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한일의정서 서명한 미움받던 왕족 정치인

한겨레 입력 2024. 2. 22. 15:36 수정 2024. 2. 2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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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던 왕족 정치인 이지용.

뇌물을 받고 나라를 팔았다?: 일본 쪽에서 활동비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지용의 아내 홍씨는 일본을 통해 근대 서양의 영향을 받고, 자기 이름을 이홍경으로 지었다.

그때 이지용이 나쁜 의미에서라도 한·일 정계에서 거물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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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다] 이지용 1870~1928

미움받던 왕족 정치인 이지용. 그를 둘러싼 소문들, 어디까지 사실일까?

(1) 뇌물을 받고 나라를 팔았다?: 일본 쪽에서 활동비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때 돈으로 1만원. 1907년 국채보상운동 때 전국에서 모은 돈이 20만원이 안 되었으니, 꽤 큰돈이었다.

(2) 이완용보다 지독하다?: 러일전쟁이 터진 직후 1904년 2월23일, 한일의정서에 서명해 일본 군대가 한반도 이곳저곳에 주둔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완용이 을사조약에 서명한 때가 1905년 11월, 일본이 승리하고 대세가 기운 뒤였다. 이지용이 이완용보다 더 크게 ‘베팅’한 셈이다. 물론 이지용은 을사조약에도 서명했다.

(3) 나라 팔아 번 돈을 도박으로 날렸다?: 도박을 좋아한 것은 사실 같다. 이지용은 백작 칭호를 받았고, 중추원 고문이 되어 거액의 봉급 역시 받았다. 그런데 1912년 도박죄로 검거되어 귀족 칭호를 날린다.

그렇다고 재산을 전부 날린 것은 아닌 듯. 사건 얼마 뒤 총독부 행사에 거액을 기부했고 그 덕분인지 1915년에는 귀족 칭호를 회복한다. 말년에는 다시 중추원 고문이 되어 전보다 많은 돈을 꼬박꼬박 챙겼다. 죽는 날까지 잘 먹고 잘살았다.

(4) 아내 이홍경이 혀를 깨물렸다?: 이지용의 아내에 관한 안 좋은 소문은 ‘매천야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대목은 걸러 읽을 필요가 있다. 옛날 남성들이 개화기 여성을 바라보는 편견이 깃들어서다.

이지용의 아내 홍씨는 일본을 통해 근대 서양의 영향을 받고, 자기 이름을 이홍경으로 지었다. 여성이 자기 이름 가지는 것이 낯설던 시절이었다. 부인회를 만들었고 일본 남자 외교관들과도 친하게 지냈는데 이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났다. 일본 외교관 여럿과 교제하다 삼각관계에 휘말렸다거나 일본 외교관과 입을 맞추다가 혀를 깨물려 잘렸다거나 하는 소문들이었다. 그때 이지용이 나쁜 의미에서라도 한·일 정계에서 거물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소문이다. 그 부부가 미움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알 수 있지만.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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