선별해 중장기적으로 관리할지 등을 정해 작성해놨습니다.
그렇다면, 법도 체계도 갖춘 우리 사회는 재난으로 다친 국민들의 마음을 잘 보살피고 있을까요?
KBS 탐사기획 '재난과 악몽', 오늘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재난 심리 지원체계'를 짚어봅니다.
[리포트]
2022년 8월 8일, 퍼붓듯 쏟아진 비는 낮은 곳부터 덮쳤고, 반지하 집 사람들은 갇혔습니다.
골목마다 벌어진 필사의 탈출, 그러나 4명은 끝내 길 아래에서 참변을 당했습니다.
남겨진 가족은 이 비극의 아픔을 홀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2022년 '반지하 침수 참사' 유가족 : "개인적으로 병원 다니고 있어요, 정신과…. 나라에서 뭐 해준 거 전혀 없어요. 그런 거, 아무것도 없어요."]
정부의 '재난 정신건강 위기 대응'은 정해진 지침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현장 재난심리지원본부는 가동되지 않았고, 이후로 재난경험자 추적관찰이나 치료 연계도 없었습니다.
대신, 심리 안정에 쓰라며 마사지 기구와 색칠 도구를 담은 꾸러미 60개를 나눠줬을 뿐입니다.
취재진은 정부가 공개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의 재난심리 지원체계가 잘 작동하는지 추산했습니다.
2022년 자연재난으로 삶터를 잃은 이재민은 5만 7천4백여 명.
하지만 그해 정부의 심리지원은 천9백여 건에 그쳤습니다.
비율로 따지만 3.46%에 불과한 겁니다.
이재민으로 분류되지 않은 재난피해자가 많다는 걸 고려하면, 실제로 심리지원이 이뤄지는 비율은 더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법과 지침대로 마땅히 제공돼야 할 국가 재난 심리지원이 필요한 곳에 가닿지 않는 겁니다.
만성적 인력 부족과 빈약한 재원 등이 지적되지만, 전문가는 무엇보다 재난구호를 맡는 행안부와 복지부 등 각 기관의 역할이 모호하고 의무 규정이 없다는 점을 문제로 꼽습니다.
실제 정부의 지침서엔 재난심리 지원기관들이 구분돼 있으나 조직도 수준에 불과하고, 역할 역시 뭉뚱그려놨을 뿐 협약을 통해 명확히 규정된 건 따로 없습니다.
[이경욱/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하는 건 없는 이런 형태가 되는 거예요. 실제로 상담이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그 조직을 지원하는 규정 또한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멍 난 체계 속에서 재난의 '속병'은 더 곪아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오정현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그래픽:전현정·최희태
오정현 기자 (ohh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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