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삼성의 AI칩 정복 원정대

인간 이상의 사고를 하는 범용 인공지능(AGI)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류 역사상 불의 발견 이후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이라는 대범한 전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현 주류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칩만으로 이를 구현하기는 부족하다. 압도적 저전력·고성능의 맞춤형 칩이 요구된다. 결국 다가올 AGI 시대는 '절대 칩'을 만들어내는 자가 지배할 것으로 전망된다.

절대 칩을 향해 펼쳐지는 여정은 J R 톨킨의 유명 소설과 영화 '반지의 제왕'과 닮았다. 현재 AI 칩 시장은 GPU를 앞세운 미국 엔비디아가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연합 전선을 꾸려 이를 극복하고 힘의 균형을 찾으려는 게 글로벌 AI 기업들의 바람이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등 각 분야 수장들이 잇달아 한국을 찾는 이유다. 투자 마법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130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 거금을 끌어모으는 배경이기도 하다. 원정대를 이끌어갈 '프로도' 역할로 삼성전자가 적합하다는 게 이들이 가진 공통된 복안으로 풀이된다.

사실 삼성은 메모리를 빼면 설계와 파운드리 부문에서 엔비디아나 TSMC를 넘어설 만큼 절대 강자로 보긴 어렵다. 하지만 칩 설계부터 후공정까지 모두 할 수 있는 전 세계 유일 기업이라는 것이 희망이다. 원정대는 챗GPT 같은 AI 서비스와 ARM의 반도체 설계 자산이 '올라운더' 삼성과 시너지를 발휘하면 다음 세대의 칩에서 승기를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은 마침내 미국에 칩 개발을 위한 'AGI 컴퓨팅 랩'을 신설하면서 절대 칩 원정대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성공한다면 제2 메모리 반도체 신화처럼 정체 중인 한국 경제에 다시 거대한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여정은 영화처럼 고난의 가시밭길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각종 지정학적 국제 규제나 보조금 전쟁이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극적 성공을 위해선 민간 차원을 넘어서는 조력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와 정치권이 원정대의 행보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오찬종 산업부 ocj2123@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