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잃어버린 30년’ 끝낼까…‘거품경제’ 34년전 주가 기록 돌파

김소연 기자 2024. 2. 2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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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해외 투자 등 주가 상승 이끌어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22일 오후 3만9천대를 찍으면서 ‘거품 경제’ 시절 최고치 기록을 34년 만에 갈아치웠다. 도쿄/EPA 연합뉴스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22일 오후 3만9천대를 찍으면서 ‘거품 경제’ 시절 최고치 기록을 34년 만에 갈아치웠다. 일본에선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경제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들썩이는 분위기다.

닛케이지수는 이날 3만9098.68로 마감했다. 거품 경제의 정점이었던 1989년 12월29일 기록한 장중 최고치(3만8957)를 34년2개월 만에 넘어선 것이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도쿄 증권가에선 최고치 경신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을 하거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고 들뜬 분위기를 전했다.

닛케이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836.52 상승하며 3만9천대를 넘어선 직접적 동력은 이날 오전 발표된 미국 반도체 대기업인 엔비디아의 결산이 시장의 예상을 웃도는 호조를 보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도쿄일렉트론, 소프트뱅크 등 반도체·인공지능(AI) 관련 주가가 일제히 시세를 끌어올렸다.

닛케이지수 최고치 경신

일본의 주가는 지난해 봄부터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난해 5월 3만을 넘어서더니 올 1월 3만5천에 이어 이번에 3만9천을 찍었다. 거품 경제 붕괴 뒤 저성장으로 30년 가까이 부진했던 일본 주식이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재평가 움직임이 두드러진 게 영향을 줬다. 엔화 가치 하락(엔저) 흐름 속에서 일본 기업의 수익 향상, 상장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 개선에 따른 주주 친화 정책, 중국의 경기 둔화 등 다양한 변화가 시작되자, 외국인 투자가 일본에 몰렸다.

‘투자의 신’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일본 기업 투자가 큰 전환점이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주가 상승의 기점은 지난해 봄 버핏 회장의 일본 방문이다. 오랫동안 ‘재팬 패싱’을 해오던 해외 투자자에게 일본주 투자를 촉진하는 마중물이 됐다”고 평가했다.

버핏 회장은 지난해 4월 일본을 방문해 “일본 종합상사들에 대한 투자가 미국 이외 기업 중 가장 많다. 지분 보유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추가 투자를 검토하고 싶다”고 밝혔다. 버핏 회장은 2020년 8월 이토추상사·미쓰비시상사·마루베니·미쓰이물산·스미토모상사 등 일본 5대 종합상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했고, 2022년 11월 6%, 지난해 보유 지분율을 7.4%까지 늘렸다. 지난해 일본 5대 종합상사는 최고 실적을 거뒀다. 버핏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중국의 경기 둔화도 영향을 줬다. 엔에이치케이 방송은 “해외 투자자들이 경기 둔화세가 지속되는 중국에서 일본으로 자금을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기업의 개혁도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가 됐다. 도쿄증권거래소는 고질적인 일본 증시의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4월 상장사에 공문을 보내 “주가순자산비율이 1을 밑도는 경우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공시하고 실행해 달라”고 압박했다. 이 비율이 1 미만이면 현재 주가가 장부상 가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저평가 돼 있다는 뜻이다. 일본 기업들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올려 현재 도요타자동차 등 169개사의 주가순자산비율이 1을 넘어섰다.

일본의 엔저가 장기간 계속되면서 달러를 자금으로 하는 해외 투자자의 부담이 줄어든 데다, 수출 대기업의 실적인 좋아지면서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또 개편된 일본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인 ‘소액투자 비과세제도’(NISA)가 지난달부터 시작돼 개인투자자들의 거래가 활발해진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닛케이지수는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향후 4만선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주가가 급상승하면서 시장에선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낮은 생산성, 미흡한 인적 투자 등 일본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는 여전하지만, 일본 경제가 뚜렷한 변곡점을 맞이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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