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팔 점령지에서 철수 의무 없다”…ICJ 재판서 두둔한 미국

손우성 기자 2024. 2. 2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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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유엔 안보리 ‘휴전 결의안’도 거부…브라질 등 반발
나와프 살람 국제사법재판소(ICJ) 소장이 21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ICJ 법정에서 열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이 타당한지를 따지는 재판을 주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이 1967년부터 57년간 계속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이 타당한지를 따지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에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군사 작전을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를 우려하면서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미국의 이스라엘 두둔 행보가 이어지자 브라질 등 일각에선 거세게 반발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리처드 비섹 미 국무부 법률고문은 21일(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ICJ 재판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에서 즉각적이고 무조건 철수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판단해선 안 된다”며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려면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안보 요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섹 고문은 “우리는 모두 지난해 10월7일 이러한 안보 요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목격했다”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러한 이스라엘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ICJ는 유엔이 2022년 12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 점령 적법성과 관련해 ICJ 조언을 구하자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 따른 재판을 지난 19일부터 진행 중이다.

외신들은 재판에 참석한 52개국 중 대부분이 이스라엘군의 즉각적인 가자지구 철수와 평화 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동맹인 이스라엘을 옹호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은 전날 유엔 안보리에서 인도주의적 휴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전역 지원, ICJ 임시 명령 준수, 국제법 준수 등의 내용을 담아 북아프리카 알제리가 제안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논란이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안보리에서 즉각적인 휴전 요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지 하루 만에 ICJ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점령을 옹호했다”고 평가했고, 알자지라 정치평론가 마르완 비샤라는 “미국 주장은 냉철하고 정교해 보이지만, 미국은 도의적인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노골적인 이스라엘 감싸기에 대한 국제사회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남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브라질과 파열음을 내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 참석 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을 만나 “우리는 그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은 지난 18일 에티오피아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에서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쟁이 아니라 집단학살”이라며 독일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와 홀로코스트를 언급한 바 있다.

중동의 대표적 미국 우방인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날 외교장관회의 직후 성명을 내고 “가자지구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을 반대한다”며 “팔레스타인인을 가자지구에서 강제 철수시키려는 시도는 있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동시에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민간인 피해를 제어해야 하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NYT는 “미국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가장 확고한 방어자”라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전쟁 강행과 가자지구 사망자 증가 등에 대해 조바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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