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게이트 끝?’ 축구협회, ‘이강인 구하기’에 앞서 ‘대표팀 구하기’에 필요한 액션
2023 아시안컵(AFC) 아시안컵 도중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 내분으로 번진 ‘탁구 게이트’가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하극상’ 논란의 주인공인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영국 런던까지 넘어가 ‘주장’ 손흥민(토트넘)에게 사과했고, 손흥민은 이강인을 감싸 안았다. 두 선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팬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요르단과의 아시안컵 4강전 전날, 선배들과 갈등을 빚은 이강인 등 선수들이 어떤 징계를 받을지만 마지막 절차로 남은 듯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논란의 상황이 오랜 합숙 생활과 긴 대회 기간, 경기 피로감이 뒤섞인 시기에 나왔음을 강조하며 “모두가 예민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고, 팀에서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면서 “너무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상처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 축구협회 차원의 징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뉘앙스였다.
현실적으로 축구협회가 내릴 수 있는 징계가 대표팀 선발 제외 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된 발언이다. 정 회장은 “대표팀을 한 팀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 대표팀 감독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될 것”이라는 말로 이강인 선발 여부를 차기 감독의 숙제로 넘겼다.
대표팀 불화 사건의 진정 국면에서도 축구협회는 이강인의 자체 징계 수위를 두고 계속해서 여론과 팬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여전히 이강인을 향한 부정 여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구협회의 ‘눈치싸움’ 보단 과감한 액션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 회장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언급한 대표팀 내에서 국내파와 해외파, 그리고 세대간 갈등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과거부터 지적됐던 부분이다. 대표팀에서 이강인 처럼 어린 나이부터 유럽에서 도전하면서 우리 대표팀 문화를 낯설어하는 선수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고, 앞으로도 더 많아질 수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축구협회도 이대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와 관련해 명확한 규정을 만들고 징계 수위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강인의 축구협회 차원의 징계는 ‘스타 선수도 팀워크를 해친다면 예외없다’는 메시지와 함께 대표팀 위계 질서를 세우는 상징적인 의미가 될 수 있다.
한국 스포츠는 ‘스타’에 갈증이 크다. 대부분의 종목에서 과거 사례를 비춰 보면, 이강인 정도의 ‘스타성’을 갖춘 선수의 ‘실수’는 국위 선양, 성적, 흥행 등의 이유로 빨리 ‘면죄부’를 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축구협회도 차세대 대표팀 간판이자 흥행카드였던 이강인을 대표팀에서 오랜 시간 배제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사건으로 이강인의 슬럼프가 길어지는 것도 축구협회가 원치 않는 시나리오 중 하나다. 그럼에도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이강인에게 합당한 징계가 필요하다.
당장 이강인이 빠지더라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경기가 잡혀 있는 점은 축구협회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지점이다. 대표팀은 다음달 21일과 26일 태국과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홈·원정 경기를 치른다. 대표팀 동료, 축구팬들의 진정한 용서가 이뤄질 때까지 심리적으로 극도로 위축된 이강인을 당분간 대표팀에 뽑지 않은 게 바람직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은 우리 대표팀만의 경직된 선·후배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함께 어울려 식사하도록 하면서, 경기장 내 효율적 소통을 위해 호칭도 짧게 하도록 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반대로 무너진 위계를 다시 세워야 하는 고민을 안게 됐다. 차기 감독의 리더십도 중요하겠지만, 물론 축구협회의 각성과 이번 사건을 어영부영 넘어가지 않으려는 결단도 필요하다.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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