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왜 잡혀갔는지 몰라…삼청교육 부활 같은 소리 안 나오길”

고경태 기자 2024. 2. 2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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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삼청교육 피해자유족회 오수미 대표
19일 오후 홍제동 유족회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난 오수미 대표. 고경태 기자

오수미(55) 삼청교육 피해자유족회 대표가 아버지의 삼청교육 피해 사실을 안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2023년 2월14일,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로부터 “아버지가 피해자 명단에 있다”는 통지를 받고 세상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왜 사라졌는지 모르고 살아왔다. 아버지가 사라진 뒤 어머니도 오 대표를 포함한 삼 남매를 버리고 사라졌다. 함께 보육원에서 생활한 오빠와 남동생도 나이 50을 넘기지 못하고 저세상 사람이 됐다. 홀로 남아 아버지의 기록을 마주하게 돼 더 슬펐다.

눈물을 닦고 나자 궁금해졌다. ‘삼청 피해자와 자녀들은 어디서 뭐 하지?’ ‘이런 일 당하고 다들 조용히 살고 있나?’ 관련 단체 활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왜 이런 국가폭력이 사람들을 집어삼켰는지 공부했다.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오 대표는 진실화해위 통지를 받은 지 6개월 만인 지난해 8월 피해자유족회를 결성했다. 회원의 40%가 유가족이다. 대부분 피해자 자녀들로 여성이다. 삼청교육 피해자 관련 단체 중 여성 비율이 가장 높다. 월 회비 5000원을 내는 정회원이 100명을 넘었고 준회원까지 합치면 350여명이다. “무엇보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행복해야 해요. 우울함은 이제 개나 주라고 하세요. 함께 아픔을 치유하면서 자존감을 높여가려고 합니다.” 삼청교육 피해자 및 유가족들과 함께 인권운동을 펼치겠다는 오 대표를 19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유족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1942년 2월19일생인 오 대표의 아버지 오광수씨의 사망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1980년 8월4일 파주 25사단 삼청교육대에 입소하여 1981년 1월16일 ‘출소’했다는 기록만 있다. 그 뒤 쭉 실종상태인 셈이다. 그런데 지난해 7월20일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뒤 더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1983년 경찰의 형사사건 기록부에 아버지가 당시 가족이 살던 구로구(현 금천구) 독산동을 배회하다 경찰에게 잡혀 조사를 받은 기록이 있다는 거였다.

“아버지가 왜 잡혀가셨는지는 정확히 몰라요. 잠깐 넝마주이를 했는데 그것 때문일 수도 있고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한 달간 순화교육을 받고 넉 달 넘게 근로봉사(강제노역)까지 하다 나오셨잖아요. 그곳에서 심하게 다쳐 기억력을 상실해 집을 못 찾고 헤매다 객사하신 게 아닌가 추정할 뿐이에요. 예전에 고모가 아버지를 본 적 있다면서 ‘치아가 다 빠져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고요.”

서울시 도봉구에 있던 ‘도봉유린원’에서 생활하던 시절. 맨 왼쪽이 오수미 대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로 추정된다. 오수미 제공.

1980년 7월29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입안한 삼청계획 5호 및 계엄포고 제13호에 따라 집행된 삼청교육의 명분은 ‘불량배 소탕’이었다. 오 대표가 보기에 삼청교육은 한국 근현대사 최고의 인권유린이다. “한 번에 6만명이 잡혀가 4만명 가까운 인원이 순화교육을 받았어요. 또 근로봉사와 보호감호까지…. 사망자가 54명, 후유사망자가 367명, 상이자가 3239명이라고 하잖아요. 피해자와 유족 스스로 범죄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인권을 외쳐야 해요. 그래서 단체 슬로건도 ‘삼청, 인권을 외치다’라고 정했어요. 배보상 소송 준비하는 단체가 아니라 인권단체가 되려고 해요. 그러면 배보상 문제는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봐요.”

오 대표가 방향성이 분명한 인권단체를 단시간 내에 만드는 추진력을 발휘한 데엔 10년 가까이 해온 장애인 인권활동이 밑바탕이 돼주었다. 2016년부터 자폐아의 엄마로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대문지회장과 서울지부 부대표 등을 지내며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현안에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삼청을 인권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오 대표는 삼청 피해자들부터 자신을 스스로 비하하지 않도록 하는 인권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쁜 사람을 가리키며 ‘저런 놈은 삼청교육 받아야 해’라고 이야기하는 분도 있어요. 설사 잘못된 행동을 한다 해도 삼청교육이 정당화될 수는 없죠.” 아직도 대중들의 머릿속에 삼청교육 피해자들을 사회악, 정화대상으로 보려는 게 있음을 안다. 피해자들이 먼저 그걸 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한다.

궁극적으로는 삼청교육 피해자를 위한 재단을 꿈꾼다. “힘들 때 찾아와서 상담도 하고, 정기적으로 만나 여행도 가고, 인권강의도 듣고, 지역봉사도 하고, 어렵게 사는 소년·소녀 가장 후원도 하는 그런 좋은 일을 하는 재단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곧 비영리단체 등록을 할 거고요. 또 한 가지 꿈은 삼청이 중간중간 삽화로 들어가는 재밌고 이쁘고 유익한 근현대 역사책을 만드는 거예요. ‘삼청교육대 부활’ 같은 소리 다시는 안 나오게요.”

오 대표는 피해자유족회 정비를 어느 정도 마치면 봄부터 삼청 피해자 권리구제를 위한 간담회·토론회 등 여러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삼청 피해자들은 가족에게 숨기고 살아온 사람이 많아 본인이 피해 사실을 밝히고 싶을 때 피해신청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 진실화해위는 꼭 상시기구가 돼야 한다는 말도 했다. “매일 한 통씩 피해자 전화를 받는데 어제는 세 분이 회원 가입을 해주셨어요. 계속 늘어나는 회원과 상담으로 정신이 없어요. 오늘도 힘을 내서 뛰겠습니다.” (삼청교육 피해자유족회 02-395-8336, samch1980@naver.com)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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