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칼럼] 홍콩ELS 사태, 수수료 챙긴 은행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한겨레 입력 2024. 2. 22. 15:30 수정 2024. 2. 23.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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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품이 왜 위험한지 모르겠으나,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이 없다’고 해서 투자했다”는 어느 전업주부의 하소연이나, 손실 얘기는 없이 “그냥 ‘지수가 얼마고, 얼마 되면 상환돼요’라고만 했다”는 다른 고객의 주장과, ‘규정상 절차를 이행했다’는 판매직원 주장 간에 존재하는 간극은 은행의 역할 부재를 드러낸 것이다.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피해 당사자들이 지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이엘에스 대규모 손실사태 관련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윤석헌 | 전 금융감독원장

이번 홍콩에이치(H)지수 주가연계증권(홍콩이엘에스(ELS)) 사태의 주범인 홍콩이엘에스는 ‘파생상품이 내재되고 최대 손실이 원금의 20%를 초과’하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이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발생 후인 2019년 11월14일 금융위원회는 ‘고위험 금융상품…종합개선방안’에서 은행의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 제한을 발표했으나, 업계 의견 수렴 뒤 12월12일 내놓은 최종안에서는 투자자 보호 강화 등을 조건으로 허용으로 돌아섰다. 그 뒤 2021년 홍콩이엘에스 판매액이 크게 확대되어 현재 금융권 총판매액이 19조3천억원에 이르고, 이 중 10조2천억원은 금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한다. 은행권 총판매액은 15조9천억원이다.

2021년 2월 초 1만2200 선을 넘었던 홍콩에이치지수는 그 뒤 우하향해 2022년 10월 말 4919까지 폭락하여 대부분 상품이 녹인(knock-in, 하방기준점)을 찍고, 다시 등락해 최근 5600을 넘어섰다. 만기에 지수가 가입 때의 65~70%에 미달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데, 조만간 투자자 총손실금이 5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판매가 집중된 2021년은 디엘에프 및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 관련 금융사 제재와 분쟁조정 이슈가 금융권을 흔들었고 3월25일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시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은행은 홍콩이엘에스라는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대규모 판매했다. 스스로 약속했던 투자자 보호 강화를 ‘속 빈 강정’으로 만든 데 대해 실망을 금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는 은행의 금융투자상품 판매가 지닌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첫째, 상품의 적정성 여부다. 홍콩이엘에스는 상환옵션, 녹인과 노(no)녹인 등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이나, 은행에 지불하는 판매수수료 제외 시, 투자자와 발행자 간의 영합(zero-sum)게임이다. 한쪽의 지불이 다른 쪽의 수입이고, 부가가치 창출은 없다.

여기서 두가지 면에서 상품의 적정성에 의문이 생긴다. 우선, 발행자(증권사) 입장에서 사전에 순이익이 부(-)로 기대된다면 발행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발행했다면 정(+) 내지 영(0)의 순이익을 기대한 것인데 이는 투자자의 순손실 내지 영의 순이익을 의미한다. 그리고 만약 발행자에게 비대칭적 정보 우위라도 있었다면, 투자자 순손실이 예상되어 종합적으로 투자자에게 유리할 게 없다.

다음, 이 상품은 일정 구간에서 투자자에게 수익을 제공하는 대가로 다른 구간에서 원금 손실을 요구한다. 즉, 투자자가 풋옵션 또는 보험의 매도 포지션을 취하는 구조인데, 안정 추구형인 은행 일반고객에게 적정한지(알맞거나 바른지) 의문이다. 주목할 점은 발행사는 헤지, 분산 등으로 위험을 관리하지만 투자자는 원금 손실의 위험 관리가 통상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은행 투자자의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추가적 이득은 보이지 않아 적정성에 의문이 생긴다. 물론 일부 은행고객은 고난도 금융상품을 원할 수 있지만, 증권사에서도 살 수 있다. 그리고 금융정책 관점에서도 예금고객의 기대순손실과 원금 손실 가능성에 기댄 은행의 수수료 수입 확대는 적정해 보이지 않는다.

둘째, 적합성 원칙 위배 가능성도 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은 고객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금소법 제17조 적합성 원칙은 ‘소비자의 투자 목적이나 재산 상황 등을 살피고 반영하여 권유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만약 판매직원이 위험등급에 대한 형식적인 평가를 근거로 투자자의 재산 상황과 원금 손실의 영향 등을 점검 및 반영하지 않고 권유했다면 적합성 원칙 위배가 아닌가.

셋째, 금소법 제19조①항과 시행령 제13조③항에서 제시한 설명 의무의 실효적 충족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언론은 ‘가입상품의 위험등급과 원금 손실 가능성 등 주요 사항을 고객이 직접 자필기재 또는 녹취로 확인했고, 2영업일 이후 고객의 최종 가입 의사를 재확인했다’는 은행 쪽 주장을 보도한다. 그러나 은행 직원의 고객에 대한 피상적 정보 제공과 형식적 요건 충족 요구를, 예금고객이 고난도 금융상품의 내용과 위험의 실효적 파악을 위해 요구하는 정보 제공(금소법 제7조2호)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이 상품이 왜 위험한지 모르겠으나,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이 없다’고 해서 투자했다”는 어느 전업주부의 하소연이나, 손실 얘기는 없이 “그냥 ‘지수가 얼마고, 얼마 되면 상환돼요’라고만 했다”는 다른 고객의 주장과 ‘규정상 절차를 이행했다’는 판매직원 주장 간에 존재하는 간극은, 모든 걸 법과 규정으로 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은행의 역할 부재를 드러낸 것이다.

넷째, 은행의 핵심성과지표(KPI) 체계도 문제다. 투자상품 판매에 대한 핵심성과지표 가산점이 직원들로 하여금 무리한 가입 권유에 나서게 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판매직원 스스로가 홍콩이엘에스 상품의 최종 성과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실적 달성에 몰리다 보니 고객의 이해를 돕기보다 형식적 사인 요구에 집착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성과지표를 판촉 수단으로 이용한 은행과 최고경영자(CEO)의 내부통제 관련 책임이 작지 않을 것이다.

이제 재발방지 방안에 대해 살펴보자. 우선, 수수료 제도 개선 방안인데, 간편하고 시행하기도 쉽다. 상품 판매 때 은행의 선취 수수료를 없애고 투자자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에 한해 은행이 수수료를 받게 함으로써 은행과 고객 간 이해를 합치시키는 방안이다. 양쪽의 성과를 연계함으로써 은행의 고객 자산관리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유발할 수 있다. 은행 스스로 핵심성과지표 가산점을 고객의 수익이 정(+)인 경우로 제한하고 직원 상여금에 고객 손실 발생 때 클로백(claw-back) 장치 도입도 고려할 수 있다.

다음, 은행의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이다. 이번 사태에서 은행권은 2019년 12월 종합개선방안에 담긴 투자자 보호 강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고객들에게 수수료 수익 창출원 노릇을 계속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차제에 은행은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를 접고 새로운 수수료 업무 개발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이번 홍콩이엘에스 판매에서 은행은 특별한 위험부담 없이 수수료를 벌었다. 그 과정에서 실추한 고객의 신뢰 회복을 위해 소비자 피해구제 등 적극적인 사후 관리가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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