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9월단, 그리고 하마스

홍석재 기자 2024. 2. 22. 19:2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역사가 쳇바퀴를 돈다.

"제 아버지가 최대의 희망과 최악의 공포는 둘 다 실현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오늘 최악의 공포가 현실이 됐습니다." 반세기 전 한 이스라엘 아나운서는 비극적인 '검은 9월단 사건'의 결말을 이렇게 생중계했다.

굳이 달라진 게 있다면 '검은 9월단' 사건 당시 주류였던 파타흐당이 이제 온건파가 되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다스리고, 이스라엘과 일전을 벌이는 세력은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라는 사실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2년 9월5일(현지시간) 독일 퓌르스텐펠트브루크에서 열린 뮌헨 올림픽 테러 50년 추모식에서 희생자들의 사진이 장내 스크린에 비치고 있다. 뮌헨 올림픽 테러는 1972년 9월5일 팔레스타인의 무장 테러단체 ‘검은 9월단’ 대원 8명이 올림픽 선수촌의 이스라엘 대표팀 숙소를 기습점거해 인질극을 벌인 사건으로 경찰 진압 과정에서 모두 12명이 숨졌다. 퓌르스텐펠트브루크/EPA 연합뉴스

[코즈모폴리턴] 홍석재│국제뉴스팀 기자

역사가 쳇바퀴를 돈다.

“제 아버지가 최대의 희망과 최악의 공포는 둘 다 실현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오늘 최악의 공포가 현실이 됐습니다.” 반세기 전 한 이스라엘 아나운서는 비극적인 ‘검은 9월단 사건’의 결말을 이렇게 생중계했다. 독일 뮌헨올림픽이 한창이던 1972년 9월5일. 운동복 차림의 팔레스타인 테러집단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촌아파트 31동 담장을 넘었다. 총격으로 먼저 선수 2명이 숨지고, 선수·스태프들이 인질로 붙잡혔다. 올림픽 중계용 카메라를 통해 현장이 세계 곳곳에 생중계됐다. 골다 메이어 이스라엘 총리는 인질 생환보다 ‘테러단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앞세웠다. 서독 경찰 특공대가 진압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인질 9명과 테러범 전원이 숨졌다. ‘평화의 제전’ 올림픽도 비극 그 자체가 됐다.

오티티(OTT) 다큐멘터리 ‘스파이 옵스: 신의 분노 작전’ 편이 당시 상황을 잘 알려준다. 거짓말 같은 실화의 배경에 일찍이 자기 땅을 뺏긴 팔레스타인 민족의 분노가 있다. 또 당시 중동에서 이집트가 이스라엘 편인 미국과 교류를 시도하자, 이슬람 국가마저 ‘팔레스타인 대의’(독립국가 건설)를 등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를 이슈화하려 ‘검은 9월단’이 올림픽에서 도발을 감행했다. 때마침 ‘팔레스타인은 국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올림픽 출전이 막힌 게 불쏘시개가 됐다. 테러 뒤, 메이어 총리는 “(2차 대전 이후) 독일 땅에서 유대인이 또 학살됐다”며 전세계를 무대로 ‘검은 9월단’ 수뇌부 제거에 나섰다. 정보·특수공작 기관 모사드가 투입돼 막가파식 암살이 벌어졌고, 민간인 희생도 잇따랐다.

50여년이 흘렀지만 팔레스타인 문제는 변한 게 별로 없다. 지난해 10월7일 가자전쟁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도발로 시작됐다. 아랍의 ‘맏형’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본격 교류에 나서자, 고립을 우려한 팔레스타인의 두려움이 배경이 됐다. 국교를 중재한 미국은 팔레스타인 대의를 무시한 채 현상 변경을 시도하다 사태에 불을 댕겼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전쟁 최우선 목표는 130명 넘는 자국 인질 귀환이 아니다. 그보다 이번이 하마스를 궤멸할 절호의 기회라고 보는 듯하다. 힘센 서방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여기지 않는 태도도 비슷하다. 굳이 달라진 게 있다면 ‘검은 9월단’ 사건 당시 주류였던 파타흐당이 이제 온건파가 되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다스리고, 이스라엘과 일전을 벌이는 세력은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라는 사실이다. 가장 큰 우려는 민간인이다. 지금까지 가자지구 사상자만 10만명에 육박한다. 삶의 터전인 도시는 폐허가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자전쟁도 또 하나의 그렇고 그런 전쟁으로 기억 속에서 흐릿해질 것이다. 8000㎞ 밖 먼 나라의 반복된 비극에 무기력을 곱씹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을까? 세르비아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코소보 학살을 고발해 결국 그를 국제법정에 세운 휴먼라이츠워치의 활동가 프레드 에이브러햄스의 말에서 작은 위로를 얻는다. “우리가 전쟁을 막을 순 없어요. 하지만 학대는 어둠 속에서 이뤄지고, 권력자들을 어둠 속에 내버려두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죠. 우리 일은 비극을 기록해 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것입니다.”

forchis@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