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근간이라면서 급하면 또 희생을 요구, K리그 감독은 곶감이 아니다
축구인들은 K리그를 두고 한국 축구의 근간이라고 부른다. 1983년 출범 이래 K리그를 통해 무수한 스타들이 탄생했고, 그들 중 다수가 국가대표까지 뽑혀 한국 축구의 성장에 큰 이바지를 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KFA)는 K리그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는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급할 때는 늘 K리그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희생, 양보 등의 단어를 꺼내든다.
지난 16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된 후 홍명보 울산 HD FC 감독, 김학범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김기동 FC서울 감독 등 K리그 구단을 이끄는 감독들이 차기 감독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오를 때는 ‘그래도 설마’라는 의견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21일, 그 설마가 진짜가 됐다. 새 인물들로 다시 꾸려진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을 위해 나선 정해성 신임 위원장은 우선 “(월드컵 예선) 2경기만 하려고 오는 감독이 있을까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정식 감독에 비중을 뒀다”고 했다. 3월에 열리는 태국과의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2연전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서둘러 정식 감독을 선임하려 했다가는 제2의 클린스만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는데도 그랬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정 위원장은 “선수 파악, 기간 등을 봤을 때 외국인 감독도 열어놓았지만 국내 감독 쪽에 비중이 쏠린 듯하다”며 “각 클럽에서 일하는 분이 감독이 된다면 그 클럽에 직접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필요하면 현재 팀을 맡고 있는 감독들을 찾아가 데리고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축구 국가 대표팀 운영 규정 제12조(감독, 코치 등의 선임) 제2항에 따르면 협회는 선임된 국가대표팀 감독 및 코치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당해 구단의 장에게 이를 통보하고,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 규정상으로 문제는 없지만 구단의 입장, 그리고 팬보다 중요한 ‘특별 사유’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K리그 개막이 열흘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개막에 앞서 열리는 개막 미디어데이까지는 고작 4일 밖에 남지 않았다. 미디어데이에서 새 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는데, 이후 대표팀 감독으로 가는 웃지 못할 촌극이 발생할 수 있다.
구단들은 과거 협회의 ‘감독 빼가기’ 때문에 적잖이 힘들어한 적이 많다. 2007년 7월 부산 아이파크가 당시 20세 이하(U-20) 대표팀을 이끈 경력이 있던 박성화 감독을 선임했으나, 고작 17일 만에 이별했다. 핌 베어벡 감독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U-23 대표팀 사령탑으로 박 감독을 내정했기 때문이었다.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 차질이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연령별 대표팀 감독 경력이 있는 박 감독을 택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부산을 향한 존중은 없었다. 그 해 부산은 리그 13위로 추락했다. 프로 원년 멤버인 부산이 10위권 밖으로 떨어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2011년 협회는 또 같은 선택을 한다.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서 경질되고, 그 후임으로 당시 전북 현대를 이끌던 최강희 감독을 선임했다. 만년 하위팀 전북을 K리그 우승권 팀으로 이끌었던 그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협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논의 끝에, 최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까지만 팀을 이끄는 것으로 절충안을 찾았다. 최 감독은 2011년 전북을 우승으로 이끌고 그해 12월 대표팀 사령탑에 복귀했다. 최 감독이 없는 기간 전북은 심하게 흔들렸다. 최 감독은 2013년 6월 시즌 도중 돌아왔는데, 2012~2013년 전북은 우승에 실패했다.
K리그는 지난해 1~2부 리그를 합쳐 유료관중을 집계한 2018년 이후 처음으로 단일 시즌 관중 300만명을 넘어섰다. 서울은 평균 2만2633명의 평균 관중을 동원해 한국 프로스포츠 최다 평균 관중 신기록을 작성했다.
올해는 제시 린가드라는 슈퍼 스타가 서울 유니폼을 입고 K리그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고 개막전부터 동해안 더비가 열리는 등 지난해를 능가할 수 있는 흥행 요소들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이미 아시안컵의 후폭풍으로 대표팀 이슈가 온 축구 소식을 덮어버리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필요하면 감독까지 데려갈 수 있다는 뉘앙스까지 풍겼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정말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홍명보 울산 감독은 21일 반포레 고후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ACL) 16강 2차전을 2-1로 승리한 뒤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아는 내용이 없어 말씀드릴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제안이 들어온 적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말이었다. 국내파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면 꼭 K리그 감독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후보군이 있다. 부디 홍 감독의 말처럼 앞으로도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는 말만 나오길 바란다. K리그 감독은 협회가 편하게 빼먹을 수 있는 곶감같은 존재가 아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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