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의 21세기 진보] ‘사과나무 전략’과 민주당의 위기
1월 말에 <이기는 정치학>이라는 ‘현실정치 교과서’를 목표로 하는 책을 출간했다. 종부세는 왜 ‘정권교체 촉진세’였는지, 탄핵촛불연합은 왜 해체됐는지 등 역대 정책과 이슈, 선거의 관계를 다룬다. 후반부에서는 이번 총선의 판세 전망과 중도확장 전략에 대한 제안도 담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리 이후 ‘초대박 압승론’에 취해 있었다. 151석의 과반은 떼어놓은 당상이고, 일부에서는 180석을 전망했다. <이기는 정치학>은 ‘이대로라면’ 총선 패배 가능성을 높게 봤다.
총선 전망의 기본 시나리오는 국민의힘 144석, 민주당 139석으로 봤다. 5석 격차로 민주당이 패배하는 경우다. 나쁜 시나리오는 국민의힘 156석, 민주당 127석으로 29석 격차로 민주당이 패배한다. 현재 민주당은 공천 파동을 거치면서 ‘나쁜 시나리오’에 근접하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 패배가 매우 유력해졌다.
흔히 총선은 ‘정권심판 선거’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 정치사에서 양당제가 본격화된 것은 2004년 총선부터다. 2004년을 포함해서 5번의 총선이 있었다. 2004년, 2008년, 2012년, 2016년, 2020년이다. 이 중 실제로 야당이 승리한 경우는 2016년 총선 1회뿐이다. 나머지 4회는 모두 ‘집권여당’이 승리했다. 승률로 표현하면, 집권여당이 80%(4/5회), 야당은 20%(1/5회)로 승리했다. 역대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실은 정권심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요인에 의해 결정됐음을 시사한다. 역대 총선은 분열을 최소화하고, 혁신을 주도하는 쪽이 승리했다.
매우 높아진 민주당 패배 가능성
2월16일에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 37%, 민주당 31%였다. 국민의힘은 3%포인트 오르고, 민주당은 4%포인트 떨어졌다. 격차는 6%포인트가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에 가장 큰 격차에 해당한다. 민주당이 ‘오차범위를 넘어’ 뒤지는 조사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격차는 왜 확대되고 있는가? 공천 국면이 본격화되면서 국민의힘은 약점을 방어했는데, 민주당은 약점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공천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 맹물 공천이며 기득권 공천이다. 현역 교체 비율이 매우 낮다. 참신한 인물의 영입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국민의힘 공천은 3가지 측면에서 잘했다.
첫째,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불출마를 했다. 자신이 ‘사적으로’ 무언가 챙긴다는 인식과 거리를 뒀다.
둘째, ‘낙동강벨트’를 공략했다. 부산시장 출신 서병수 의원, 경남도지사 출신 김태호 의원, 경남 밀양의 조해진 의원에게 낙동강벨트 출마를 요청했다. 낙동강벨트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현역으로 있다. 부산 북강서갑에는 전재수 의원, 경남 양산을에는 김두관 의원, 경남 김해갑에는 민홍철 의원, 김해을에는 김정호 의원이 있다. 국민의힘 영남 중진들 입장에서 낙동강벨트는 ‘격전지’이긴 하지만, 최소한 사지(死地)는 아니다. 게다가 민주당 의석을 탈환한다는 명분도 있다.
셋째,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윤-한 갈등’을 통해 윤석열 아바타가 아님을 입증하게 됐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가까운 소위 ‘친윤 후보들’에게 특혜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상징적인 인물은 박진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이다. 이들은 모두 ‘양지’에 해당하는 강남구에 경선 신청을 했다. 일찍부터 이들의 지역 재배치를 공언했고, 박진 전 장관은 서대문을로 재배치됐다. 이원모 전 비서관은 아직 타진 중이다.
정리해보자.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불출마, 윤-한 갈등, 낙동강벨트 공략, 친윤 후보들에 대한 특혜 방지 조치는 ‘한동훈식 공천’의 명분과 정당성을 부여했다. 불만이 있는 공천 탈락자들도 수용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했다.
반면, 민주당 공천은 약점을 강화시키고 있다. 국민의힘이 낙동강벨트를 공략하기 시작할 때, 민주당은 ‘친문 공략’을 본격화했다. 2월5일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은 ‘윤석열 정권 탄생의 원인 제공자’들은 용퇴할 것을 촉구했다. 맥락상 임종석과 노영민 전 비서실장의 용퇴를 촉구한 것이다. 친문과 친명의 갈등, 이른바 ‘문명 갈등’이 본격화된 시점이다.
반면, 윤석열 정권 탄생에 역할을 했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공천 지역을 협의 중이다. 대선 후보인 이재명 대표의 책임도 거론되지 않는다. ‘공천 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 ‘공천 갈등’을 키웠다.
2월14일에는 이재명 대표가 직접 나섰다. ‘떡잎이 져야 새순이 자라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발언한다. 공관위원장이 포문을 열고, 대표가 직접 나서 친문계열 후보를 공격하는 모양새다.
사실상 컷오프로 평가받는 하위 20% 통보가 있었다. 김영주 전 국회부의장이 탈당하고 박용진 의원이 하위 10% 통보를 받았다고 알렸다. 김영주 의원과 박용진 의원은 지역구 관리와 상임위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하위 20%에 속한 31명 중 28명이 비명 계열이라고 한다. 민주당 공천은 비명횡사(非明橫死) 찐명횡재(橫財)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
참패와 신승 사이 민주당의 선택
현재 민주당 공천은 ‘사과나무 전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 공천은 ‘내일 총선이 폭망해도, 한 그루 친명 나무를 심고 있는’ 꼴이다.
민주당은 현재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크게 지는’ 방법과 ‘이기는’ 방법이다. 크게 지는 방법은 ‘지금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문명 갈등을 지속하고, 비명 의원들에게 노골적인 불이익을 주면 된다. 이 경우, 민주당은 120석도 위태로울 것이다. 이기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다. 이재명 대표가 불출마를 선언하고, 친명의 상징적인 정치인들이 험지 출마를 하는 경우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이 경우, ‘윤석열 정부 심판’이 작동할 수 있다
최병천 <이기는 정치학>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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